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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의 무대읽기]연극 ‘여자만세’
딸·시어머니와 하숙집 운영하는 서희
그 앞에 나타난 ‘마지막 하숙생’의 비밀
임유진
기사 게재일 : 2020-01-20 06:05:03
▲ 연극 ‘여자만세’.<극단 청춘 제공>

 2019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연극 작품은 극단 청춘의 ‘여자 만세’였다. 12월의 끝자락이었다. 극단 청춘 전용 극장인 ‘통’으로 향하는 지하실 계단을 밟을 때만해도 이 추운 세밑에 관객이나 들까 싶었는데 삼삼오오 모여든 관객들이 꽤 되었다.

 ‘여자 만세’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무대로 선택한 데에는 제목의 영향이 컸다. 여자 만세라고 하니 말이다. 만세는 두 가지 정도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하나는 만세를 외치는 자의 주체적인 입장이 깃들어 있는 만세다. ‘대한독립만세’와 같은 경우, 혹은 어려운 숙제를 다 끝낸 사람이 홀가분하게 지르는 만세가 이 경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만세가 있다. 황제를 위해 만세를 세 번 외쳐야 하는 경우처럼 주로 숭배해야 하는 대상에게 바치는 비주체적 성격이 강한 만세다.

 극단 청춘의 ‘여자 만세’는 어떤 경우인지 궁금했다. 여자여서 좋다는 건지, 여자가 좋다는 건지, 극중 인물이 어떤 심리 속에서 ‘여자 만세’를 외치는 건지, 그것이 관객들에게는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말이다. 녹록지 않았던 2019년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어떤 만세이건 보는 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추측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
 
▲‘멀티맨’이 무대의 질 높여
 
 일단 무대에 여자만 나올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주로 여자들이 나오긴 하지만 남자 등장인물도 몇 명 되었는데, 주요 여자 배역 네 명을 제외하고는 멀티맨이라고 불리는 한 명이 다 소화해내었다. 멀티 맨은 남자 배우였는데, 남자 역뿐만 아니라 여자 역까지도 능수능란하게 해 내었다. 멀티 맨을 맡은 이 남자배우는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연기도 아주 잘해서 무대의 전체적인 질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가히 멀티 맨 만세의 지경이었다.

 주인공은 삯바느질과 하숙으로 먹고 살아가는 여자 서희다. 서희에게는 혼기가 지난 딸이 하나 있는데 배우로 성공하려고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서희의 시어머니인 홍마님이 있다.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키는 전형적인 캐릭터인데, 극 후반으로 갈수록 변화한다고 해야 할 지, 원래 성격이 다중으로 설정된 건지 애매한 인물이다.

 서희는 마지막 하숙생이 나가면 하숙을 접을 예정이다. 꼭 묵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사람을 뿌리치지 못해 마지막으로 들인 하숙생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다. 이름은 이여자이고 젊었을 적 한 때는 참 고왔을 거라고 짐작 가는 외모에 호방하면서 다정한 성격의 인물이다. 이 인물은 사실은 서희의 친모로서, 서희가 어릴 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친딸을 두고 집을 나가게 된 기구한 사연의 여자다.
연극 ‘여자만세’.<극단 청춘 제공>

 그러면 이 연극의 큰 틀은 하숙을 치고 동시에 삯바늘질로 딸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는 친딸을 찾아낸 이여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잠시 딸의 집에 묵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다. 극의 말미에 서희는 마지막 하숙생이 어쩌면 자신의 친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흐느껴 운다. 이 큰 줄기에 완전히 복무하는 연극이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차라리 ‘여자 만세’라는 제목에서 여자를 성별(sex)을 논할 때의 여자가 아니라 서희의 친모인 이여자를 상징하는 거라고 보고 한 편의 드라마를 감상했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서희(며느리)와 홍마님(시어머니)의 관계, 서희의 딸과 사회와의 관계, 이여자(친모)가 어린 서희(딸)를 두고 집을 나가게 된 과정, 그 이후 이여자가 꺾는 파란만장한 삶과 홍마님이나 홍마님의 출가한 딸이 겪는 일들이 ‘여자 만세’라는 연극을 그저 한 편의 통속적인 드라마로만 보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연극의 함정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라는 성(sex)을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회적 정체성(Gender)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이 자꾸 확대 재생산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어떻게 수렴되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연극 ‘여자만세’.<극단 청춘 제공>
 
▲“그래서 어쩌라고” 돼버린 결말
 
 병에 걸린 채 (아마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친딸을 보기 위해 위장 잠입한 하숙생 이여자와, 그 하숙생이 자신의 친모라는 사실을 알고 흐느끼는 주인공 서희의 이야기는 참 통속적이고 상투적이라서 갑자기 이것저것 넣어서 요즘 유행한다는 페미니즘을 살짝 올린 것일까. 마지막에 서희는 인터넷으로 사업을 할 결심을 하게 되고 그 매장의 이름을 ‘여자 만세’로 정한다. 이 무슨 황당한 전개이고 결말인지. 시어머니에게 고분고분하고, 시어머니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지고지순하게 어른을 받들어 모시는 서희의 면모만 일관되게 보여주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인터넷 사업은 내내 어떠한 적절한 결말을 기다리던 관객에게 허탈함을 안겨 주었고, 뭔가 찝찝함을 떨쳐버리기 힘든 관극 경험을 주었다.

 저마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했고, 그 중에서도 멀티 맨의 활약은 대단했고, 웃음과 한숨과 눈물이 적절히 완급조절을 한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마지막에는 그 유명한 ‘그래서 어쩌라고?’가 되어 버린 연극이었다. 인물들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에 환호하며 만세를 외치는 연극인지, 역시 여자는 멋지고 좋은 성(sex 혹은 Gender)이라고 외치는 만세인지 구분하기 힘든 무대였다는 말이다. 2020년에도 극단 청춘은 쉼 없이 달리고 땀 흘릴 거라는 것을 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만세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거기에 더 얹어서 좋은 일들이 가득했으면 싶다. 극단청춘만세. 연극만세.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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