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풍년<편집국장>
 형! 심란할 때면 나는 꼭 형이 떠올라. 아마도 맘속에 이런 게 있어서일 거야.
 `형만큼은 아닐 거야. 그 처지가 절대로 나만 못하지. 늘 타협도 요령도 없는 길을 걷고 있잖아. 노상 기성의 질서와 관성을 거스르는 버거운 싸움질일 테니까.’
 형이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미련하고 우직한 `운동권’이기 때문이야. 세상에! 학창시절 품었던 순수열정을 여즉 폐기처분 못한 사람이 형말고 어디 또 있겠어. 그런 형이 지역신문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은 놀라웠어. 왜 하필 운동의 판을 언론으로 바꾸었을까. 그것도 밥벌이 궁색한 지역신문에서 뭘 어찌 해보겠다고….
 `민주’라는 거대담론이 감쪽같이 사라진 세기말에 느닷없이(?) 지역신문에 눈 돌린 형의 선택이 안타까웠던 게지. 바야흐로 `운동’의 이력이 훈장처럼 빛나는 시대였잖아. 따지고 보면 이렇다 할 경력 없이도 과거를 발판 삼은 축들이 얼마나 많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을 쇄신하겠다며 덤볐으니 특정 몇몇을 제외하곤 한 몸의 영달을 탐하는 변절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지 않았잖아. 형도 당당하게 지난 세월에 합당한 보상쯤을 챙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지. 그런 속물적인 셈법이 형에겐 일종의 모욕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언론 쪽으론 과거가 전무한 형의 얼굴을 새로운 지역신문의 깃발을 들어올리는 여럿 속에서 발견한 것은 짜릿한 충격이었지. 그것은 마치 `이번엔 이쪽으로’라고 외치는 단호한 명령 같았어. 그렇게 우리는 강산이 한번쯤 변했을 법한 세월을 건너 뛰어 지역신문이라는 마당에서 조우하게 되었던 것이지. 아무렴 이쪽으론 내가 선배였으니 물정 모르는 형의 미래가 걱정스러웠어. 더구나 형과 동료들은 광주보다 훨씬 작은 도시에서 소액주주 공모방식의 `참 언론’을 내세웠어. 사실 가당키나 할까 싶었지. 그것은 모두가 떠나가며 손을 터는`운동’이었으니까.
 하지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형네가 보여준 성과들은 예사롭지 않아. 스스로에게도 비판의 날을 세우는 독자중심의 신문, 소수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에 충실한 언론을 보여주고 있는 거야. 맹목적인 지역 이기주의, 경제 만능의 폐해를 경계하는 건강한 시각들도 돋보여. 물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건 소위 언론계의 해묵은 관행과 치열하게 다투는 형의 모습이었어. 신문사에 배달된 명절 선물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결과를 공개하는 일은 신선했지. 그러나 촌지 받은 기자를 발견하는 족족 징계위원회에 고발해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도록 한다는 대목에선 걱정스러웠고. `저러다 찍히고 말지’ 싶었어. 헌데 입때껏 흔들림 없이 버텨내는 형과 동료들, 그리고 그 도시가 부럽고 존경스러워. 사실 형네를 베끼고 흉내내느라 무진 애를 썼거든.
 형! 나는 형을 진짜 운동권으로 꼽아. 바탕이 무슨 색깔이든 제 빛을 잃지 않는 게 진짜라고 하던데. 형은 판을 바꿔서도 여전하잖아. 운동이 대체 뭐야. 그저 빛 바랜 사진첩에서 간혹 꺼내보는 추억이어선 안되잖아. 또 요긴하게 들이밀어 써먹는 밑천이어서도 곤란하고. 그걸 금과옥조처럼 자신의 삶에 잣대로 쉬지 않고 들이대는 게 운동 아니겠어? 아직도 저마다 발 딛고 사는 곳에서 `운동’이 절박한 것 같아.
 형!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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