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을 빗나가고 만 코엔 형제의 의도

 코엔 형제(형 조엘 코엔, 동생 에단 코엔)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종종 영화사의 고전들에 경의를 표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여덟 번째 영화인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는 ‘설리번의 여행’(1941)과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에 대한 오마주였으며, 열한 번째 영화인 ‘레이디킬러’(2004)역시 알렉산더 맥켄드릭 감독의 1955년 영화를 리메이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코엔형제에게 칸느 그랑프리를 안겨 준 ‘바톤 핑크’(1991)가 1941년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쓰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었던 점을 상기한다면 그들의 영화역사에 대한 자기 반영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헤일, 시저!’는 코엔 형제의 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여 ‘헤일, 시저!’는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먼저, 코엔 형제가 도착하고자 했던 1950년을 전후한 할리우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연방 대법원은 메이저영화사의 제작-배급-상영의 수직적 통합구조가 위법이라고 판결 내리며 대형영화사를 긴장시켰다. 여기에다 1950년대 초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은 영화창작의 자유를 위태롭게 했고, 새로운 대중매체로 부상한 TV 역시 영화를 위협했다. 그러니까 코엔 형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쇠락기로 접어든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할리우드의 악전고투를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코엔 형제는, 가상의 영화사인 캐피톨 픽쳐스의 제작부장인 에디 매닉스(조슈 브롤린)를 창조해 낸다. 이런 이유로 관객들은 관찰자이자 책임자인 매닉스와 함께 곳곳의 스튜디오를 돌며 그곳에서 연출되고 있는 장르영화의 하이라이트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말 달리며 재주부리는 서부극의 주인공을 보게 되고, 술집을 배경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뮤지컬의 주인공을 만나게 되며, 물속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군무와 성서영화의 스펙터클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헤일, 시저!’는 장르영화들의 정수를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이렇게 화려한 장면의 배후에는, 스크린을 통해서는 드러나지 않는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이 벌어질 터이다. ‘헤일, 시저!’는 이것 또한 들추어낸다. 매닉스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야한 사진에 노출되려고 하는 신인 여배우를 만류하고, 예기치 않게 임신한 여배우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조치하며, 서부극 전문 배우가 드라마 연기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 또한 빠트리지 않는다. 여기에다 온갖 추문과 뒷이야기를 캐고 다니는 기자들을 대처하고, 제작 중인 성서영화가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별 문제가 없음을 종교인들 앞에서 설파하는 것이다.

 이렇게 코엔 형제는 자신들의 열일곱 번째 영화에서 1950년대의 할리우드를 전시하며 관객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코엔형제의 이러한 노력은 과욕일 수 있다.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들의 이번 이야기는, 세트장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종횡무진 펼쳐지다보니 산만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으며, 또한 내로라하는 스타들 이 소화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면면에서도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결국 ‘헤일 시저!’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은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이유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최고의 영화를 만들어내고자 힘쓴, 영화주의자 매닉스의 노고는 관객들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결국 이 인물을 통해 할리우드의 1950년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코엔 형제의 애초 의도는 과녁을 빗나가고 마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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