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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갈피갈피]충장로에 대하여
광주읍성과 역사 함께 `500년 전통’ 길
조광철
기사 게재일 : 2014-11-26 06:00:00

 우리에게 충장로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많은 의미들은 언제나 충장로가 ‘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1978년 광주시는 시내 간선도로의 명칭과 구간을 정한 일이 있었다. 이때 충장로는 길이 1.6km, 너비 8m의 길로 규정했다. 그런데 길이가 조금 이상하여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충장로의 종점을 경열로와의 교차점으로 산정했다.

 

 결코 짧지 않은 ‘충장로’의 시간

 경열로란 광주역에서 양동복개상가 앞을 지나는 길이다. 여기서 그 교차점이란 이 길이 충장로에서 연장되어 온 선과 만나는 북구 유동의 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충장로 개념과 조금 달랐다. 왜 이렇게 길이를 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충장로는 이와 다르다. 통념상 1가에서 시작해 5가까지, 다시 말해 5가가 독립로와 만나는 교차점까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충장로의 길이는 1km를 조금 넘는다.

 1km는 무척 짧은 거리다. 마음먹고 걷는다면 20분 만에 그 끝에 가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길의 시간적인 길이만큼은 결코 짧지 않다. 광주에서 충장로만큼 긴 역사를 간직한 길은 없다. 저 유서 깊은 금남로는 1930년대 초엽에 등장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80여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에 견줘 충장로는 광주읍성이 생길 무렵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추정대로라면 충장로는 5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충장로 곳곳의 별칭

 물론 처음부터 충장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읍성 시절에는 네 성문 중 하나였던 북문으로 통하는 길이라 하여 우다방 사거리에서 북문 터인 충장치안센터 앞까지는 북문안거리, 그 너머는 북문밖거리라 했다. 다시 말해 지금의 2~3가는 북문안거리, 4가부터는 북문밖거리에 해당했다. 여기서 빠진, 1가는 남문안거리로 불러 북문안거리와 구별했던 것도 지금과 달랐다.

 이후 일제 초엽에 북문안거리는 북문통, 남문안거리는 남문통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다. 그런데 이때도 4~5가는 북문통의 범위에서 제외됐다. 지금의 4~5가 지역은 수기옥정(須奇屋町)이라 하여 별개의 거리 명칭을 지니고 있었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에 북문 밖이 있던 두 개의 면, 즉 공수방면과 기례방면에서 한자씩 따와 지은 것이었다.

 그러던 1930년, 광주 시내가 면에서 읍으로 승격될 즈음에 북문안거리 전부와 남문통 일부를 합쳐 혼마치, 즉 본정(本町)이라 했다. 동시에 길을 여러 구획으로 나눠 숫자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동쪽부터 1, 2, 3정목(丁目)이라 했다. 그리고 수기옥정이라 하여 별개의 거리인양 간주하던 곳도 4, 5정목이라 하여 본정에 포함시켰다. 충장로의 공간적 범위가 5가까지 연장된 것은 이 때부터다.

 

 일본식 용어 벗어나 ‘충장로’ 탄생

 해방 후에 본정이란 이름에 담긴 암울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개명 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1946년 충장로1가부터 3가까지는 관풍동(觀風洞), 4가는 취인동(聚仁洞), 5가는 창선동(暢善洞)이라 했다. 그런데 ‘논어’에나 나옴직한 용어들로 동네 이름을 지어 부르자니 어째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1947년 길에 연한 지역은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하고 이 길을 다섯 구획으로 나눠 부르던 개념을 다시 수용했다. 다만, 일본식 용어인 본정은 충장로로, 정목은 가(街)로 바꿔 쓰기로 했다. 충장로1가부터 5가에 이르는 가로구획 명칭이 등장한 것은 정확히 이 때부터였다.

 물론 충장로는 항상 길, 즉 선(線)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장로는 면적, 즉 지적상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은 도로명 주소에 묻혀 사라져가고 있으나 여전히 토지권의 행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지번이다. 충장로에도 지번은 1가부터 5가까지 길을 따라 매겨져 있고 이들 토지면적을 합치면 14만㎡쯤 된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5가가 차지한다.

 

 원표지점, ‘광주 ○○km’

 행정구역상으로도 충장로는 다른 공간적 의미를 지닌다. 2014년 현재, 충장로는 동구 충장동에 속한다. 이 동에는 충장로를 비롯해 18개의 법정동이 속해 있다. 물론 이렇게 보면 충장동은 광주의 90여 개에 달하는 행정동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충장로는 여러 행정동 중 하나에 속하는 공간, 혹은 충장동의 일부로만 보기 어려운 중심성을 가진다. 이런 중심성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석도 있다.

 현재 충장로의 일부 구간은 국도 1호선에 속한다.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출발해 평안북도 신의주에 이르는 총 900여km의 길이다. 그 가운데 나주시 남평을 거쳐 남구를 가로질러 온 1호선은 광주대교를 건너 옛 광주역 방향으로 가다가 충장로와 교차한다. 이 교차점 근처인 5가 25-7번지 앞 인도에는 도로원표도 서 있다. 우리가 국도나 지방도를 타고 달릴 때 이정표에 보는 ‘광주 ○○km’라는 글자에서 ‘광주’는 바로 이 원표 지점을 가리킨다. 이처럼 광주로 통하는 모든 길의 중심이듯 충장로는 앞으로도 광주의 중심으로 남을 것이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조광철’ 님은 태생이 목포, 그러나 광주에 대한 누구보다 극진한 애착은 갖은 사람. 숨겨진 광주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옛 지도를 살피고, 토박이들의 살아있는 증언을 듣고, 기록의 습관을 유전자 속에 각인시켜 놓은 사람.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증언과 조사를 통해 흐트러진 시간의 파편을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현재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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