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뻥티기 할아버지’(경북 청도 덕산초등학교 5학년 윤영웅), ‘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 지도 이호철, 보리, 1997. 초등 미술교육에서 이런 그림을 ‘살아 있는 그림’이라 한다. 이호철 선생은 그동안 우리 미술교육이 아무 느낌 없는, 그런 ‘죽어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교육이었다고 반성하고 나와 둘레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미술교육을 하고 있다.
이제 은정이가 쓴 ‘고드름’ 이야기를 해 보자. 그러기 전에 은정이를 가르친 이호철 선생님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우리나라 초등 국어교육 역사에서 참으로 훌륭한 교육을 해낸 선생님이다. 세계에서 쓰기, 그 가운데서도 시 쓰기 교육은 일본이 가장 앞서 있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일본의 성과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는 선생님을 딱 한 번 가까이에서 뵈었다. 서로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고 곁에서 뵈기만 했다. 그만큼 선생님은 나에게 높고 그윽하신 분이다.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여름 연수회장이었을 것이다.

한 초등 선생님이 학급 문집을 드리면서 선생님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그림도 글도 잘 안 돼요.”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말이다. 선생님은 문집을 쓱 훑어보시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혹시 선생님, 아이들이 시를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 떼어 놓으신가요?”
“…….”

선생님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두 손을 모았다 옆으로 벌리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을 멀찍이 갈라놓느냐, 이 말입니다.”

그제야 선생님도 무슨 말인지 알고서는,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했다.

“아이들은 같이 있으면 집중을 못합니다. 서로 떼어 놓아야 해요. 밖에서 그림 그릴 때도 시를 쓸 때도 한 30미터는 떼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글감에 자신의 온 마음을 모을 수 있어요.”

그 선생님은 이 말을 듣고 “아아아!” 했다. 나도 속으로 ‘아아아아!’ 했다.

해결점은 아주 뜻밖이었다. 나는 십수 년 전에 들은 이 말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강의실에서 글을 쓸 때 떨어져 앉게 한다. 그러면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혹시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때 조용히 사정을 말해 준다.

“오늘은 글을 쓸 겁니다. 이렇게 떨어져 앉게 하는 것은 옆 친구 글을 볼 것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글에 집중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니 좀 있다 글을 쓸 때 집중해서 써 주세요.”

그런데 한 번은 깜박 잊고 자리를 벌려 놓지 못하고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컸다. 글은 역시 갈라놓아야 잘 써졌다.

‘요놈의 감홍시’ 뒤편에 ‘선생님과 부모님께’ 주는 해설글 ‘산과 들에서 뛰놀며 쓰는 아이들’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이들이 시 글감을 정했으면 나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가만히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모습을 차례로 떠올려 보세요. 모습은 어떤가요? 어떻게 행동하지요? 아마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할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것에게 말을 했겠지요. 그 말이 뭐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그걸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겠지요. 그 중얼거린 말은 뭐지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때 무엇을 느꼈나요? 새롭게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말해 주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이 쏠리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 그 다음 떠오르는 대로 쓰도록 합니다. 시를 쓸 때는 옆도 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해요. 지우개도 빌려주지 못하게 합니다. 그 감흥이 깨뜨려질까 봐 그런 것이지요.

아마 은정이도 ‘고드름’을 쓸 때 혼자 따로 떨어져 고드름을 떠올리고, 그때 그 느낌 그 마음을 붙잡아 썼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쪼르르 타고 내려와 떨어질까 봐 두 손 꼭 쥐고 매달려 있지요” 같은 구절이 나온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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