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을 딱 한 번 가까이에서 뵈었다. 서로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고 곁에서 뵈기만 했다. 그만큼 선생님은 나에게 높고 그윽하신 분이다.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여름 연수회장이었을 것이다.
한 초등 선생님이 학급 문집을 드리면서 선생님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그림도 글도 잘 안 돼요.”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말이다. 선생님은 문집을 쓱 훑어보시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혹시 선생님, 아이들이 시를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 떼어 놓으신가요?”
“…….”
선생님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두 손을 모았다 옆으로 벌리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아이들을 멀찍이 갈라놓느냐, 이 말입니다.”
그제야 선생님도 무슨 말인지 알고서는,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했다.
“아이들은 같이 있으면 집중을 못합니다. 서로 떼어 놓아야 해요. 밖에서 그림 그릴 때도 시를 쓸 때도 한 30미터는 떼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글감에 자신의 온 마음을 모을 수 있어요.”
그 선생님은 이 말을 듣고 “아아아!” 했다. 나도 속으로 ‘아아아아!’ 했다.
해결점은 아주 뜻밖이었다. 나는 십수 년 전에 들은 이 말을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 강의실에서 글을 쓸 때 떨어져 앉게 한다. 그러면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혹시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때 조용히 사정을 말해 준다.
“오늘은 글을 쓸 겁니다. 이렇게 떨어져 앉게 하는 것은 옆 친구 글을 볼 것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글에 집중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러니 좀 있다 글을 쓸 때 집중해서 써 주세요.”
그런데 한 번은 깜박 잊고 자리를 벌려 놓지 못하고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컸다. 글은 역시 갈라놓아야 잘 써졌다.
‘요놈의 감홍시’ 뒤편에 ‘선생님과 부모님께’ 주는 해설글 ‘산과 들에서 뛰놀며 쓰는 아이들’이 있는데 여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이들이 시 글감을 정했으면 나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가만히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모습을 차례로 떠올려 보세요. 모습은 어떤가요? 어떻게 행동하지요? 아마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할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것에게 말을 했겠지요. 그 말이 뭐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그걸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겠지요. 그 중얼거린 말은 뭐지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때 무엇을 느꼈나요? 새롭게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말해 주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이 쏠리는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 그 다음 떠오르는 대로 쓰도록 합니다. 시를 쓸 때는 옆도 돌아보지 못하게 해야 해요. 지우개도 빌려주지 못하게 합니다. 그 감흥이 깨뜨려질까 봐 그런 것이지요.
아마 은정이도 ‘고드름’을 쓸 때 혼자 따로 떨어져 고드름을 떠올리고, 그때 그 느낌 그 마음을 붙잡아 썼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쪼르르 타고 내려와 떨어질까 봐 두 손 꼭 쥐고 매달려 있지요” 같은 구절이 나온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