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행동시와 하이쿠적 직관

▲ 하이타니 겐지로 글, 서혜영 옮김, ‘아이들에게 배운 것’, 다우, 2003.
 하이타니 겐지로(1934∼2006)가 쓴 ‘아이들에게 배운 것’(다우)을 읽었다. 이 책은 그가 일본방송협협(NHK)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대학’ 교양 강좌에 나가 두 달 동안 했던 강의를 글로 정리한 것이다. 글이 말하듯이 되어 있어 쉽고 편하게 읽힌다. 번역도 아주 잘 되어 있다. 이 책에 일본 초등학교 1학년 사쿠다 미호가 쓴 시 ‘개’가 있다. 단 석 줄로 된 시다.
 
 개는
 나쁜
 눈빛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어린이시나 어른이 쓴 시에서도 ‘개의 눈빛’을 노래한 시를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그 개 눈빛의 선함을, 그 개 눈빛이 ‘나쁜 눈빛’이 아니라고 말하는 구절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시를 놓고 겐지로는 이렇게 말한다.

 “매우 엄격하지요? 사물을 보는 눈이. ‘그것은 왜 그럴까.’ 하고 묻는 아이들의 마음은, 다른 이의 영혼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은 본래, 또는 처음부터 타인에 대한 호의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일까,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 묻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이에, 자기 안에 타인에 대한 호의를 형성해 갑니다.”

 나는 겐지로의 이런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겐지로는 아이들 글을 아주 ‘엄격하게’ 보는 작가인데, 그는 여기서 ‘생활행동시’ 이론으로 미호의 시를 보고 있다. 생활행동시는 일본 어린이시 역사에서, 1920년대 일본 초기 어린이시의 하이쿠적 관조를 극복하려는 글쓰기 운동이고, 말 그대로 생각과 몸의 ‘행동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를 말한다. 하이쿠는 5·7·5조 17자로 된 일본의 한 줄 시다. 사쿠다 미호의 시도, “개는 나쁜 눈빛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 줄로 늘어놓으면 영락없이 하이쿠다. 겐지로가 “그것은 왜일까,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 묻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사이에” 하고 말하는 것은 사쿠다 미호의 ‘행동’을 말한다. 그들이, 특히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글쓰기에서 행동성을 강조한 것은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하이쿠적 관조성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군국주의의 망령을 끝내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하지만 이 시는 그들이 경계했던 ‘하이쿠적 관조’라기보다는 ‘하이쿠적 직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호는 개의 눈빛을 보면서 그 눈빛 자체의 선함을 보고 있다. 미호는 ‘묻거나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과정을 거쳐 개 눈의 선함을 본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타인에 대한 호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뛰어넘는다. 논리를 넘어 단숨에 본질에 다다르는 것이다. 직관의 힘이다. 직관은 아이들 시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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