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관한 이야기2

▲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955년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에 오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반스톤이 보르헤스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말을 붙인다. “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매력적이고, 그 일은 내가 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때 보르헤스가 맞장구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네, 맞아요. 나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그런 일을 해야 합니다. 눈이 멀기 전에는 언제나 이런저런 것을 구경하고 읽는 일에서 피난처를 찾았지요. (……) 그땐 30분 정도 집 밖에 나갈 때도 책을 가져가지 않으면 아주 기분이 안 좋았어요. (……) 눈이 멀지 않았을 땐 늘 여러 가지 것으로 내 시간을 채워야 했지요.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나 자신을 놓아둔답니다. (……) 난 기억 속에 살아요. 그리고 시인은 모름지기 기억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요? 난 상상력이 기억과 망각 속에서 생겨난다고 봐요. 이 두 가지를 섞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죠.
 사람들은 기억도 해야 하고 잊기도 해야 해요. 모든 걸 기억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내 작품에 나오는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끝없이 기억하면 미쳐 버릴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가 모든 걸 잊는다면,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예요. 우린 우리 과거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예요. 우린 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지향해야 해요. 안 그래요? 이 기억과 망각을 우린 상상력이라 하지요. 아주 거창한 이름이에요.
 -‘보르헤스의 말-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마음산책) 50-52쪽
 
 보르헤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심리학 교수였기 때문에 집 형편이 아주 넉넉했다. 그런데 대대로 이 집안 남자들에게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고통이 하나 있었다. 바로 눈이 안 좋았다. 아버지는 보르헤스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 눈처럼 눈동자가 파란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자라면서 눈동자가 밤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자식도 어쩔 수 없이 눈이 안 좋아질 팔자라는 것을 직감한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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