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오산리 사람 얼굴 흙인형5

▲ 내가 빚은 흙인형과 오산리 흙인형. 내가 빚은 흙인형과 오산리 신석기 흙인형에서 눈과 입을 견주어 보면 차이가 난다. 나는 집게손가락 끝으로 했는데도 눈과 입이 깊지 않다.
 (저번 호에 이어서 씁니다)
 
 또 하나 놓친 것이 있다. 진흙에 눈코입을 찍은 다음 그늘에 말렸을 때도, 또 불 속에 들어가서도 조금 준다는 점, 이것을 놓쳤다. 나는 줄어드는 비율을 보통 헐렁하게 20퍼센트로 잡는다. 그렇다면 신석기 시대 원판은 위아래 6센티미터, 너비는 5.3센티미터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빚은 것과 오산리 흙인형을 견주어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어른 손가락으로는 오산리 흙인형처럼 이렇게 깊게 눈과 입이 나올 수 없다. 이 흙인형은 신석기 어린이가 빚은 것이 분명하다.

 나는 우리 두 딸이 다녔던 씨튼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어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다. 예닐곱 살 반 아이들과 같이 흙인형을 빚어 보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20분쯤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약속을 잡고 그 다음 날 어린이집에 갔다. 가기 전에는 위로 6센티미터, 가로로 5센티미터쯤 빚어서 해 보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럿 아이들과 애당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노트북 모니터로 오산리 흙인형을 보여 주고, 이렇게 한번 빚어 보자 했다. 눈코입은 엄지로 눌러서 찍자고 했다. 아래 사진이 그날 빚은 것이다.

예닐곱 살 아이들이 빚은 흙인형. 아이들에게 오산리 흙인형을 노트북 모니터로 보여줬더니 모두들 `돌사람’이라 했다. 아이들은 어떤 물건에 이름을 붙일 때 어른보다 훨씬 직관이 살아 있다. 거북선을 처음 본 아이가 ‘거북배’라 하듯 오산리 흙인형을 처음 보고는 모두들 ‘돌사람’이라 한 것이다. 김찬곤.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은 나오지 않았다. ①, ②번 흙인형은 일곱 살 아이가 빚었고, 나머지는 여섯 살 아이가 빚었다. ①, ②번을 내가 검지로 누른 것과 견주어 보면 확실히 구멍이 깊다. 아이들은 직관으로 꾹꾹 눌렀는데, 내가 누른 구멍은 손끝을 아주 조심해서 누른, 그런 ‘마음결’이 읽혀진다. 여섯 살 아이가 빚은 ③번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직관, 어떤 계산도 없는 그러한 마음과 몸짓이 손끝과 구멍에 그대로 살아 있다.
(다음 호에 이어서 씁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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