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때마다 돈 벌었던 효자 아들
단원고생 강신욱 잊지않겠습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미처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일찍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말수가 적습니다.

 신욱이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신욱이 어머님은 신욱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이 후 신욱이는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네 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다 또 할머니께서 5년 전에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말수가 줄어들고 행동이 어른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아버지는 기억하십니다.

 고잔초와 광덕중을 거쳐 단원고에 진학한 신욱이는 친구들과 축구와 게임 등을 하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신욱이는 늘 친근하고 어색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친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때와 놀 때를 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친구, 가끔 보더라도 늘 한결같은 친구,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친구로 기억합니다.

 ‘꾼떡’(가래떡을 튀긴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신욱이는 3.3kg의 몸무게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후 178cm, 신발 사이즈 280mm까지 자란 신욱이….

 신욱이는…

 방학 때마다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 일자리를 찾기도 했고, 일당 2만 원을 받고 사무실 벽의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을 하는 등, 자기 용돈을 스스로 마련하는 아이였습니다.

 일주일 용돈 2000원을 줘도 500원만 달라던 아이였습니다.

 좋아하는 500원짜리 꾼떡을 사먹겠다고….

 이처럼 형편이 어려웠던 신욱이의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슈퍼마켓 사장님이 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경영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2학년 학급 총무를 맡기도 했던 신욱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늘 학급성적이 3등 이내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습니다.

 수학여행 보름전… 대학 졸업 후 첫 월급을 타온 누나가 수학여행 경비를 대주고 신욱이는 검정 티 3장, 양말 3컬레, 수건 3장으로 짐을 꾸려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4월15일 저녁…신욱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안개가 많이 끼어서 배가 출발을 못 할 거 같아…나 그냥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문 안에서 잠그지 말아…”

 이것이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그리고 몇일이 천년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신욱이…어떤 장난을 쳐도 맞장구를 쳐 줄 것 같은 포근하고 재미있고 믿음직한 아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신욱이는 지금 안산 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조혜경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우리 시민상주들은 올해 3월1일부터 세월호 희생자 모두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행동으로 매일매일 한 분 한 분의 삶을 되새김질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분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해주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시민상주 페이스북에서 매일 한 분씩 만날 수 있습니다. 방문해서 댓글과 공유하기로 기억투쟁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