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공명(共鳴)의 순간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몸체가

서로 이어진 시멘트 구조물을 타고

울려 퍼지는 그런 소리는 특히 맑은 날,

전화선을 연결한 만큼 가까이서 들린다.

그도 즐거운 일.

하지만 그 자유는

네모상자 벽체 안에서 만이다.

그러다가 문득

북경의 영광스런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박태환이 물살을 가르거나

이승엽이 홈런을 치는 순간 들려왔던,

지축을 울리는 듯 한 함성과 박수소리에

온 동네가 떠나간 적이 있었다.

공명(共鳴), 울림은 그렇게 다가왔다



누군가로부터 ‘한 사람을 두루 알기 위해서라면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보는 것이 첩경’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랬다. 사람의 마음은 ‘읽을’ 수가 없으되,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리적 환경과 공간의 배칟생활소품들·디자인·색깔 등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그 속내를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사진은 우리집 뒤편 베란다에서 바라보이는 아파트 옆 동의 초저녁 모습이다. ‘천고마비’. 한낮엔 늦은 더위를 떠나보내는 매미 소리 드높고, 어스름 속 찌르라미 소리 깊은 밤. 단풍잎처럼 저마다 한 장씩의 창을 낸 격자 속 풍경들은 ‘희노애락애오욕(喜怒愛樂愛俉慾)’ 그 자체다.

‘장국영’의 영화에서는 종종 홍콩의 외로운 밤과 거리, 주인공의 방이 등장하곤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인연의 실타래는 어떻게 엉클어져 있을까? 비 내리는 날, 눅눅한 바람을 뚫고 창밖에 곧장 내려다보이는 골목길을 통해 누군가가 찾아와(또는 찾아가) 사랑을 나누지만, 이내 그것은 늘 허무하기 그지없다.

‘레옹’이 망원경을 대고 바라봤던 이웃집 풍경도 그러했을까? 그도 역시 외로웠고 풍경들은 적당히 화사했다.

‘망원(望遠)’할만치 사람들로부터 다소간 거리를 유지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제서야 비로소 대상의 객관적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 법. 화분을 들고 뛰었던 그는 ‘복수’를 했는지 모르겠다.

창틀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다. 집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가장 흔한 모습은 런닝셔츠와 팬티 바람의 남자들이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TV 삼매경에 빠진 경우다. 더러는 거실의 불이 모두 꺼지고 모니터 불빛만 반짝이는 창들도 있다. 샤워실에서 금방 나온 여자가 선풍기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밤을 말리기도 한다. 자정이 넘도록 창을 밝히고 있는 건 아무래도 수험생들일 것이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그이들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몸체가 서로 이어진 시멘트 구조물을 타고 울려 퍼지는 그런 소리는 특히 맑은 날, 전화선을 연결한 만큼 가까이서 들린다. 그도 즐거운 일.

하지만 그 자유는 네모상자 벽체 안에서 만이다.

그러다가 문득 북경의 영광스런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박태환이 물살을 가르거나 이승엽이 홈런을 치는 순간 들려왔던, 지축을 울리는 듯 한 함성과 박수소리에 온 동네가 떠나간 적이 있었다. 공명(共鳴), 울림은 그렇게 다가왔다.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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