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갯바위를 내리치는 거센 파도에 부대껴온 이력을 새긴 백전노장의 얼굴. 반려해 온 쥔을 닮았다. 심상하게 꿰매 낸 핸드메이드 살림. 신안 영산도.
 ‘오호통재 애재애재 다락방을 청소하다/ 아차실수 손을 놓아 두쪽으로 내었으니/ 애닳도다 슬프도다 이바가지 어이하리/ 아름답고 고운자태 삼십여년 곁에두고/ 너를 사랑하였거늘 차마못내 아까워라/ 모시끈에 합쳐보자 애고애고 내바가지…’

 그 옛날 소고당(紹古堂) 고씨부인이 바가지의 죽음을 슬퍼하여 쓴 규방가사 ‘조표자가(弔瓢子歌)’. 명품이어서, 값이 비싸서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연분을 중히 여기는 의리로, 낡고 부서지고 금가고 깨어진 것들을 잇고 꿰매고 살려내는 수많은 ‘고씨(高氏)부인들’이 여기 있다.

 ‘덜 소비하는 유전자’를 지닌 세대, 어떤 물건에도 ‘사망선고’는 좀체 하지 않는 ‘명의’들의 솜씨를 어매들의 ‘살림’에서 만난다. ‘차생연분 미진하여 노끈으로 합친용모’들, 어여쁘고 순정하다.

 못쓸 것들 많은 이 몹쓸 세상에서 지극한 정과 살뜰한 손길로 찾아낸 ‘쓸모’. 사람이든 물건이든 쓸 만하고 마땅하고 흡족한 것들에 전라도 어매들이 내어놓는 긍정과 치하의 말씀을 능히 받을 만한 명품들.

“쓰겄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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