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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쌤의 줄탁탁동통시]‘알파걸’ 그리고 ‘베타맘’의 은근과 끈기
희진이의 남다른 착실함과 부지런함 뒤엔
원하는 삶 살 수 있게한 ‘엄마’가 있더라
홍은숙
기사 게재일 : 2017-03-13 06:00:00
▲ 희진이를 보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 붙이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엄마를 지칭하는 신조어 중 자식의 교육과 관련된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그 증거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교육에 관한 정보에 정통하다는 돼지엄마를 비롯해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법에 따라 알파맘, 타이거맘, 사커맘까지 다양한 형태의 엄마를 지칭하는 말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가장 바람직한 엄마의 유형은 어떤 것일까요? 내 결론은 `그때 그때 달라요’입니다.

 아이의 잠재력과 성격을 파악해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 적용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엄마를 지칭하는 것이 `베타맘’입니다.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언해 주는 유형인데, 아이들의 행복과 주도성, 독립성, 자립성 등을 중요시하며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게 하는 유형이랍니다. 작지만 예쁜 딸아이를 알파걸로 키운 베타맘 희진이 엄마와 희진이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희진이는, 그 애를 떠올리기만 해도 자동으로 끈기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아이입니다. 예전에 내가 학습지교사를 할 때 인연을 맺었던 아이입니다. 당시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희진이는 아홉 살 어린애인데도 유치원생인 두 살 아래 남동생을 보살피는 일도 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에서 퇴원하는 동생이 버스에서 내리면, 데려오고 간식도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 착실하고 듬직한 아이라는 걸 금방 알았습니다. 내가 수업을 가면 희진이는 책상에 찐고구마나 귤 두세 개를 접시에 담아 두었고, 어떤 날은 사탕 몇 개와 물 한잔을 놓아두기도 하였습니다.

 맞벌이를 하느라 매일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일주일에 한번 수업하러 오는 날을 잊지 않고 이리 세심하게 챙기시는 희진이 엄마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희진이 엄마와 전화상담을 하다가 말미에 그 이야기를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기가 차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희진이 엄마는, 아이들 아침밥 차려 주랴. 출근준비 하랴. 그럴 여력이 도무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를 챙겨준 사람은 바로 희진이란 말인가? 그랬습니다. 우리 희진이가 자기 간식을 아껴 나를 챙겨준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학습지 교사 간식 챙기던 희진이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희진이 집에 갈 때면 근처 마트에 들러 과자나 빵을 사서 함께 나눠 먹고 희진이 동생 것도 꼭 남겨두었습니다. 희진이는 조그마한 체구였지만 공부 시간에 절대 한 눈 팔지 않았고, 숙제도 꼬박꼬박 잘 해오는 착실과장 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나와 보내다가 나는 학습지 교사를 그만 두었고 희진이와도 어쩔수 없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서 너 해가 흘러간 다음, 나는 학원을 차려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상담전화를 받았습니다. 딸아이가 중학생인데 학원을 보내려고 광고책자를 살펴보다가 `아이의 꿈을 키워 드립니다. 아이와 함께 공부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고민합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맘에 들어 전화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소리의 톤과 차분한 대화스타일이 어딘지 많이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며 통화를 하는데 예전에 학습지교사 때, 전화로 간간히 상담도 하고, 애들 키우는 애로사항도 많이 나누던 희진이 엄마가 떠올랐고 중학생이 된 딸이라고 해서 확신이 들어 내가 먼저 “혹시 희진이 어머니 아니세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희진이 엄마가 깜짝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이 수화기를 때리는 음성에 그대로 배어 있었습니다. “어머나! 어떻게 아셨어요?” 이제 막 중학생이 된 희진이는 앳된 얼굴은 그대로였고 그 때보다 키만 조금 자라 있었습니다.

 처음 학원에 온 날, 희진이는 나를 알아보고는 환한 얼굴로 활짝 웃었습니다. 희진이는 말수도 많지 않고 웃음소리도 크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내성적이며 소심한 성격에다가 가녀린 몸매는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숙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한 번도 빠진 날이 없이 누구보다 야무지고 착실하게 해 왔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5학년이 된 동생 우진이 숙제를 도와주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 부지런한 누나였습니다. 희진이는 누구보다 일찍 학원에 왔고 공부 또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단어 암기나 듣기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우진이는 누나와 달리 거의 매일 남아서 보충을 받았습니다. 그런 동생 때문에 희진이는 제일 먼저 과제를 마치고서도 제일 늦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일로 짜증을 내거나 동생을 핀잔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공부보다 컴퓨터게임을 더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길 좋아하는 우진이는 학원 오는 시간도 까맣게 잊고 축구를 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희진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어이 동생을 찾아 학원에 데리고 옵니다. 희진이는 아무리 화가 나도 우진이를 다그치거나 크게 혼내지 않고 손을 꼭 잡고 데려옵니다. 우진이는 신나게 축구를 하다가도 누나가 찾아 오면 대들거나 군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누나를 따라 학원에 옵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한다”

 

 희진이를 보며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 붙이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은근하지만 끈기있게 공부하는 노력형 학생의 전형이 바로 희진이입니다. 희진이의 교과서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여러 겹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처음엔 애가 색칠공부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교과서가 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궁금해 시험을 준비하는 자습시간에 슬쩍 슬쩍 눈 여겨 보았습니다. 국사과목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연필로 밑줄 그으며 본문을 읽더니 다시 한 번 파란색 볼펜으로 줄을 그으며 읽고, 또 세 번째는 형광펜 분홍색이 등장하고 마지막엔 형광펜 연두색으로 표시하며 본문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역사공부 대장정을 마치는가 보다 하고 지레 짐작 했는데 섣부른 판단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노트에다 교과서 첫 페이지부터 요점정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에야 그 작업이 마무리 되었는데 노트의 절반을 넘는 분량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국사 요점노트를 거의 외우다시피 해 국사는 만점을 받아왔습니다. 물론 다른 과목들도 이런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험기간이 되어도 교과서는 학교 사물함에 처박아 놓기 일쑤고, 다음에 아이를 낳으면 가보로 물려줄 요량인지 점하나 없이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희진이의 공부법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요령부득한 짓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 희진이는 교과서를 완벽하게 터득하며 공부의 맛을 찾아 내는 것 같았습니다. 희진이는 중학교 졸업 무렵 최상위권이 되었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희진이 엄마가 과일을 한 아름 사가지고 학원에 왔습니다. 그런데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경위를 물었더니 운동하다 다친 것이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스쿼시를 시작했는데 제대로 해보려고 남들 쉬는 날까지 혼자서 너무 연습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인대가 파열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모전여전’이라더니! 희진이의 억척과 끈기는 엄마의 유전자에서 내려온 것임을 확신하며 희진이 엄마를 찬찬히 살펴보며 속으로만 가만 가만 웃었습니다.

 

 4년 내내 장학금 받는 대학 진학

 

 지금의 대학입시는 예전과 달리 전형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입시전략에 따라 수능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여전히 대다수 수험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반영요소는 수능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는 어떤 학생은 수학문제를 풀다가 객관식 고난도 다섯 문항이 막히자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그룹 멤버의 생년월일로 주르륵 찍었는데 운좋게 모두 정답을 맞히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만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이런 행운을 만나려면 아마 적어도 3대는 공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대게는 수능이 주는 중압감으로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을 쑤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희진이도 수능시험을 망쳐버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난 다음날, 눈이 벌개진 희진이는 한 번만 더 수능을 치르겠다고 단호하게 어머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희진이의 각오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 마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어서 재수하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녹록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불평 한마디 늘어놓지 않고 감수했습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다음해에 희진이는 이른바 `SKY’로 불리는 최상위권 대학에도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고민 끝에 희진이는 그 대학들을 포기하고 4년 내내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바로 국내 최고의 기업에 취직이 보장되는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희진이 엄마는 희진이가 학비 걱정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 희진이의 결정을 뒤집으려 했지만 희진이의 고집을 꺽지는 못했습니다. 희진이는 기어이 한 단계 낮추어 자기 뜻대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기말고사 때 광주에서 친구가 희진이와 놀려고 희진이 원룸에 왔대요. 지딴에는 고민이 됐는지 나에게 전화해서 시험공부를 해야할지, 친구와 놀아주어야 할지 고민이라네요. 그래서 제가 공부는 평소에 하는 거고 친구는 간만에 온 거니까 친구를 챙겨라 했더니 역시 엄마는 내맘을 안다고 하면서 진탕 놀았다네요.그래도 시험은 잘 봤더라고요.호호호.”

 항상 희진이 자랑으로 시작해 자랑으로 끝나지만 거들먹거리지 않고 진솔한 편이고 한편으로 힘이 솟아나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 희진이 엄마랑 통화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희진이가 자기 용돈 주는 날을 나에게 잘 기억하고 있으래요. 그래서 내가 용돈 제때 안줄까봐 그러니 하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졸업하면 그때부턴 그 날짜에 자기가 내 용돈을 주겠다네요. 호호호.”

 이럴 땐 정말이지 시셈이 나기도 합니다.

 

 은근과 끈기로 개척하는 삶

 

 “희진이꺼 1학기 성적표가 왔는데 우진이가 잽싸게 뜯어 보고, 전과목이 A플러스인 것을 확인하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뒷목을 잡더라고요. 그러면서 무슨 소리를 한 줄 아세요. 호호호.”

 우진이가 했다는 그 말을 지금의 시국상황에 맞게 윤색하자면 이렇습니다.

 “엄마! 혹시 비선실세 아니여? 혹시 엄마 본명이 순실이 아니냐구?. 아니 어떻게 이런 성적이 나올수 있어. 엄마가 교수들한테 압력 넣었지! 내가 누군줄 아느냐고 눈에 힘 팍팍 주면서 말이야.”

 얼마 전 희진이 엄마는 희진이가 한 학기 먼저 조기졸업을 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대학원생들 중에 술도 끝내 주게 잘 마시고 연구도 잘해 교수님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며 칭찬인지 자랑인지 흉인지 모를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았습니다.

 실은 희진이 엄마의 은근과 끈기는 전화 통화할 때 가장 빛이 납니다. 30분도 넘게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내 귀는 멍하고 핸드폰 들고 있던 왼팔은 쥐가 나기 직전이고 핸드폰은 열 받아 폭발직전, 웃다가 맞장구치다 주절거리던 내 입도 입술이 불어 터질 지경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희진이 엄마의 전화를 받아주다가 나도 저절로 내공이 늘어 전화 통화 할 때 발휘되는 은근과 끈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내가 우연한 기회에 얻은 절대내공! 은근과 끈기의 통화!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다 써야 제대로 빛이 날까요?

홍은숙 <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 : 정혜원 <살레시오여중 2년>

희진이의 억척과 끈기는 엄마의 유전자에서 내려온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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