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갖춰야 할 공감 능력을 고민하며
▶세월호 참사 속 되새겨본 공감
이런 내용으로 공감 교육에 대해서 글을 썼지만, 어제 밤에 결국 다 갈아엎었습니다. 글을 다시 읽어보니, 마른 행주 쥐어짜듯, 저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하는, 그래서 딱히 하나마나한 말들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회적 고통에 대해 ‘정말 공감해본 적 있는가?’ ‘나는 나의 생각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는가?’ ‘공감이란 정말 가능할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내가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머리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등의 걸림돌이 마음 한 켠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볼게요. 저는 3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수개월간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팽목항에 찾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텅 빈 체육관에 미수습자 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절망의 공간입니다. 그곳에 두어 시간 유가족들과 마주 앉아 있다가 광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버스에 수차례 올랐으면서도 저는 정작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 한 마디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절망의 깊이를 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절망 앞에서 저는 무력함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 절망이 너무 깊어 보여서 뛰어들 엄두를 못 내고, 그저 뛰어들 용기가 없는 저 자신을 매번 확인하고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무엇인가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그 뒤에 시민상주모임에서 한 번씩 참여해서 노란길을 걸어도, 저는 무기력함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정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을까요? 제 개인적으로 안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또는 이렇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무력함을 느끼는 것 또한 공감의 과정이 아닐까? 그리하여 ‘함께 느끼려는 능력이 공감 능력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기존에 자신의 것이 아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겪었다면, 그것을 두고 공감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되묻고 또 그렇게 합리화 해보기도 합니다. 아직 뚜렷한 답은 없습니다.
▶공감하고 실천, 어떻게 가능할까?
도대체 공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또는 그런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요? 공감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이고, 그것들은 시민교육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애초에 이 글을 통해 정리하려고 했던 물음들을 다시금 여러분들과 함께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세월호 광주시민모임’ 활동을 했던 분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그렇게 매주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몸부림 칠 수 있었나요? 어떻게 그 아픔에 공감하고 그렇게 실천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말이죠. 이 분들의 대답으로부터 시민교육-공감교육의 실질적인 아이디어들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