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은 행복하니?”
“아니.”
“네가 바라보는 곳이 너무 높이 네가 바라보는 곳이 너무 멀어져 있게 되는 시간이면 이미 갖고 있고 네가 가져야 하는 너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고? 혹시 … 못 본척하고 싶은 거야?”
가끔 이렇게 불쑥 이미 지난 시간 속 어린 내가 나를 찾아온다. 가끔 이렇게 불쑥 아직 만나지 못한 내가. 어쩌면 정말 이 생에선 정말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보다 앞선 어느 날의 내가 나를 찾아온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지만 그렇다 한들 지난 시간 속 어린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루하루가 그저 무거운 지금의 나에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뻔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더는 이렇게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매정한 뿌리침 같아서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아무것도 소망하지 말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라는 완전한 ‘외면’과 완전한 ‘포기’ 인 것 같아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가족, 친구, 연인 사랑하는 사람들… 어떤 이유에서는 오래도록 간직했고 어떻게든 오래오래 내 것이기를 바랐던 마음.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살면서 나이 듦 보다 때때로 더 자주 슬퍼지는 것은 매번 그럴듯한 이런저런 이유로 포장 되지만, 사실은 이별 이란 말로는 차마 다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아픈 ‘잃음’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리 아파도 또 어떻게든 살게 되니 너무 거기에만 얽매여 있지 마. 언제까지 그럴 거야? 네가 슬픈 건 나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돼. 널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야. 부탁인데 제발, 제발 그만 좀….”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을 거라는 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생각이다,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아야 한다는 건 나에게는 단 한마디 묻지도 않고 나에게는 단 한번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당신이 혼자 만든 정답에 당신의 뜻대로 나를 끼워 맞추려는 것일 뿐.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다.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듣기 싫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쓴 소리가 아니다.
그런 생각과 그런 눈빛과 그런 마음은
정말 고맙고 정말 미안하지만 나를 위한 어떤 위로도 될 수가 없다.
정말 고맙고 정말 미안하지만 나를 위한 어떤 배려도 될 수가 없다.
그러니 부탁하건대 제발
이 뾰족하고 모난 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가 누구라도 제발
다른 이의 상처를 어른보다 못한 철없음으로 치부하지 말아주기를
다른 이의 아픔을 그저 참을성 없는 어리광쯤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주기를
태어나 세상에 살아있는 그 마지막 날까지
내가 누구든 당신이 누구든 우리가 어떤 이름의 누구일지라도
누구의 인생이라도 누구의 시간이라도
인생이란 처음과 마지막 그 어떤 순간에도
나를 대신해 너를 대신해 살아줄 수 없다는 걸 알아주기를
살다가 가끔, 혹은 가끔보다 더 자주
다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슬프더라도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 누구보다 더 똑똑하지 못해도 더 뛰어나지 못해도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고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의 인생을 사는 지금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를 살고 있다.
은수
가을과 겨울사이 낮과 밤의 사이 하루와 하루 사이처럼
내가 나에게 하는 독백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혼자 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