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실 덕치면 천담리 천담마을.
 촌집 안방에 걸린 시계들이란 대개 가족사진과 벗해 있기 십상이다. 한지붕 아래 애면글면 복닥복닥 살아온 가족들에게 흘러간 시간을 증거하듯.

 환갑과 고희잔치, 자식들 결혼식과 대학졸업, 손자 돌잔치 등 인생의 크고작은 통과의례를 기념한 사진들이 ‘가족사박물관’을 이루는 벽. 지나온 시간과 추억들이 거기 흐른다.

 장하고도 애잔한 생애의 한 굽이, 한 장면이 붙박여 있는 사진들. 이 사진들에 깃든 찰나와 영원을, 과거와 현재를 일깨우는 것은 그 옆에서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다.

 가족들의 거짓 없는 연대기 옆에서 시계는 단지 ‘몇 시 몇 분’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이란 장중한 시간을 함께 품는다.

 가족사진이 모셔진 벽은 어매들에게 성소와도 같은 곳. 알록달록한 조화가 꽂힌 꽃병이며 복조리 같은 상서로운 것들이 그 옆을 호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지금 곁에 없는 누군가의 ‘부재’를 일깨우는 가족사진이기도 하다.

 “칠남매를 낳는디 모다 이래저래 아파갖고 저세상 가불고 남매 남았어.”

 자식 손주들 사진과 시계가 나란히 걸린 윤쌍심(92·고흥 남양면 월정리 왕주마을) 할매의 방.

 “하래가 너모나 길어. 천장 새껄(서까래)만 쳐다보다가 테레비를 키다가 끄다가 함시롱 하래가 포도시 가. 각시 때는 사방팔방 일하러 댕기느라고 오줌 눌 새가 없었어. 새끼들 믹일라고 품팔러 댕기고 쟁기질하고 밭매고 갯바닥에 동지섣달에도 가고 정월에도 가고. 그때는 춘지도 어짠지도 몰라.”

 이제는 대문 밖이 천리만리인 할매에게 하루는 길고, 시계는 멈춰선 듯 느리기만 하다.

 “꼬막 나배기 반지락 낙지 꿀…. 여그 뻘에서 안 난 것이 없었어. 내가 장을 및 장이나 볼븐지(밟은지) 몰라. 갯것 해서이고 조성장 벌교장 고흥장 과역장 요 근방 장은 다 댕갰어. 여그서 벌교장까지 갈라문 50리여. 새복 두 시나 되아서 걸어서 나가. 동네사람 다 모태갖고 함께 가제. 무선께. 그때는 질이나 좋가니, 동강(면)을 나가문 그때사 신작로가 나와. 그때는 함지나 있가니 바구리에 이고 가문 얼굴에 갯물이 찍찍 흐름시롱 가는 거여.”

 밭으로 갯바닥으로 장으로 향한 그 걸음걸음으로 키워낸 자식과 손주들. 먼저 간 자식의 손주 여섯도 할매가 키웠다.

 “긍께 나는 만날 자식 손지들 사진 쳐다보고 사는 것이 십관(습관)이여.”

 눈길로라도 그리 유정하게 어루만지는 것으로 할매의 하루가 간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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