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학생 스스로 존재 드러내다

▲ 2월 초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폭로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시민사회 활동가들.
 작년에 제가 일하는 대안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을 인권적으로 만나기 위한 지침서 제작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 사업담당자로 자원했고, 관심 있는 학생, 교사, 지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세미나를 진행하고, 또 학교 수업으로 개설해서 관련 쟁점을 다루고 학기 말에는 ‘성소수자 인식 실태 설문조사’까지 진행했었지요.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업 중간보고를 하는데, 교사들 사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단순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 더 나아가 특정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강한 주장을 펼치는 교사들까지, 인식의 지평이 다양했습니다. 저는 동료 교사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적잖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대화나 논쟁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 할 수 있었지만,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강한 반대 주장 앞에서는 생산적인 대화가 어려웠지요. 성소수자 학생에게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동료 교사들과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참 막막했습니다.
 
▲성소수자, 올바른 교육적 관점은? 

 만약 이런 고민을 하는 곳이 어느 퀴어 퍼레이드 행렬 속이라면, 그래서 보수 기독교 시위대와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면, 몇 마디 구호를 외치고 분노를 표출하거나 그들의 주장 따위 무시로 일관하며 행진을 하는 걸로 만족했을 것입니다. 행렬 속에 있는 사람들이나 행렬 밖에서 큰 목소리를 외치는 사람이나 굳이 서로를 설득하거나 대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그러나 제가 서 있는 곳은 좋으나 싫으나 일상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 교사들이 있는 대안학교입니다.

 동료 교사 중 한 명이 학교 현장에서 ‘동성애 반대’ 의사를 공공연히 밝힌 것을 두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성소수자 혐오표현으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가치관들의 충돌로 전제하고 온건하게 합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두 가지 길 모두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죠. 사회적으로는 두 말할 것도 없고 학교 차원에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장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하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교사들 사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교사를 반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사가 아니다.’ ‘쫓아내자’등의 감정적인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온건하게 대화를 시도한들 서로 전제하고 있는 바탕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고 주장하지만, 교사들 마다 교육관이 조금씩 달라서 성소수자 학생과 관련해서 ‘무엇이 교육적인 관점인가?’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교육의 본질’까지 문제가 확장되고 더욱 복잡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여기’ 교사들 고민 시작되다 

 그 와중에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기 말에 진행한 ‘성소수자 인식실태 설문조사’에서 (비록 설문지면을 통해서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Here, I am!”(여기, 내가 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즈음인가요? 서울에서는 이런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서울시민 중 누군가는 성소수자입니다.”라는 현수막은 문제없이 걸렸지만,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다.”라는 현수막은 곧바로 철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사자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나 봅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멀찍이 떨어져서,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교양으로 여길 수 있지만, 당장 눈앞에 서 있는, 피와 살을 가진 한 사람으로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로 여기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사자 학생이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낸 일은 엄청난 용기로 결단을 한 행동입니다. 그 뒤에 밀려올 가늠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을 감내하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런 용기와 결단이 두터운 현실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당사자 학생의 외침으로 기존 교사들의 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사들은 좋든 싫든, 각자 입장에서 임의로 상정하고 있는 성소수자 학생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 여기’ 있는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해, 더 나아가 성소수자 학생들과 함께 인권친화적인 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대화의 판이 뒤집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Me Too와 #With you가 보여주듯이, 당사자의 목소리는 힘이 셉니다. 게다가 당사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까지 함께 울린다면, 그때는 판이 뒤집어 집니다. 아무쪼록 곳곳에서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길 바랍니다.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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