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황정은 ‘연년세세(年年歲歲)’(창비:2020)

그날이 그날 같고 벌어지는 일들이 하나도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또 묵직하게 마음 한쪽을 누르고 있는 일들은 몇 해가 가도 가시질 않는 것이 인생인가 싶을 때, 우리는 책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황정은 작가의 2020년작 ‘연년세세(年年歲歲)’(창비)도 그런 책 중에 하나입니다.

비교적 젊은 작가군에 속하는 황정은 작가는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파씨의 입문’ 같은 소설집이나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 문학상도 다수 수상했습니다. 

황정은 작가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와 개인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점을 특별하게 꼽습니다.

전작 ‘디디의 우산’(창비,2019)에서도 d와 dd라는 인물을 통해 세월호 참사나 촛불혁명 등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것들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고통과 상실을 감내하게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부분을 부르짖듯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에 주목합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면, 우산을 씌워 비를 피하듯, 어느새 위로와 희망을 전해줍니다. 즉 읽는 이로 하여금 나 혹은 내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공감하게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한 토닥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연년세세’은 연작소설입니다.

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1946년생 순자씨’라 불리는 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이어집니다.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지금-여기의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되는데, 황정은 작가만의 감각과 깊이 있는 사유로 요란하진 않지만 빠져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순일이 차녀 한세진과 함께 철원군에 있던 외조부의 묘를 없애는 ‘파묘’, 장녀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백화점 판매원 한영진의 이야기 ‘하고 싶은 말’, 어릴 적 ‘순자’라고 불리던 이순일의 피란생활과 고통, 친구 순자와 얽힌 옛 이야기를 되짚어보는 ‘무명’, 시나리오 작가인 작은 딸 한세진이 북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뉴욕을 방문하며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의 아들 노먼을 만나는 이야기 ‘다가오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가 화자를 바꾸어 가면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들려줍니다.

이순일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한영진의 가족과 함께 한 건물에 살며 큰 딸의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합니다.

작은 딸 한세진은 무심한 듯 조금 겉돌긴 해도 어머니를 챙기고 가족의 대소사를 함께하며 자주 안부를 나눕니다.

큰 딸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는 것 때문에 집안에서 어느 정도 어머니 이순일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문제가 있는 집도 아닙니다.

어느 가정이나 있음직한 이야기들을 따라 읽게 되는데, 연작소설의 특징상 이해가 안 되었던 어떤 말이나 태도가 다음 작품에서 풀리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P. 138 ‘무명’)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빌던 이순일의 바람은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서로를 무심한 듯 다독이며 견뎌내는 날들 속에 어쩌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끝내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어도, 용서받지 못해 너무 늦었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어도, 사람들을 실망시켜도,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맞닥뜨려도, 삶은 유유히 지나가고 어느새 알게 되는 진심이나 사랑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요. 

작가는 “사는 동안 ‘순자’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고,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연년세세토록 ‘순자씨’로 표현되는 어머니들- 여성들에게 삶을 살아내는 그대들이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삶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무엇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나? 다들 저마다 애쓰고 있으니 좀 견뎌보자’라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P. 182)

현재를 있게 하는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있게 하는 현재를 만들어가는 우리에게, 삶은 연년세세 계속되고 위로와 희망과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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