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도급 관행·관리 감독 부실

9일 붕괴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
9일 붕괴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

 #철거에 따른 붕괴 가능성이 있음에도 별다른 안전 장치가 없었다. 붕괴 조짐을 느낀 현장 작업자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인접한 도로 및 주변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 감리자가 없었다. 철거 공사 현장 작업자 다수가 원청에서 하도급,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계약 구조로 작업에 투입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안전 콘트롤타워가 부재했다.

 9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현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소방당국 및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다.

 #10일 오전 광주시청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는 재하도급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철거공사는 한솔기업과 계약했다. 한솔기업과의 계약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감리업체 상주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감리 분야는 비상주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감리업체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감리업체는) (우리의)감독기관이지 (감리업체 상주 비상주 여부 관련)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최종 책임을 지는 시공사임에도 사고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답이 대부분이었다.

 # “안전 컨트롤 타워가 있었다면 (현장 작업자들이 붕괴 조짐을 느끼고 대피한) 20분 동안 충분히 인명사고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이 이뤄질 수 있었다. 안전 콘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것은 원청업체 책임일 수밖에 없다. 책임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하도급은 없어져야 한다.”

 한 소방방재과 교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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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번 참사가 발생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재하도급 관행과 이로 인한 공기단축 압박, 관리감독의 총체적 부실이다.

 “철거 현장에서 크락샤 장비를 조종하는 노동자들은 단박에 2019년 잠원도 철거 현장 붕괴 사고를 떠올렸다. 철거 작업은 건물 윗 부분부터 진행된다. 굴삭기에 각종 벽체나 구조물을 폐기할 수 있는 집게를 장착한 크락샤 장비는 안정적인 작업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소형 장비를 옥상으로 올리든가, 집게를 높이 올릴 수 있도록 해 철거 작업을 해야 한다.

반면, 현장에선 왕왕 비용 절감 문제로 폐기물 잔재를 쌓아 올린 데다가 크락샤를 올려 철거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되면 장비가 넘어갈 우려가 커진다. 2019년 현장을 떠올리는 건 그 때문이다. 이같은 철거 관행은 구조적인 부분에 기인한다.”

 10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 내용이다.

 건설노조는 “현장 노동자들이 꼽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라면서 재하도급 관행과 관리감독의 부실을 지목했다.

 “재하도급을 숨기려고 계약서를 안 쓰고 구두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재하도급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건설현장 대부분이 그렇듯 서류는 완벽하다. 문제는 도급 단계를 거칠수록 공사비용이 내려간다. 건설사는 더 싸게 공사를 맡고, 또 이윤을 남기려 한다. 이 때문에 비용 절감, 공기단축을 목표로 무리한 작업들이 진행된다. 이를테면, 소형 굴삭기를 투입해야 할 곳에 빨리 빨리 속도전 때문에 대형 굴삭기를 투입하는 식이다.”

 재하도급 관행에 대한 건설노조의 설명이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서도 철거업체가 작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건물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자치21도 성명을 통해 “이 사고의 근본에는 현대 산업 개발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건물 뒤쪽에 흙더미를 올리고 그 위에 굴착기를 올려 5층 높이를 한꺼번에 철거하는 무리한 철거가 진행된 이유, 승강장 이동 조치가 없었던 점, 안전 감리 책임자가 없었던 점, 인도 통행 통제 등 안전 조치 미흡 등이 발생한 근본에는 이윤만을 고려한 불법적인 하도급 사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9일 붕괴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
9일 붕괴 사고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

 참여자치21은 “시공사는 안전 관리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하도 하도급 구조에 문제가 없는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 책임을 소홀히 하고 이윤만을 위해 안전에 대한 책임을 하도급업체에 떠넘긴 것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관리감독의 부실도 건설노조가 지목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철거 현장이라고 무조건 위험한 건 아니다. 안전하게 일하지 않아 사고가 난다. 철거 작업 특성상 무게중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건물 가장자리 부분은 가장 나중에 철거한다. 건물을 받치는 보나 기둥은 두고 다른 부분부터 철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무게 중심이 바깥으로 쏠리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철거 공사를 공사계획서대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철거 작업 전반은 노동자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철거 현장엔 감리도 있고, 안전 감독관도 있다. 관리감독의 총체적 부실은 결국 사고를 부른다.”

 현장 노동자들은 “기본 절차나 공사 계획만 잘 지켰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건설노조는 “전국적으로 재개발 현장이 동시에 허가가 나면서, 비전문 업체의 난립이 우려되고, 또 다시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노조는 철거 현장 사고 방지를 위해 △재하도급 근절 및 적정 공기 보장 △철저한 관리감독 등을 촉구했다. 건설노조는 또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면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 설계, 감리, 원청, 협력업체 등 건설현장 전반을 아울러 안전에 대한 각각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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