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당뇨 합병증 가벼운 부상도 치료 어려워

[동물과 삶] 사막여우

본 이름 보다는 2차 대전 독일군의 롬멜장군, 알제리 축구단, 생떽쥐베리 어린왕자, 뽀로로의 에디로 기억되는 동물이 있다. 바로 사막여우다. 하지만 그의 진실은 멸종위기동물, 사막의 파수꾼, 침묵의 사냥꾼이다. 우린 적어도 동물에게선 실체보다 표상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 꾸며지고 부풀려진 모습으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고, 개인들도 그런 이미지 덧씌움에 그리 큰 거부감을 갖지 않으니 무언가를 진정으로 바라보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을 들라면, 거의 80~90%가 테이머(길들이기)를 꼽는다. ‘다른 이의 발자국 소리엔 도망치겠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나를 먼발치에서부터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네가 오기 전 몇 시간 전부터 난 두근거리기 시작할거야.’, ‘난 세상의 많은 여우 중에 너에게 하나 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될 거야.’ 라고. 딱 연애할 때 써먹기 좋은 말들의 잔치이다. 

그런 유명한 사막여우가 진료실에 아파서 들어왔다. 처음에는 가벼운 꼬리부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치료했다. 마취 후 염증부위 모두 제거해주고, 봉합해 주고 돌려보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일주일 후에 실밥만 제거하면 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다시 입원한 녀석을 보니 이 봉합자리에 농이 생겨 봉합사가 다 뜯어졌다. 보통 야생동물들은 상처부위를 잘 안 건드리는데 녀석은 물어뜯었거니 생각했다. 다시 재수술 하고 이번에는 반려동물처럼 목에 넥칼라를 씌우고 입원까지 시켰다. 그런데 또 단단한 봉합조직이 이상하게 녹아내렸다.

이게 뭐지? 당황한 가운데 피검사를 했더니 포도당 수치가 200이상이 넘었다. 아! 당뇨병이었다. 나이도 이미 10살이 넘어서 그게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당뇨병 합병증이 있으면 상처가 잘 치료가 안 된다더니 딱 그 경우였다. 장기간의 입원치료가 요할 것 같았다. 내심 옆에서 내 치료를 못미더워 하던 신참 수의사에게 ‘이제부터 네가 한번 해볼래!’하고 케어를 맡겨 보았다.

사실 의욕이 충만한 그녀에게 무언가 지속적으로 치료할 꺼리가 필요하긴 했다. 그렇게 장기간의 치료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수의사는 당뇨병 키트사고, 수술 세트 다 새로 갈고, 온갖 붕대며 포대, 소독약, 새로운 항생제 등등 그야말로 초반부터 엄청난 물량 공세에 나섰다. 날마다 포대 갈아주고, 자기가 다시 재수술하여 꼬리 조직을 거의 다 도려내고, 아예 개방 창을 만들어 슈가(설탕)요법인지 뭔지 까지 시행했다.

난 옆에서 조금 불안했지만 필요할 때 잘 보조해주면서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 잘 안되니까 이번에 다른 곳으로 수술을 또 의뢰했다. 결국 개방 창을 다시 덮고 돌아왔다.

뻔한 수술이었다. 그렇게 날마다 포대는 쌓이고 진료부담은 늘어만 갔다. 그걸 오기인지 미안해서인지 혼자서 다 견디고 있었다. 난 옆에서 보조해주면서, “있잖아! 오랜 치료는 누구나 지속가능하게 하는 게 중요해, 네가 혹시 없어도 누군가는 할 수 있게 좀 더 간단한 치료 시스템을 만들어 놔.” 그렇게 충고했건만 이미 승부욕이 충만한 수의사는 내 코치정도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이미 두 번의 수술 실패로 내 신뢰감은 그녀에게서 땅에 떨어져 있었다. 난 논쟁하기 싫어서 한쪽으로 비켜나 있었는데 그녀는 휴일에도 날마다 나와서 하루 두 번 포대 갈기와 밥 먹이기, 수액 등을 지극 정성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막여우의 태도였다. 보통 사막여우는 엄청 조심스러움이 많고 치료에도 반항적이었다. 그래서 조금만 치료를 하려해도 채로 잡거나 마취를 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치료 시작 후 언제부터 순한 양이 되어있었다.

난 그런 여우를 그녀의 ‘치와와’라고 불렀다. 정말 어린왕자의 길들인 여우가 돼버린 걸까? 아니면 지쳐서 포기했나? 하여튼 둘의 관계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단 안타까운 건 그녀가 너무나 그 한 동물에 집착한다는 거였다. 선택과 집중, 정말 중요하지만 때론 너무나 심한 집착이 다른 것을 가리게 할 수 있다.

가령 피하 영양주사는 어느 정도 양만 주사가 가능한데 날마다 과하게 집어넣어 피부 욕창을 만들어 놓았고 날마다 억지로 먹이를 먹여 장염에 걸리게 한다든지 그런 거였다. 사실 요즘 수의사들은 나처럼 대 동물에 대해 거의 배우지 않고 돈이 되는 개 고양이 같은 소동물만 집중적으로 배우고 나오니 동물병원처럼 한 치료에 올인하는 것도 이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달, 정말 정성이 통했는지 온갖 무리한 치료를 하는데도 사막여우는 견디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무심히 지켜봐 주는 나에게도 그녀는 차츰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며칠간 여우가 좀 더 회복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게 죽기 전 마지막 활력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사막여우는 몸에 온갖 상처를 안은 채 저 세상으로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수의사는 며칠 동안 말도 않고 허탈해 했다. 나 역시 슬펐지만 그녀의 아픔에 비할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여우가 떠난 후 얼마 있어 수의사는 차츰 회복되는 것 같았다. 다시 우리 팀 다른 일에도 차츰 뛰어들었다. 그리고 처음보다 우리 팀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져 있음을 은연 중에 깨달았다. 이건 뭐지? 치료 하는 동안 속으로 원망도 많았는데…이런 게 미운 정도 정이라는 건가 싶었다. 전문가들은 때론 작은 의견 충돌에 첨예하게 대립한다.

하지만 그건 서로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 일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까 빚어진다. 당연히 심하지만 않다면 이런 충돌과 경쟁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과 멋진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를 속으로 조금씩 원망하면서도 끝까지 배려해주고 존중해 주었다.

그게 아마도 우리를 이 일을 겪은 이후 훨씬 더 가깝게 만든 것일 것이다. 사막여우가 가져온 우리만의 작은 기적. 그렇게 여우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사이를 새롭게 이어준 채 어린왕자가 떠난 소행성으로 홀연히 떠나갔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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