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무대읽기]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
“선택과 행동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진다“

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
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

 11월 3일부터 4일까지 극장 통에서는 대구 극단 ‘수작’의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공연이 있었다. ‘햄릿’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작품이다. 덴마크 왕자인 햄릿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재혼한 숙부에게 복수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번 극단 ‘수작’의 무대는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정통적인 극이 아님을 표방하고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취한 숙부를 단죄하려는 햄릿이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만약 햄릿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떤 결과치가 도출되었을 것인지 상상하고 있다. 그래서 햄릿의 각기 다른 선택에 따른 세 가지 버전의 극을 보여준다.

 첫 번째 버전에서는 햄릿이 모두에게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는 복수를 단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아버지의 원수인) 숙부는 조카이자 아들인 햄릿의 2세에 빠져 손자 바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트 왕비 역시 손자에 빠져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물론 햄릿과 오필리아도 행복해진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와 같이 햄릿이 복수를 한다. 햄릿도 죽고, 오필리아도 죽고, 오필리아의 아버지와 오빠도 죽고, 왕(숙부)과 왕비도 죽는다. 햄릿이 복수를 원하는 아버지의 망령의 뜻을 저버리지 못하자 자신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게 된다.

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
연극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

 버전이 끝날 때마다 배우들은 극이 끝난 것처럼 커튼콜을 한다. 하지만 햄릿 역의 배우가 항상 파투를 낸다. 그러면서 햄릿이 했을 법한 고민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한다. 선택과 행동이 달라지면 당연히 상황도 달라진다.

 아마 극단 ‘수작’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을 것 같다. 다른 선택과 행동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 그런데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꼭 ‘햄릿’이어야만 했을까. 셰익스피어와 그의 유명한 비극 ‘햄릿’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햄릿’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이번 공연을 봤다면, 얼마나 충실하게 극을 따라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선택이 달라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는 해도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가 기본은 셰익스피어의 극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충실했다기보다는 중요한 부분들만 압축해서 요약본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햄릿이 어머니에게 하는 유명한 대사,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다’나 ‘햄릿’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와 같은 대사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표피적으로만 울려 퍼진다.

 ‘햄릿’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연출가와 극단이 개작을 통해 독특한 무대를 만들어 왔다. 주인공인 햄릿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들, 예를 들면 오필리어나 클로디어스(숙부)의 관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하기도 하고, 뼈대만 가져와 아예 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번 극단 ‘수작’의 ‘햄릿, 나는 죽이지 않았다’도 이런 재해석의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이 수고를 많이 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 그 수고가 화려한 의상과 어색한 캐릭터에 묻혀 온전히 빛나지 않았던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도 모르고 ‘햄릿’도 모르던 사람이 이번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좋은 효과이겠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지원금으로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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