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배움 찾아 떠나는 여행
부여 123 그리고 논산과 하동으로

부여 정림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석탑.

 지방정부나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결핍을 느끼고 보다 세련되고 정제된 곳을 찾아갈 때 예산안이나 기획안의 첫머리에는 ‘선진지 견학’이라고 쓴다. 그것이 차창의 앞머리에 들어가 ‘○○단체 선진지 답사’라고 광휘를 발할 때 그럼 저 안에 들어 있는 분들은 모두 후진지에서 오는 것을 자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삶의 조건들이 다르다 보니 단지 그 분야를 몰랐거나 놓쳤을 뿐인데 괜한 자괴감을 꼬리표처럼 달아야 하는 언어의 모순을 ‘배움여행’으로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2월2일 금요일 오후 영암의 느슨한 관계를 가진 다섯명은 2박 3일 일정으로 ‘진짜 마을 만들기가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길 위에 섰다. 영암읍 도시재생주민위원회의 위원 일행과 낭주신문의 편집국장 그리고 필자까지 5명은 빼곡한 일정으로 부여와 논산의 연산면과 하동의 악양과 화개를 직접 돌아 보는 여정을 기획했던 것이다.

 영암을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이렇게 코스를 잡은 이유는 관광분야에서 후발주자에 속하는 영암군의 자원을 주민 주도의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바꿔보자는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로얄페이퍼 하우스 마을호텔 모습.
로얄페이퍼 하우스 마을호텔 모습.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전담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여러 고민이 많았다. 마을 전반을 수평적 호텔로 만든 강원도 고한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요즘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부여로 갈 것인지 망설이다 마침 고한은 겨울 비수기를 맞아 리뉴얼 작업중이라고 하니 부여를 택하고 하동은 질문의 여지가 없이 기필코 가서 만나 뵈어야 할 놀루와 협동조합의 조문환 대표를 좌표로 삼았다.

 그리고 중간에 끼어있는 논산의 연산은 정부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생태와 문화가 숨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포지셔닝하는 중이라서 슬쩍 들르기로 했다.

 2일 오후 출발한 우리는 해 어스름제에 부여의 마을 호텔에 도착했다. 부여에서 우리를 안내해 줄 이는 과거 ‘에이스벤츄라’ 라고 하는 기획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지금은 사회적 기업인 협동조합 ‘주인’의 노재정 대표였다. 오랜 벗인지라 처음 예약할 때부터 나는 “그대 도시의 부활을 위한 시도를 과감없이 보여주시게” 라며 단 내일 점심 후에는 떠나야 한다는 일정으로 부탁했었다.

 그래서 먼저 노후된 마을의 살림집을 체류형 숙박시설로 개조한 ‘로얄 페이퍼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단독주택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3개의 방과 화장실, 거실과 주방으로 구성되어 10여 명이 들어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지만 문제는 화장실이 하나 뿐이라는 점이었다. 아울러 5명의 숙박비가 25만 원이었으니 영암의 기찬재 게스트 하우스가 6인실에 14만 원인 것에 비하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마을 주체들이 청소며 린넨 서비스까지 운영하는 시스템이란 면에서 우리의 숙박이 이 동네에 도움이 된다는 일말의 기여도가 우리를 위로하였다.

 느긋하게 규암면 소재지를 산책하다 협동조합 주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1시간 정도 마을사업과 협동조합의 일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 시간이다. 노재정 대표는 본디 부여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 귀향하여 이곳에 일한 것이 십여년이 넘었다. 문화기획과 관련한 일은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이고, 문화와 관광 사이를 경계없이 넘나든 베테랑이었다.

백마강의 아트큐브.
백마강의 아트큐브.

 한번 오는 관광객, 뿌리 내린 주민들

 어찌보면 이 브리핑의 시간은 자기 고백과 서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역사문화 도시로서의 위상이 크지만 거기에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과연 도시 이미지가 이들에게 밥이 되고 피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언젠가 경주에 갔을 때 역사도시는 시민에게 허상이고 도움이 되기보다는 ‘화장발’만 먹힌다며 진짜 실체는 사육두수가 많은 한우를 비롯하여 농사가 경주시민의 전부라는 말이 여기 부여에서도 유효할 것인지 싶어진 것이다.

 노 대표의 말은 그랬다.

 “백제의 전통과 유적이 남은 역사도시지만 그것은 관광을 오신 분들의 몫이고 여기서 뿌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딸기나 버섯이나 밤과 논농사 같은 작물이 생계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이런 생산구조가 관광분야와 합류되지 못하니 아쉬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되고 롯데리조트와 쇼핑몰이 들어서며 기대되었던 지역과의 연계도 그저 소망에 불과할 뿐 주민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철저하게 지역을 외면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겨울 궁남지.
겨울 궁남지.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못 아쉬움이 가득 베여 있었다. 땅값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데 정작 살만한 공간을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지역민들이나 귀농귀향인들, 거기에 더욱 힘겨운 삶을 지탱해야 하는 청년들의 머뭇거림은 결국 부여 자체가 더욱 쇠락해가는 불쏘시개 같은 역할로 이어져 버렸던 것이다.

 여행을 가면서 모두들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그 기반을 장착하고 지켜냈던 주민들에게 무엇을 보답할 것인지 생각조차 못하고 떠나는 여행이 현지 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궁핍하게 하는 것인지 부여가 증명하는 듯 했다.

 노 대표 본인도 고향으로 귀향하여 면단위의 시골 마을에 살다가 아이가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 순간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소재지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여느 지역에서 겪는 고통이 여긴들 비껴가지 않음에도 슬퍼졌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주민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나가려는 몸짓은 더욱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고령화로 도시화로 아파트 만능으로 비워진 마을의 집을 개조하여 마을 호텔을 만들고, 카페를 만들고, 창·제작의 거점을 만들어내는 작업부터 인접한 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이 이 지역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작업장과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노력들이 하나씩 설명되었다.

 아울러 주변의 관광매력물인 정림사지,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신동엽 시인 문학관 등을 연계한 관광코스 개발과 관광 관련 굿즈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까지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었다.

수륙양용버스 모습.
수륙양용버스 모습.

 활동가에 의탁한 관광시장

 나는 그것이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상근 조합원의 급여를 주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결국 용역 사업이나 위탁사업 등을 통해 지속해 간다는 그 어려운 상황을 들어야 했다.

 밤의 불빛들이 켜지는 규암면의 거리를 거닐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역의 활동가들에게 의탁한 관광시장이어야 하는 것인지 아쉬움이 컸다.

 정갈한 마을호텔에서의 1박을 마치고 이른 아침 우리는 문화단지의 주차장으로 갔다. 이 도시가 자랑하는 수륙양용 투어 버스를 타기 위함이었다.

 사전에 예약이 되어 있는 버스는 우리와 다른 손님을 실고 낙화암이 있는 강으로 달렸다. 퉁명스럽게 생긴 그냥 버스였는데 강물에 디밀어 가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다만 차 안에서 웨이트 발란스 때문에 손님들간의 무게 축을 맞춰야 한다며 안내하시는 분의 조정이 있었고 그 뒤로는 그저 차안에 있으면 일반 도로와 강물 어느곳에서도 안전했다.

 전국에 이런 수륙양용 버스가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큼을 알지만 여행 코스 또한 알차게 갈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기우였다. 늘상 보던 낙화암과 고란사 정도만 보는 것에 그치고 다시 돌아오고 마는 아주 단순한 코스였던 것이다.

전통문화학교 출신들의 레지던스공간.
전통문화학교 출신들의 레지던스공간.

 저 차에 투여된 자본이 만만치 않았을 것인데 어째 이리 밋밋한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누군가는 이런 투어가 비킷 리스트 라는 말에 더 할말이 없어졌다.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에서 수륙양용 버스 투어를 하면 소구력이 있을 것이란 예상을 가지며 2만 9000원의 돈을 지불하고 탔던 이색적인 투어의 방식은 그렇게 좌절로 마감되었다.

 오전까지는 부여에 있는터라 노 대표의 안내를 받아 부여 시내를 거닐었다. 정림사지 곁을 걸으며 바닥의 전돌이 전통문화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이 창안한 것이라는 점에 놀라고, 청소년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여 복합문화공간이자 창작센터로서 기능을 부여하려 노력하는 점도 보았다.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고 있는 복합문화센터의 웅장한 공사 현장도 보고, 마지막으로 궁남지를 들렸다. 백제의 정원 같은 역할을 한 궁남지의 겨울 모습은 역시 쓸쓸했다.

 화려했던 연꽃이 사라지고 연못을 떠다니는 오리들의 한가로운 모습만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부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중국집에서 노재정 대표와 함께 점심을 나눠 먹고 그의 건투를 빌며 우리는 논산의 연산면으로 차를 몰았다.

 저 열정들이 반드시 큰 힘을 발휘할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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