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오후 광주 북구 ㄱ초등학교 운동장. 교사들의 배구 경기가 한창인데, 벤치에는 앞치마를 두른 20여 명의 여성이 탁자 위 음식물을 치우느라 바쁘다. 빈 소주병, 맥주병, 남은 수박, 상추, 고기 등을 걷어낸다. 깨진 맥주병을 쓸어 담는다. 식탁보를 말아 쓰레기 봉투에 넣는다. 한 쪽에선 연기 속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관련기사 5면>
뒤처리를 하고 있는 이들은 행사 진행에 고용된 업체직원들이 아니다.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도 아니다. 앞치마에 적혀 있는 글자는 `광주○○어머니회 봉사단’. 학부모들이다. 운동장에선 교사들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한쪽에선 몇몇 교사들이 맥주와 음료수를 들이키고 있다.
이날 행사는 호남지역 4개 학교 교사들이 모이는 `호남권 OO워크숍’. 교육정보 교환과 체육대회를 통한 친목도모를 위해 1년에 한 번 치르는 행사다.
경기가 끝나고 교사들은 급식소로 이동했다. 급식소 안에는 학부모들이 미리 차려 놓은 맥주, 소주, 과일이 가지런하다. 급식소 문앞에는 식사 후 마실 수 있도록 드링크제가 준비돼 있고, `어머니’ 두 명은 보온병을 들고 식사를 마친 교사에게 커피를 권한다. 교사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일부 학부모들은 밖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앞치마를 안 두르시면 불합격입니다”. 오후 7시20분,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 교사가 그때까지 남아 있던 10여 명의 학부모를 급식소 안으로 부르며 한 말이다. 교사들 앞에 학부모들이 나란히 섰다. 교장의 “수고하셨습니다” 란 말에 교사들은 박수로 학부모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러나 아직 학부모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교사들이 그대로 남겨 놓은 급식판을 치우고 식탁을 닦았다. 7시35분, 15명 정도의 교사들이 한꺼번에 급식소로 들어왔다. 이때 식탁 위 음식물은 거의 치워진 상태.
현장에 있던 한 교사는 학부모들이 행사를 거드는 것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가 이웃사촌인지 모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이미 얘기된 사항이다”고 항변했다. “사람이 살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단히 소주 한 잔 할 건데요”. 마무리하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주문’이 떨어졌고 학부모들은 말끔히 치워진 식탁에 다시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 20여 명의 교사들이 들어와 새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는 한 교사의 부름에 남아 있던 학부모 5명도 합석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교사들의 행사는 저녁8시25분 끝이 났다. 교사들의 행사를 돕던 학부모들의 일도 이때 비로소 끝이 났다.
김창헌 기자 gudu@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