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번 버스 타고 4수원지 가기

햇살이 버스 차창을 비춘다. 한낮의 거리는 정지화면같다. 막 출발한 버스를 잡으러 달리는 회사원도, 지각할까 헐레벌떡 뛰어가는 학생들도 없는 오후다. 머리결을 훔치는 바람이 시원하다. 차창밖 가로수 여린 초록잎이 `눈에 든다’.
그래서였을까. 회색빛 빌딩숲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나 777번 안내판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주월주택단지→ 까치고개→도청(광주YMCA)→조대입구→산수오거리→전망대→4수원지…’ 그 곳까지 40분 정도면 넉넉하다.
충파에서 사람들이 후두둑 내린다. 좌석은 금세 이빠진 것마냥 군데군데 빈다. 다들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대 합격! 공무원 최다 합격! 취업성공률 100%!’. 학원 건물 전면을 뒤덮는 현수막에 눈이 어지럽다. 도청이 보인다. 도청 앞 금남로 거리도 일상에 쫓긴 걸음만 가득하다. 역사는 아득하다.
도청을 지나 조선대 앞을 지나간다. 조선대와 4수원지. 고 이철규 열사. 15년 전 오월이 가물거린다. 89년 5월 당시 <민주조선> 편집장이었던 이철규 열사는 수배중 청옥동 잣고개 너머 4수원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열사’ `고문’ `의문사’ `물러나라!’…. 무겁게 짓눌린 89년 광주는 최루탄 범벅의 나날이었다. 대학생들의 시위에 버스가 엉뚱한 정류장에 세워져도 누구 하나 불만의 소리가 없었던 오월의 `광주’였다.
버스는 산수동 오거리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장원초교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신나게 내달린다. 산수동에서 산마루를 하나 넘어 4수원지로 달리는 한낮의 버스 안엔 승객이 별로 없다. 등산객 서너 명뿐. 한가한 버스는 전용 자가용이 된다. 버스는 오른쪽으로 틀다 왼쪽으로 틀다 목적지에 도착한다.
청암교 너머 4수원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67년에 만들어진 4수원지는 화암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등촌마을과 신촌마을의 양쪽 산허리를 이어 둑을 쌓아 완공했다.
겨울에는 청둥오리 쇠오리 흰뺨검둥오리들이 4수원지를 찾는다. 광주 시민들의 중요한 상수원이라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철망으로 사람들을 막았다. 잔잔한 4수원지 안에 `우리 모두가 주인’이라며 환경보호를 강조한 전광판만 들떠 있다. 4수원지에서 조달한 물은 주암댐 13만톤에 비해 1만2000여톤으로 소량이지만 광주시민들의 중요한 상수원이다.
저기쯤이었을까.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이철규 열사 사건. 성철 스님 말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면 좋을 것을, 4수원지는 그냥 물로 바라봐지지 않는다. 그 곳은 아픈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광주사람 누구나, 여전히, 4수원지 앞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4수원지에 조성된 공원을 돌다 보니 등에 땀이 밴다. 조금 더 걸어 보려고 공원 입구 정류장을 뒤로 하고 마을 쪽으로 내려가다보니 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정류장이 어디쯤이에요?” 묻자 평평한 바윗돌에 앉아 담배를 태우던 어르신이 “정류장이 뭐 따로 있당가. 저짝에서 차가 올 때 뽀딱 일어서면 운전수가 알아서 서”라고 대답한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저만치서 777번 버스가 속도를 줄이며 멈춘다.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정류장이 아니더래도 `사람 보고’ 알아서 서 주는 이 길의 여유가 고맙고 반갑다. 한 시간여 `짧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정현주 기자 ibox@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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