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대한 안 좋은 기억 하나.
하루는 그룹 과외를 하는 친구가 나에게 찾아와 푸념을 늘어 놓았다. 아파트에 사는 학부모들 등쌀에 못 살겠다고. 이유인 즉, 학부모들이 아파트 `질’을 따지며 아파트별로 아이들을 구분해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질’이 다름 아닌 `아파트값’이라는 사실에 어이없어 하던 적이 있다. 평수와 가격 등 숫자에 따라 이웃까지 나누는 세상이 됐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인터넷 카페 `cafe.daum.net/paman’. 이곳에선 무려 10개 아파트 주민들이 `이웃’으로 살고 있다. 개인 목소리부터 반상회 내용, 주민자치협의회와 건설회사 간의 마찰 등 다양한 대화가 자유게시판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때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때론 반박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 아파트를 개인이 아닌 `우리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만큼은 같았다.
분양을 앞둔 임차인들의 권리 찾기도 바로 이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 각 아파트의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방법을 찾으면서 거대한 건설회사와 맞서고 있었다. 일부 아파트에서 실시한 건물 하자부실 실태조사가 다른 아파트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웃의 움직임을 잠자코 지켜보던 아파트도 반상회를 다시 결성하는 공동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로 뭉친 힘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카페 가입 회원 수가 늘어갈수록 이들의 의지도 강해지고 있다.
이들은 따뜻한 공동체를 꿈꾸고 있기도 하다. 7일엔 주은모아 아파트 광장 앞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린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자(母子)를 돕기 위해 임차인 대표자들과 부녀회가 나서서 바자회를 개최키로 한 것. 이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다른 아파트까지 전해지면서 함께 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 다 같은 바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레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그리고 먼 훗날 아이들이 이곳을 `고향’으로 기억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이지은 기자 jour@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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