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쭉을 한자로는 `척촉'이라 한다. 철쭉과 척촉. 발음해보면, 척촉이란 한자어에서 우리말 이름 `철쭉'이 생겨났으리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가던 걸음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답다는 철쭉이 무더기로 꽃밭을 이루고 있는 곳, 봉화산이다.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 경남 함양군 경계에 솟은 봉화산(920m)은 해마다 5월이면 연분홍 철쭉으로 뒤덮인다.
봉화대가 있어 산이름 또한 봉화산이 됐을지 모르나 5월 이곳에선 봉화가 따로 없다.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 철쭉. 봉화에 다름아니다.
봉화산에서 철쭉이 제일 많은 곳은 치재와 정상의 중간지점에 드는 꼬부랑재 부근이다. 꼬부랑재 일대의 철쭉은 어른 키 정도 되는 높이. 그래서 철쭉 핀 길 사이를 걷다보면 온통 철쭉에 파묻힌다.
오랜 사무침처럼 산 곳곳 철쭉
산행을 시작하는 곳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 흥부가 정착해 부자가 된 `발복지'로 이름난 마을이다.
상성마을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하지 않고도 이 철쭉 군락지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상성마을과 하성마을을 거쳐 `봉화산 철쭉군락지'라는 표지석이 서있는 길로 접어들어 차를 타고 오르면 10분 정도 걸어 꼬부랑재에 닿을 수 있다.
봉화산 철쭉꽃의 절정은 대개 5월 중순. 결코 서두름이 없이 충분히 무르익은 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꽃샘추위에 해를 당하는 일이 없다는 게 철쭉이다. 하지만 올해는 꽃이 조금 이르게 핀 데다 최근 이상기후로 제대로 만개해 보지도 못한 채 봄을 여의고 있다. 기대했던 화사함에는 미치지 못하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노래 한대목처럼 `봄날은 간다'의 정서를 그 철쭉길에서 느낄 수 있다.
`봉화산 너메마을'이라는 장수군 번암면에서 온 할아버지는 해마다 봄이면 봉화산에 올라 `꽃 호사'를 누린다고 한다. ꡒ올해는 뽕긋뽕긋허니 올라올 때 서리를 맞아부러서 다른 해보다 몬양이 덜해ꡓ라고 아쉬워 하는 할아버지. ꡒ꽃은 제가끔 다 간직한 미가 있응께, 뭔 꽃이 이삐다고 딱 꼬집어 말은 못하제ꡓ라며 ꡒ철쭉 볼 때문 철쭉이 이삐고 진달래 볼 때문 진달래가 이삐고, 지금 보고 있는 꽃이 젤로 이삔 꽃인 법이제ꡓ라고 꽃구경 법도 들려준다.
철쭉은 갈라진 꽃잎들의 아래 부분이 함께 붙어 있는 통꽃이다. 꽃잎의 안쪽에 자주빛 선명한 반점들이 주근깨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게 신기하다.
흥부마을 아막성터도 둘러봐야
철쭉만 보고 오기는 서운할 일.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을 들른다. 마을 들머리에 `흥부마을' `흥부고장 남원' `발복지' 등이 씌인 돌들이 몇개나 서 있으니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없다. 맞은 편 길가에는 `슬근슬근 박타는' 중인 흥부와 흥부 마누라 조각도 있다. 이미 쪼개져서 `금은보화'를 자랑하는 박도 옆에 있건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지 두 사람의 얼굴은 흥겨움도 놀라움도 없이 점잖을 뿐이어서 좀 심심하다. 두 사람의 조각 밑에는 박속에서 괴물들이 나와 곤욕을 치르는 놀부와 놀부 마누라도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박'처럼 쩌억하니 명쾌하게 갈라서 `권선징악'의 가르침을 주는 세계가 그 안에 펼쳐져 있다.
남원에는 오래전부터 흥부전과 비슷한 `박첨지설화' `춘보설화' 등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다. 부자면서 인색하기 짝이 없는 박첨지하고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착한 아우 박춘보가 있었는데 그 아우가 나중에 부자가 되어 이웃에 착한 일을 많이 하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저 아래 인월면 성산리하고, 이곳 성리가 서로 흥부고향이다, 아니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지명들을 근거로 고증을 거친 결과, 성산은 흥부가 태어난 곳, 성리는 흥부가 형에게 쫓겨나와 복받은 곳으로 가름됐다. 그 `복받은 마을'이 어려운 한자어로 `발복지'라 이름붙여졌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지도를 들여다보면, 흥부가 놀부한테 쫓겨 나와 허기져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흰죽을 쒀다 먹였다는 `흰죽배미'를 비롯 화초장 바위거리, 박춘보 묘, 발복집터, 생금모퉁이, 공구재 등 흥부전과 관련된 지명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안쪽엔 `흥부참샘'이 있다. `흥부가 직접 굴착한 샘…'에다가 `3년간만 이 샘물을 전용하면 위장병 쾌유'란 설명이 붙은 이 샘은 물맛 좋기로 이름나 있어 멀리서도 물 길러 온다. 해마다 음력 9월9일 지내는 흥부추모제에 올리는 제수 역시 이 샘물만을 쓴다.
`발복지'라지만 여느 시골처럼 사람 떠난 빈 집들이 많은 건 마찬가지. 스무집 정도가 남아 있다.
마을 뒤편 밭에서 일하고 있던 `지암떡'과 `장수떡'은 ꡒ복받은 마을에 산께긍가 우리가 말도 못하게 겁나게 부자여ꡓ라고 웃음섞인 말을 건넨다. ꡒ아픈 디 없이 내 몸뚱아리로 일해서 날마다 묵고 산께 그것이 복이제ꡓ ꡒ맘 편히 살면 그것이 부자제 뭣이 부자겄능가ꡓ….
`복'과 `부자'에 대해 흥부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이 내리는 정의다.
`흥부각'이란 현판 걸린 정자나 `운성암' 표지석이 선 길로 들어서면 아막성 터에 닿는다.
흥부각에서 들어서는 길은 예전에는 소나무가 울창했던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었으나 최근에 모두 베어내고 어린 잣나무를 심어놔 길의 운치가 사라졌다. 숨이 차오를 쯤 아막성 터가 나온다. 성 둘레는 633미터 정도. 백제와 신라간에 격렬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만 그 흔적을 짚어볼 수 있을 뿐, 적막하다. 아막성 뒤편에 `운성암'이란 조그만 암자가 있다.암자 역시 작고 소탈한 모양새여서 성터와 어울리는 짝을 이룬다. 밭 한쪽에 `朝聞道夕死可矣'란 글씨가 희미해져 가는 바윗돌이 서 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싸움이든 용맹정진이든 이 적막한 곳에 그런 격렬함들이 깃들어 있었다.
남신희 기자 miru@gjdream.com
가는 길: 승용차를 타고 갈 경우 광주→88올림픽고속도로→사치재→(남원 나들목 지나서)지리산 나들목→나들목 들어서서 바로 좌회전→인월요업역사관→흥부주유소→아영중학교→성리 씌어진 표지판쪽으로 좌회전→상성마을→하성마을→봉화산 철쭉군락지.
버스타고 갈 경우 남원행 버스는 새벽 5시45분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20~30분 간격 운행. 1시간10분 소요. 버스비는 5300원. 남원~상성마을간 버스는 남원터미널에서 길 건너서 탄다. 1일 4회 운행. 시간은 오전7시50분, 11시, 오후2시35분, 4시45분. 소요시간은 1시간20분 정도. 버스비는 3060원. 문의 남원여객(063-625-4116).
먹을거리: 숙회(미꾸리찜)와 추어탕이 유명한 새집(천거동,063-625-2443), 참붕어로 끓인 어탕과 어탕국수가 나오는 두꺼비집(인월면 인월리 636-2979), 칼국수와 김치보쌈이 맛있는 엄마손칼국수(어현동 춘향촌내, 625-5572) 등
여행쪽지
실상사와 백장암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함께 들러봐도 좋겠다. 또 전통 옹기들을 전시․판매하는 인월요업역사관(아영면 인풍리)도 가까운 거리. 이곳에선 플라스틱제품이나 인체에 해로운 납 성분으로 이뤄진 광명단을 이용해 만든 현대 도기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있는 전통 옹기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옹기들이 모여있는 풍경이 당당하고 아름답다. 문의 063-626-98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