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판을 종횡무진하는 씩씩한 인물이 얼마전 신문을 보고 전화를 했다.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그가 한 단어에서 넘어졌다. “컨, 듀서? 두서? 그것이 뭐다요? 지원 잠 해볼랑마는 뭔말인지 당최 깝깝하단마시.”
설명하는 쪽도 머쓱했다. 문화중심도시 관련 인력을 양성한다는데, 이름이 컨듀서(conducer)와 가디언(guardian)이다. 컨듀서는 문화의 소비자(consumer)와 생산자(producer)를 합쳐 만든 조어라고 했다. 문화적 소양을 갖춘 시민과정 ‘가디언’도 취지를 읽어줬다. 이 과정을 들으면 문화적 ‘리터러시’가 향상된단다.
“워메~. 말들이 왜 근다요. 우리 말로 하믄 일이 안돼분다요?” 그이의 물음이다. 그러게 말이다. 요즘 문화중심도시 시범사업과 관련해 자주 쓰이는 용어들을 떠올려봤다. 현재 광주엔 문화예술 ‘인큐베이팅’사업이 진행중이고, 교육의 문화화를 꿈꾸는 ‘에듀컬처’도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엔 문화콘텐츠와 관련해 ‘네트워크아트 스트리밍콘서트’도 열렸다.
도대체 누굴 위한 행사들인가. 이름을 보고 선뜻 참여해볼 의욕을 낼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이같은 영어 일색에 아니다 싶어 갸우뚱거리면, 용어를 전파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미 학계에서 정착되고 있는 말”이라며 선수를 친다. ‘흐름 못따라가는’ 일반인들은 무색해질 수밖에.
온갖 문화담론에는 ‘소통’과 ‘과정’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요즘 사업들엔 이름부터 공감대의 과정은커녕 소통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알만한 사람은 알아서 찾아온다고? 어느 세월에 이름까지 공감대를 만들어 짓느냐고?
이쯤에서 우리가 무작정 외국어를 좇는 사대주의적 발상과 효율성에 너무 기대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그러는 사이 ‘삶의 양식’이라는 문화는 삶과 뚝 떨어진 낯선 것이 되고, 광주를 새로운 문화도시로 만든다는 이 국책사업 역시 일부 알 만한 사람들만의 섬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taorm@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