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국민이 특정 시간만 되면 일제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태극기만 보이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던 때다. 그 태극기가 요즘 여기 저기 휘날린다.
정부가 그토록 친하다는 미국의 경우에는 `존슨 판결’로 불리는 미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1989년 연방대법원은 성조기를 불태운 혐의로 체포된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사람의 행위를 수정헌법 제 1조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인정했다. 수정헌법 제 1조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 물론 당시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89년 10월 미 연방의원들은 압도적인 지지로 성조기나 그 일부를 고의로 훼손하고 불태우거나 하는 행위를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성조기보호법’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이 법은 다음해 다시 연방대법원에서 재차 위헌 판결을 받아 성조기 소각 등이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로 인정 받게 된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는다는 성조기에는 성조기를 훼손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월남전 참전자들이 정부로부터 애국심을 강요당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사 표시로 시작됐다고 한다. 애국심을 이용하는 정부에 대한 저항,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 60주년 행사를 하고 전국적으로 태극기 달기 운동을 펼치는 등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부의 노력에도 자꾸만 딴 생각이 든다. 태극기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휘날리고 있지만 그 안에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애국심 강요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 태극기를 훼손할 수 있는 자유는 있을까? 촛불 시위로 수많은 네티즌들이 집시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상황, 인터넷을 잡겠다고 만든 각종 규제안들…. 몇십년 만에 등장한 간첩, 고개를 들고 있는 국가보안법. 갈수록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위축되는데 태극기만 저 홀로 펄럭이고 있다. 아~대한민국! <자치부 기자> nab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