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학동 ‘들깨랑단호박죽’

 벌써 시원한 먹을거리를 찾아나선다. 가게들마다 ‘계절특선 냉콩물국수 개시’를 내걸었다. 여름철 더위 식히기에는 냉콩물국수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냉콩물국수를 지금부터 먹기 시작하면 꽃더위때는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잠시 갈등이 생긴다. 더위에 대한 점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얼토당토않은 버팀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그러던 터에 발견한 집이 광주 동구 학동 학동성당 앞에 있는 ‘들깨랑단호박죽’집이다.

 이집에서 눈에 띈 것은 도토리묵밥. 동지죽과 팥죽에서 곧바로 냉콩물국수로 건너뛰기 전에 도토리묵밥으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기에 좋다.

 우선 도토리묵밥에 쓰이는 묵을 날마다 직접 만든다. 묵 쑤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보통이 아닌’ 일을 날마다 하는 것이니, 그 정성이 가상타. 작은 차이이지만 이런 정성이 사람들의 입맛을 감동시킨다.

 ‘보리밥 지어 담고 도토릿국을 하여/ 배곯는 농부들을 진시(때를 쫓아) 먹이어라/ 아해야 한 그릇 올려라 나도 맛보아 보내리라.’

 옛 사람들은 도토리를 구황식품으로 썼다. 산속의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내, 도토리묵을 쑤었다. 도토리묵 맛이 따로 특별할 것 없이 담담하지만 배고픔을 덜어주기엔 충분했나보다. 도토리는 도톨밤으로도 불렸다.

 ‘도톨밤 도톨밤 밤 아닌 밤 / 그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지었는가 // 씀바귀와 같이 쓴맛에 빛깔은 숯처럼 / 검어도 / 요기하는 덴 황정(黃精)에 지지 않는다…’

 예전의 구황음식이 요즈음에는 귀한 `건강식’이 되었다.

 상에 올려진 도토리묵밥에는 채썬 도토리묵과 묵은지, 김가루 등이 시원한 육수에 담겨있다. 쌀밥 한그릇을 묵밥속에 넣어 말아먹어도 좋고 밥따로 묵국 따로 먹어도 좋다. 국물맛 새콤달콤 시원 매콤하고, 도토리묵 찰랑찰랑 탱글탱글하다. 먹다보면 서서히 온몸의 열기가 누그러지면서 어느 순간 머릿속이 띵하고 몸에 오한이 들정도로 시원해진다. 냉콩물국수 먹기 전에 쉬어가는 시원한 별미로 선정했는데, 정신 바짝 차리게 시원타.

 이집 콩물국수는 서리태콩국수다. 서리태콩 다라이가 현관에 놓여있다. 서리태콩을 갈아 내온 국물맛, 진하다. 국물을 죽 떠먹듯이 떠먹게 된다. 약되겠다.

 

 △차림(가격): 도토리묵밥·서리태콩국수·바지락칼국수 7000원

 △주소: 광주시 동구 학동 학동성당앞

 △전화: 062-433-4913

  글=임정희 hellohani@empas.com

 사진=함인호 ham@daum.net

 임정희·함인호 님은 수년 동안 광주지역의 맛집을 탐방해온 맛의 순례자들로, 결코 주인장의 서비스에 흔들리지 않는 정직한 미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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