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이복임 아짐의 밥상

▲ 죽·회·국·볶음·전·나물 등 다양한 반지락 요리와 백합찜, 콩나물잡채 등 걸게 차린 잔칫상.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 장신마을은 너른 논 가운데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등 뒤로 야트막한 동산 하나 의지할 데 없이 훤히 트인 곳이다.

 박현태(81) 아재와 이복임(76) 아짐의 집은 겨울 찬바람에 고개를 수그리듯 바짝 엎드렸다. 반듯한 지붕과 담장 위로 목을 쑥 빼고 선 헐벗은 감나무 한 그루만 유독 껑충하다. 단정한 살림집에 들어서자 안온한 기운이 언 몸을 녹인다.

 “아침도 안 묵고 왔을건디 뭣을 히주까?”

 “아이고 날도 춘디 뭣이 있다고 여까지 왔어.”

 아들 보듯 손주 보듯 살가운 말씀들에 움츠렸던 사지가 녹녹해진다. 반지락 요리는 나중이고 우선 요기부터 하라는 아짐을 가까스로 말려 장을 보러 나선다.

 “그 전에 여가 개가 가차쌌어(가까웠어). 개 막아갖고 농토가 좋아졌지만…. 저어기 밑에 동네까정 물이 들왔어. 산은 없고….”

 드넓은 평야를 바라다보는 눈가에 가뭇없이 사라진 바다와 갯벌에 대한 그리움이 머문다.

 

 부안장 어물전은 갯것들로 흔전만전

 아짐은 변산 산내면 마포리에서 22살 때 시집을 오셨다. 50년 넘도록 `마포떡’이라는 택호에 찰싹 붙어있는 친정은 바다가 가까워 갯벌에 얽힌 추억이 생생하다.

 “거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산도 가찹고 바다도 가찹고 그러요. 하섬이라고 있는디, 보름사리 때 한 사나흘 닷새쯤 물이 쓰고 빠져요. 글고 또 그믐사리에 물 빠지면 거그 가서 조금씩 식구들 찬 같은 거 해 먹구 그랬지. 부안은 바지락이나 그런 것은 기냥 매일 있어요, 어느 날이고. 새만금 막기 전에는 더 많앴죠. 인자 많이 없어져 불었어.”

 “여그 왔으니까 시장 한 바쿠 돌아봐야지” 하시는 아짐을 졸졸 따라간다. 축 늘어진 물메기가 제철 비린내를 풍긴다. 반지락, 백합, 굴, 홍합, 꼬막, 키조개, 고둥, 해삼, 멍게…. 과연 부안장 어물전은 갯것들로 흔전만전하다. 조기, 꽃게, 새우, 오징어, 고등어, 병치, 갑오징어, 쫄복, 우럭에 빙어까지.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말씀 그대로다.

 아짐은 장바구니를 들고 휘 둘러보시기만 할 뿐 어디든 멈춰 서서 길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저그 가면은 까는 디가 있어. 아까 첫 들목에 들온디 까잖아. 까논 놈 사야지.”

 장을 한 바퀴 빙 돌고 그새 처음 그 자리인가 할 즈음 제법 큰 어물전 앞에서 “여가 바지락 도매집이여, 단골. 여그서 가끔 사날려” 하신다.

 백합이며 반지락이며 매생이며 그득그득한데 유리문 안에 백발의 할매 한 분이 반지락 껍데기 수북한 다라이를 붙들고 앉아계신다. 젊은 아낙이 반색을 하며 손님을 맞는다.

 “바지락 깐 거 디려요?” “만 원 어치 주소. 언제 깠는디 얼어불었으까?”

 “아침에 깠는디 그새 얼었네요. 날씨가 굉장히 강추위잖애요.”

 고창 갯벌서 캐왔다는 반지락에는 살얼음이 서걱거린다. 백합 1킬로 만 원, 반지락은 알맹이로 만 원, 껍데기째 오천 원 어치를 사고, 여름이라면 텃밭에서 따올 고추 대신 꽈리고추 이천 원 어치를 보태 장보기를 마친다.

 “여가 할머니반지락집이여. 그전에는 길에 앙거서 했어. 50년도 더 되얏는디 저 할머니가 엄청 오래 하신게로….”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보니 반지락 까는 박오균 할매가 잔잔하게 눈을 맞추신다. 숫제 손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조개껍데기를 반으로 딱 쪼개 속살만 까닥까닥 똑똑 떼어내는 속도가 신기(神技)에 가깝다. 장바닥에 쭈그려 앉아 날마다 하염없이 반지락만 까서 일가를 이뤘다는 할매의 백발이 눈부시게 빛난다.

 “어디고 계속 다니면 정이 드나봐. 병원도 계속 거그만 가지고. 어디를 다니면 그 사람이 잘해주든 못해주든 거그만 가지더라고. 때로 서운한 때가 있어도 또 가게 되어 있어, 사람 맘이.”

 우리네 엄니들의 수십 년 단골이라는 게 무조건 믿어주고 좋아해주는 순정이요 짝사랑 같다.

 

 색깔도 맛도 오밀조밀 개미진 반지락고추볶음

 “아까 할머니가 변산 해창 살았다고 했잖아요. 거가 해창다리가 있었는디 거그 반지락이 뻘이 없고 젤로 존 거였어요. 근디 새만금 막아서 없어져불었어.”

 아짐에게는, 갯것들 푸지던 옛날과 없어져버린 오늘을 딱 부러지게 나누는 게 새만금방조제다.

 “옛날에는 이걸 쌩이로 까서 그냥 뭐이고 히묵어. 남자들은 주로 술안주 하고, 삶아서 그냥 먹고. 그란디 지금은 벨 것이라고 비싸. 옛날에는 비싸지도 않았어.”

 부엌에 들어서자마자 반지락부터 씻으신다. 따글따글 싸악싸악 껍데기 부딪치는 소리가 낮은 천장에 막혀 아래로 쏟아진다.

 “쓰겄는디 새로 사겄어? 기냥 써야지.”

 쟁반, 양푼, 체, 도마, 칼 할 것 없이 죄다 빛은 바래고 날은 닳고 평평했을 모양은 오목하거나 이지러졌다. 곱디 고왔을 얼굴에 그어진 아짐의 주름살처럼 저마다 나이 만큼의 흔적을 품고 있다.

 “반지락은 껍덕이 새카만 것은 뻘만 기냥 많고 덜 영글드라고. 겨울 찬물에는 다 영글어. 여름에는 안 영글고 좀 변허고 그런 것도 있는디, 겨울에는 변헌 것도 없으니까. 반지락이 완전 뻘 있는 덴 없고, 모래하고 뻘이 섞어진 데가 살더라고. 많이 준 거여. 저거 하까? 백합을 지금 사람들은 `거시기 종이(은박)’로 싸가지고 삶어가지고 그대로 까먹더라고. 먹을 때 물이 딴 데로 안 샌다고.”

 아짐은 작은 프라이팬을 꺼내 요리 준비를 하신다. 때마침 일손을 보태려고 찾아온 조카 유순자(67)씨에게는 은박지를 건네며 백합을 싸라고 하신다.

 “애덜 어렸을 때, 반지락이 사람한테 좋다고 해서 어뜨게 먹일까 (궁리)했어. 고추를 따가지고 양님해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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