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 수학여행의 필수코스는 경주와 설악산이었다. 그 당시 난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그 흔한 고등학교 수학여행조차 가지 못했다. 그래서 경주는 내겐 아픈 이름으로 늘 앙금처럼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수학여행 코스가 왜 백제가 아니고 신라인지? 경상도 학생들은 그럼 백제로 오나? 어렴풋이 생각한 시절이기도 했다. 성장하여 몇 년 전에 행사동원 비슷하게 해서 단체로 경주엑스포 관람을 한 적이 있었다. 석굴암도 불국사도 아닌 어딘지 성곽 같은 곳에 내려주고 휘 둘러보고 내려오는 여행이었는지라 경주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없는 일회성 품팔이 여행이었다. 경주에 대한 갈망은 그 후로도 당연히 계속되었다.
광주에서 경주까지는 버스로도 자가운전으로도 국토의 동서를 완전히 가로지르는 상당히 먼 여행이다. 그래서 섣불리 맘이 먹어지지 않았었다. 몇 년 전 아이들과 아내가 경주, 경주 하길래 난 바쁘니 한번 다녀와 보라고 버스여행을 보낸 적이 있다. 1박2일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고생은 무지무지하게 한 것 같은데 아이들은 아빠 없이 스스로 개척했던 그때의 느낌이 참 좋았나 보다. 올해 둘째 딸이 갑자기 경주가 가고 싶다고 조르길래 딸 바보인 난 바로 결정해 버렸다. 그래 한번 가자. 부지런히 콘도 예약하고 예약된 날짜에 맞춰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시작돼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기분 좋게 녹초가 되어버린 여행이 바로 이번 경주여행이었다.
황룡사지·분황사 모전석탑…
`우리나라 관광지하면 뻔하지 뭐.’ 40년 동안 가끔 국내외 여행하고 살면서 생각한 선입관은 세상에 놀랍고 새로운 것이 드물다는 것. 감동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감탄하고 즐기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었다. 경주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코미디 영화 `신라의 달밤’ 이라든지 김상경, 추상미가 나온 영화 `생활의 발견’ 등 책보다는 스크린에 의한 것이었다. 생활의 발견에서는 다른 건 모르겠지만 김상경이 상미가 나오기를 하루종일 기다리면서 앉아 있던 동네 돌벤치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왕릉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대릉원 앞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상념들을 뒤로하고 먼 경주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경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역사의 질곡을 간직한 88고속도로다. 이 도로는 시작단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1차선 도로라 한 번 느림보 차량이 앞장서면 거의 100량 가량의 자동차 기차가 되기 일쑤였다. 한창 확장 공사중이라 몇 년 후에는 사정이 더 나아질 성부르긴 했다. 함양, 합천, 포항, 대구 등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 드디어 경주에 도착했다. 우선 유물들이 모여 있는 경주박물관으로 무작정 방향을 잡았다. 그 곳에 가는 도중 얼른 눈에 띄는 안내판이 있길래 그곳으로 급선회를 했다. 황룡사지, 분황사 모전석탑(국보30호), 분황사탑은 담 밖에서 얼핏 보아도 우리나라 여느 탑 같지는 않았다. 마치 동남아시아의 한 사원의 작은 벽돌 탑을 옮겨온 듯 싶었다. `신라가 동남아 여러 나라와 교역을 했다더니 과연 탑 양식도 그들 나라에서 따온 것일까? 워낙 다른 곳에 없는 독특한 양식이니 국보까지 되었나?’ 하는 게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편견이다. 그 탑 하나를 보려고 1인당 3000원 씩의 거금의 입장료를 물어야 했다. 정말 늘 생각하는 건데 절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자비를 베풀어도 될 텐데 여전히 이런 입장료, 주차료로 폭리를 취하는 건 좋게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적당히 1000원 정도 받아도 자자손손 돈 버는 데 지장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넘치는 유물들 “어느 게 진짜이뇨?”
경주박물관은 다행히 무료였다, 광주박물관도 연중 무료로 개방한다. 그래 이제 우리나라도 고궁, 박물관, 절, 동물원 그런 곳 무료로 개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우선 웅장하고 기품 있는 건물이 반겼다. 사실은 역사를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박물관을 많이 다녔지만 난 유물보다는 건축물에 더 끌린다. 진주박물관 부여박물관이 그랬다. 경주박물관도 이들 박물관과 같이 김수근 씨의 작품답게 지붕을 넓게 펼치고 과감하게 큰 기둥을 아낌없이 배치하고 테라스를 넓게 두어서 안의 유물을 본 사람들이 다리가 지칠 때 바깥에서 충분히 신라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안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이렇게 바람 길까지 배려한 설계가 참 마음에 들어 바깥에 나가 한참동안 앉아 쉬었다. 박물관의 중심에는 신라 금관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바깥에는 이미테이션 석가탑 다보탑이 실물 크기 그대로 세워져 있었다. 최근에 천마총에서 나온 유물들 중 말에 까는 안쪽 안장 천 중 하나인 말다래에서 새로운 천마 모양을 발견했다고 해서 2000년의 재발견 천마 특별전을 별실에서 요란하게 하고 있었다. 박물관 유물은 채워 넣기에 바빠 도대체 어느 게 진짜이고 어느 게 가짜인지 통 구분할 수 없었다. 바깥에 에밀레종이 거대하게 서 있는데 이것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리송할 뿐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낮밥을 먹을 겸해서 박물관 앞 토속적으로 보이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갔다. 메뉴가 순두부찌개라 한 끼 때우기에 적당할 듯해서였다. 보통 전라도 음식이라하고 경상도는 별 것이 아니라고 칭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이 식당 음식은 참으로 반찬부터 본 음식까지 전라도 어느 식당보다도 깔끔하고 맛있는 별미였다. 정말 반찬하나 안 남기고 싹싹 비우고 나왔다. 덕분에 경상도 음식의 특별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신라의 재발견이랄까?
세련되고 정갈한 미의 부처님
밥까지 먹고 나니 벌써 두시 경. 마음이 급해졌다, 박물관 주변은 다시 저녁 때나 내일 오전에 둘러보기로 하고 경주의 상징인 석굴암과 불국사를 보고 싶어 만사 제끼고 그곳을 향하여 차를 달렸다. 네비가 있으니 길 찾기는 문제 없었다. 사람한테 물어가도 찾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네비가 여러 가지 정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비디오 킬 더 레디오 스타처럼.
석굴암은 불국사를 지나 한참 올라가야 했다. 식상한 절보다 우선 순위는 당연히 석굴암이었다. 여기가 토함산이겠지? 차로 올라가는 길도 무척 꼬불꼬불한 급경사 도로이고 주차하고도 20여분을 더 걸어 들어가야 했다. 위대한 부처님은 애초 그의 세계를 쉽게 보여주지는 않을 작정인가 보았다. 하필 공사 중이라 석굴암 부처님조차 유리창을 통해 보여지는 정면만, 인파에 밀리면서 얼핏 보고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얼핏 본 부처님의 포스가 대단했다. 마치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듯 부드럽고 섬섬옥수처럼 섬세한 가는 선의 아름다움을 가진 부처님, 이렇게 세련되고 정갈한 미를 가진 부처는 정말 난생 처음 보았다. 마치 세월을 거슬러 로뎅이 지금 바로 갓 만든 조각 작품인가 싶었다. 아! 결코 명성이 헛된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불국사는 입구에 다리(청운교, 백운교)라고 부르는 계단이 있어 특이하긴 하지만 역시 안은 그저 그런 절이었다. 여기서도 입장료가 터무니없었다. 절 중앙에 있는 다보탑, 석가탑도 그리 다가오지 않았다. 절 안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셨더니 정신이 좀 개운해졌다.
이렇게 벌써 6시가 되었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할 때였다. 보문단지 안에 미리 예약해둔 콘도를 찾아갔다. 타지의 제법 편안한 숙소에서 맞는 밤은 언제나 좋다. 여장을 풀고 준비해간 음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운 후 시내 산책에 나섰다.
왕릉촌·첨성대 야경 만끽
비록 밤이지만 내친 김에 낮에 못 본 대릉원, 첨성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잘하면 야간에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정말 야간이 최고였다. 이 이집트 왕가의 계곡 같은 왕릉촌과 첨성대는 꼭 저녁에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조명에 비친 돌탑 첨성대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마치 큰 우물 같기도 하고 장구 같기도 하고 도대체 용도가 무엇이었을까? 그냥 단순한 탑이었을지도 모른다. 천문대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엉성한 구석이 많았다. 사람이 꼭대기에 올라가 앉으면 모를까 안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하늘만 보는 게 말이 되지 않아 보였다. 신라가 기록에 좀 약했나 보다. 아직까지 녀석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는 걸 보면. 하지만 옛 유물은 참 향기롭다는 느낌을 줬다.
드디어 상경이 상미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밤의 대릉원에 들어섰다. 아내는 처음에 무섭다고 나가자고 했다. “왜 어때! 조용하고 요금도 안 받고 좋잖아!” 대릉원은 10개 정도 되는 신라 왕들의 무덤군이다. 현재 그 중 천마총만 발굴되어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는 역시 기록에 없나 보다. 은은한 달빛에 낮은 언덕과 같은 잘 다듬어진 고분들은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난 충동적으로 고분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었다. 아들 녀석도 따라 올라왔다. “야! 엎드려.” 아래서 인기척이 나서 얼른 엎드렸다가 다시 올라 갔다. 아무래도 들키면 욕 얻어먹을까 싶었다. 두 개가 연달아 붙은 고분은 엄마의 젖가슴처럼 푸근하게 우릴 안아주고 우린 한참동안 하늘을 보고 별을 헤고 내려왔다. 왕님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가 놀아주니 외롭진 않으셨지요? 우리도 즐거웠어요. 사랑해요!!!
그날 저녁까지 경주의 80% 이상을 봤다. 왕릉에 오르고 석굴암도 보았는데…더 이상 볼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다음날 우린 10시까지 푹 자고 바로 광주로 향했다. 아참! 깜빡했는데. 유명한 경주(황남)빵은 지난 저녁에 세 박스나 미리 사두었다. 원래 선물용이었지만 먹다보니 두 박스를 오는 중에 바닥내 버렸다. 먹으면 먹을수록 참 끌리는 맛이다. 맛의 도시라는 광주도 이런 것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최종욱<수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