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오매 시상에 저 내 아까운 새끼들
꽃도 꽃도 못 피워보고 가불었구나”

“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 보겠다고 일 하느라 마지막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 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 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딸에게 쓴 엄마의 편지다. 살아서 이미 `지옥’을 겪은 엄마, 딸에게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 되어버린 엄마. “보기도 아깝고 몬치기(만지기)도 아깝게 키왔을 꺼인디”라고 그 맘 헤아리며 “눈앞이 칠흑캄캄 낮은 없고 밤만 있을” 날들을 함께 애달파하는 진도 엄매들의 `만가(輓歌)’를 진도장터에서 들었다.
“어짜요? 좋으요?”
“그라고 사요.”
“좋아야 쓰요 잉.”
“모다(모두) 좋아야지라.”
온갖 약초를 벌여놓은 가게 주인과 그 앞을 지나는 이가 주고받는 인사가 선(禪)문답 같다. 2·7일 닷새마다 열리는 진도장.
`칠전약초’ 김귀정(74) 할매는 스물다섯 살부터 오십 년 세월을 한결같이 이 장터를 지키는 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제. 장날 밤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아무개 엄매가 요새 안뵈인다 가셔불었다냐, 아무개 아배도 안 보인다 허고 난중에 물어보문 `그 냥반 영영 가셨다요’ 그래. 글케 다살고 간 사람도 갔단 말 들으문 아까와. 그란디 좋든 궂든 이 시상을 다 못 살고 간 애기들은 얼매나 아깝제.”
할매는 그 아그들이 제주도 간다고 좋아하다가 제주도도 못 보고 간 것이 그리 짠하다.
“그거이라도 보고 가제. 이런 징헌 사고가 날 줄 누가 알았겄어. 저 내 아까운 새끼들을 참말로 그케 많이 바다에다 잃어불었으까. 여그 앙거 있다가 애기들이 지나가문 오매오매 저 이삔 새끼 저런 애기들을 잃어불었구나, 시상에 니그들은 여그를 차박차박 지내간구나, 지내간께 고마워서 씨다듬어 주고자와. 맘이 그래져. 오매오매 시상에 저 내 아까운 새끼들은 꽃도 꽃도 못 피워보고 가불었구나, 얼매나 크나크게 될 사람도 있고 보통으로 될 사람도 있을 거인디. 모다 너머 아깝고 너머 짠해.”
손자들이 열셋이라는 할매. “우리 손지 한나가 여그서 학교를 댕개. 그 사고 나던 날 여그 진도 애기들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어. 지그 이모네들이 막 전화들을 허드락 해. 우리 메느리가 암것도 모르고 일을 하다가 뭔소리다냐 허고 금방 죽겄드라요. 손이 벌벌 떨림서 학교로 전화를 했는디 우리 학교는 괜찮해요 헌께 그 말을 듣고 맘이 푹 내래가드래. 그러고는 `내가 이렇고도 나쁜 맘을 가졌구나’ 했다고, `엄니 내가 그런 맘을 묵었소’ 막 철철 움시로 그래. `엄매라서 근다. 내 말(馬) 잡아논 담에 삼촌 말 잡는단다, 왜 글안허겄냐’ 했제.”
사고 난 그 날부터 진도서는 둘이든 셋이든 여럿이든 “사람마다 모태문 그저 뭣을 해서 그 사람들을 도우까” 그 말뿐이었단다.
“나는 늙은께 걸거칠께미(방해될까봐) 봉사를 못가. 메느리는 체육관으로 날마지(날마다) 댕개. `에징간허문 열두 시까지는 허고 와야지라’ 글드니 새복 세 시 그란 때까지 있다 들어와. 거그 그러고들 있는디 차마 못오겄드라고 그래. 여그 각시들은 모다들 봉사하고 그라고 댕개. 진도사람들이 정이 너머너머 많은 사람들이여. 우리 진도가 보배섬이란 것이 사람이 좋아서 보배섬이여. 근디 사고가 난께 죄인맹키여. 까시방석에 앙거 있어. 사고나고 오늘사 장에 사람 조깨 나오요. 연휴라 낼모레 애기들 올 것인께 어매들이 새끼들 믹일라고 사러 와. 그런 엄매들은 인자 새끼들이 온디, 사고 난 엄매들은 새끼들이 못와.”
“그 애기들은 영영 못와” 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할매.
“이만치 살고도 우덜은 낼이 있고 모레가 있고 고페(글피)가 있는디, `도란 장날에 보십시다’ 허고 인사를 헌디, 저 내 아까운 새끼들은 돌아오들 못허는 것이여.”
할매는 이날까지 원망이 없이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고를 보면서 맘에 원망이 생겼다. 할매는 “세월호 원장인가 반장(선장)인가가 애기들을 거그다 그래놓고 지그들만 빠져나온 것이 밉고, 정부가 기울러빠져갖고 애기들을 한나도 안 살려낸 것이 원망스럽다” 한다.
“어째서 한나라도 빨리 건져낼라고 애를 안썼으까. 건질 놈들을 못 건졌다 생각허문 천불이 나. 시방 엄매들이 자기 새끼들 죽은 몸뚱이를 건져냈다고, 새끼들이 돌아왔다고 좋다고 헌다요. 자기 자식이 시체로 돌아왔는디 감사를 헌다요. 그런 징헌 세상이 어딨겄어. 천금을 줘도 못바꾸고 만금을 줘도 못바꾸는 것이 자석이여. `금을 주문 너를 사냐 은을 주문 너를 사냐’ 내가 그람서 울고 있소. 나는 손지 열서니 중에 한나만 머리만 아프다고 해도 성이 가셔. 근디 그 엄매 그 아배들은 인자 앞날을 어찌고 살 것이요.”
“배 안에서 얼매나 지그 엄매를 불렀겄어”
전두1리 사는 정도단(85) 할매는 취나물 한 양판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이것이 다 저 지픈 산속으로 내 물팍으로 기댕김서 내 손으로 해온 거여. 내 손은 보도사도 못해. 봄이문 꼬사리 껑끄고 취 껑끄고 두릅 껑끄고 만날 껑끄고 댕개. 어느 때 거그 어디로 가문 뭐시 있니라 허고 나만 아는 자리가 있어.”
봄이라고 나물 꺾고 장이라고 나와 앉아 있긴 하지만 도단할매, 속이 속이 아니다.
“내가 요새 술을 많이 묵어. 밥이 안 들어가. 술을 묵다가도 가심이 딱 엉쳐. 그 부모들은 어치케를 허끄나 말여. 내새끼들 내새끼들 기가맥힌 내새끼들 고만치나 키왔으문 거자반은 키왔는디 시상천지 이런 일이 어디에가 있단 말인가~~.”
도단할매, 애원성(哀怨聲)을 내놓다가 목이 꽉 멘다.
“워매워매 내 속으로 그 장면을 떠올리문 이 가심이 쑥쑥 애려. 그 애기들이 엄매엄매 나 살려주게 배 안에서 얼매나 지그 엄매를 불렀겄어. 물팍까지 물이 차고 가심에까지 물이 차고 그렇게 고통을 저끔서 죽었으니.”
도단할매, 그 정경을 생각하문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많하도 않고 한나나 둘썩 나서 보기도 아깝고 몬치기(만지기)도 아깝게 키왔을 꺼인디, 터럭 끄터리만 다쳐도 깜짝바르르 놀램서 키왔을 꺼인디, 모다들 애런(어려운) 생활에 갤치기도 얼매나 심들게 키왔을 꺼인디, 눈앞이 칠흑캄캄 낮은 없고 밤만 있제 말을 해서 뭣허겄는가.”
뭣이라도 기운 낼 것을 멕이고 싶어서 할매네 동네인 전두리 아짐들은 찹쌀 한 말을 씻고 전복을 나수(넉넉히) 넣고 큰 가마솥으로 두 솥 죽을 쒀서 갖고 갔더란다. “어짜튼간에 묵어야 쓴다고 조깨라도 잔 묵으라고, 울드라도 묵고 나서 울어라고, 그럼서 지그들이 더 울고 왔다고 그래.”
이 시상 태어나서 나쁜 짓거리는 안 할라고 노력을 허고 자식들도 나쁜 짓거리 못하게 갈쳤다는 도단할매.
“놈을 이용해 묵을란 것이 죄받을 짓거리여. 놈의 주머니에 든 돈 한닢도 내 것맹키나 중헌 것이여. 그런께 나는 나쁜 물견을 갖고 와서 돈을 살 생각은 꿈에라도 허들 안해.”
남의 주머니에 든 돈 한닢도 중히 여기는 도단할매, 그 바다에 빠진 목숨들을 구하지 않은 사람들은 천벌을 받을 거라 한다.
“그 애기들을 제주도로 보냄서 엄마나 이삐게 입혀서 따둑거려서 보냄시로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좋아라고 했겄어. 근디 인자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고 그런 애기들을 기다리고 있어. 이 하늘 아래 이 시상에 그런 원통한 사람들이 어딨겄어.”
“내 새끼가 아니어도 이라고 아픈디 어찌고 전디꼬”
문숙희(58) 아짐은 용장 녹진 앞바다서 게와 감태를 갖고 나왔다. “뻘에 나가서 기 잡음서도 감태 멤서도 나는 살았다고 이라고 있구나 허제. 헬리콥타가 뻘 욱으로 왔다갔다 허문 오매오매 또 건져갖고 간갑다 허제.”
아짐은 뻘에서 게를 잡다가도 감태를 메다가도 헬리콥터 지나가면 손을 흔든다.
“너는 누집에 이삔 아그로 나서 이 시상을 덜 살고 이 시상을 못 살고 가뿌냐. 잘 가그라 손을 흔들다가 퍽퍽 울어. 헬리콥타 간 쪽으로 쳐다보고 `고생하시오 고생하시오’ 절을 해. 고생해서 지발 한나라도 지발 어서 더 건져 도라는 맘이여.”
내내 사람 기척 뜸하던 장이 오늘은 모처럼 훈짐이 난다.
“갖고 온 기를 다 폴았네. 연휴 뽀짝 앞장이라 새끼들 온다고 엄매들이 사가. 새끼들이 엄매 하고 부름시로 대문으로 들오는 장면이 엄매들은 질로 반가와. 얼매나 좋제. 팽목에 시방 가 있는 사고난 엄매들은 그런 장면이 인자 없어. 그것을 생각하문 참말로 짠해.”
“피어날 꽃이여. 머물러 있는 꽃봉오리여. 그 애기들이 인자 필락 헐 때 떨어져불었어. 존 시상을 살 애기들이 바닷물을 묵고 다 죽었어. 우리는 만날 물살을 보고 산께 그 애기들이 얼매나 겁이 나서 갔을꼬 그것을 알제. 그란께 더 짠합제. 그 애린 것들이 물이 목구녕까지 차올를 때 얼매나 무서왔으꺼시여.”
아짐은 사고 소식을 듣고 밤에 실내체육관에 갔다. “어짠 엄매가 쪼그리고 울고 앙겄길래 손을 붙들고 같이 울었어. `얼매나 가심이 아프시오’ 허고 울었어. `우덜은 내 새끼가 아니어도 이라고 아픈디 어찌고 전디시끄라’ 그말배끼 못허고 왔어.”
그 엄매아배들이 팽목항에서 바다를 보며 소리를 치면서 자식들을 불렀다는 방송을 보면서도 울었다.
“내 새끼야 아무개야 언능 나오니라, 아무개야 언능 돌아오니라 그라고 소리를 치드만. 그 소리를 낼 적에 엄매아배는 애가 다 녹았을 것이요.”
“그립다는 것이 가슴에서 지워지들 않애”
모종 파는 김복례(65) 아짐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여그 향토문화회관에 분향허러 갔어. 거그 가서 애기들 잘 가라고 묵념하고 달고 왔어. 그때부텀 쭉 달고 댕개. 나는 사고 전에는 전수관에 북 치고 장구 치러 댕겼어. 근디 시방 진도는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불고 춤추는 것이 딱 금지됐어. 지금 정신 빠진 사람이 아니곤 그런 것을 허고 있겄는가.”
“파프리카 모종 한나에 얼매요?”
들여다보는 손님이 있다.
“천원이요.”
“시 개 줘 보씨요. 잘 안 크문 도로 갖고 올라요. 그란디 우수한나 줘야제.”
“맘에 든 놈으로 빼갖고 가씨요.”
김복례 아짐은 장사에 염이 없다.
“나도 딸을 보낸 사람이여. 아들 둘에 딸 한나 있었는디 사고나서 서른 여섯에 갔어. 77년 7월7일이여. 그 맘을 말로는 못해. 그립다는 것이 가슴에서 지워지들 않애. 항시 묻어 있어. 그란께 내가 북 치고 장구 침서 맘을 주저앉치고 살았제.”
고추 모종 하나도 갖고 간 사람은 오만 정성을 다 들인다고, 열 달 배 아파 난 자식은 오죽하겠냐 한다.
“그라고 정성을 들여서 그만치 키와놨는디 인자 건져도 못알아본다네. 기가 맥히제. 그 살릴 놈들을 못 살려놓고. 놈의 자석 내 자석이 어딨어. 다 이녁 자석 같제. 이녁 새끼들이나 똑같애.”
“우리 애린 꽃나무들 지발 다 건져내야제.”
“장사 안되야. 사람이문 암만 해도 안 묵어지고 배깥에도 안 나와져. 그란께 장이 안되야.”
푸성귀를 차려놓고 앉아 있는 박영애(84) 할매.
“우덜 장사 안된 것은 암껏도 아녀. 이 뒤로도 허문 되야. 농사가 안 된다손 내년에 해묵으문 되야. 그란 것은 힘든 것이 아녀. 자석을 잃어뿐 사람도 있는디.”
할매는 요새 날마다 눈물바람이다.
“일본 왜정도 저끄고 육이오도 저끄고 그랬어도 이렇게 날마지(날마다) 울고 살든 안했어. 보문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어.
짠뜩 짠한께 엉엉 울어. 잠이 안와. 자꼬 울어싼께 아침에는 모다 눈텡이가 부서 있어. 이라고 보는 사람도 힘든디 지그 엄매 지그 아배들은 어쩌겄어.”
자식들이 돌아감서 전화를 한단다. “엄매 텔레비 보시지 마씨요, 그렇게 울다가 병나겄소 그래. 첨에는 살아서 나온 애기가 있을 것이다 허고 희망으로 봤는디 인자는 다 건졌다고 행이나 그 소식이라도 들을란가 험서 봐. 오늘 몇 명 건졌다요 그것이 우덜 인사여. 시방 여그 진도 엄매들은 안산 엄매들 맘하고 똑같애. 우리 애린 꽃나무들 한나도 거그 바다에다 잃어뿔지 말고 지발 다 건져내야제.”
“자석 입에 묵을 것 들어가는 것 같이 오진 일이 없는디”
“아그들 말만 해도 우덜은 눈물나. 모태 앙겄으문 모다 그 얘기고 모다 눈물바다여.”
플라스틱 박스를 밥상 삼아 김칫국이랑 나물이랑 김치 올려 놓고 엄매들이 한데 둘러앉았다.
“자석 입에 묵을 것 들어가는 거 같이 오진 일이 시상에 없는디, 그 엄매들은 인자 그 존 꼴을 못 봐. 그거이 너모 짠해.”
“살 목심들이 너모 아깝게 죽어불었어.”
“사고 난 날 그 즉시부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