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꾼에 사는 만 갈래 길이 여기 있다

 

 `천하지대본’도 이곳에서 논한다

 “어디 간가 밭에 간가.”

 “꽤가 익었는가 안 익었는가 가볼라고.”

 재동떡하고 우산떡이 고샅에서 딱 만나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을 논한다. 날마다 꽤지름을 묵고 삼시롱 시방 어느 밭에 꽤가 익는지 안 익는지 당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도시사람, 염치없고 물색없다.

 “도시에서는 돈 내고 기계 욱에서 뜀박질을 하고 그런다더만 나는 요거(보행기) 밀고 쪼작거리고 댕겨. 운동으로 시 바꾸도 돌고 니 바꾸도 돌고. 돌아댕기문 동네 사람들 다 만내제. 서로 만내문 이약이약 하고.”

 돌담이 아름다운 순천 황전면 담터마을 고샅길의 쓸모는 이를테면 `주민복합커뮤니티센터’쯤이랄까.

 “나는 올해 꼬치 한 보시기도 못 숭궜어. 호맹이자루 놓기가 원이드니 인자 호맹이자루 든 사람이 부러뵈네.”

 우산떡 할매의 정다운 작별인사는 따라 할 수 없는 문장. “목 모르문 뉘집 것이든 단감 한나 따묵고 가 잉!”

 

 보이면서도 가리는 높이

 “우리는 사실은 담 없어도 살아. 문도 안 잠그고 산디. 여그는 범죄 없는 마을이요.”

 범죄 없는 마을 담양 창평면 외동리 고샅길 지나다 담 너머로 웃음 건네준 이는 정형선(56)씨. 오래된 동네에서 만나는 담장은 그 너머가 보이면서도 가리는 오묘한 높이로 쌓은 것. 사람 어깨 높이를 넘지 않는 120cm가 전통 흙담의 일반적인 높이라 한다.

 “너머 노프문 유재끼리 속을 모르고 살고, 너머 야차우문 아녀자들이 활동하는 데 지장이 있제.”

 긴 골목으로 소문난 강진 병영 한골목 담장은 높이 2m가 넘는 구간이 많은데, 군사요충지가 되면서 말을 타고 출입하는 군관들의 왕래가 잦아서였다고 하였다.

 “지내감서 지신가 안지신가 짐작할 만하고, 안팎으로 내다봄서 이야기할 만하고, 그 너머로 떡접시 반찬접시 오갈 만하고.” 이런 인본주의적인 높이라니!

 

 그 분의 등은 따뜻하다

 <기우뚱하고 얼룩진 그분의 등은 따뜻하다/ 햇살로 등멱을 한 그 곳에 기대어/ 마지막 밭농사, 들깨가 말라가고 있다/ 거칠거칠한 줄기에 긁혀도 다 받아들이는 그분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면 들깨 향내가 묻어온다/ 겉은 미끈하지만 속은 움푹 패인 그분은/ 외양간 소도 한 식구로 여기는 마음을 가져/ 비벼댈 때마다 근질근질한 시름들 털어내기도 한다/ 녹이 앉은 대문을 어깨에 매달고도/ 겨드랑이에 붉은 땀으로 감추고/ 다독여 주곤 하는 것이다/ 그분은 제 몸이 쩍쩍 갈라져도/ 말라가는 줄기 속으로, 호박들 잘 익어가라고/ 햇살들 뿜어 올리면서 상처를 돌보지 않는다/ 벌거벗은 그분의 등줄기에다/ 등 대면 구들장을 지는 것처럼 뜨끈뜨끈해진다>(손창기)

 시없이 때없이 근질근질한 시름 털어내며 제게 비벼대는 이를 다독여 주는, 이웃의 삶의 무게도 제 것인 양 함께 매달고 견디어 주는, 제 속이야 쩍쩍 갈라져도 엄살 부리지 않고 저한테 기대는 것들 다독이는…. 가을 햇살 아래 따뜻한 온기 품고 서 있는 `그분’. `담벼락’이다.

 

 이만하면 이중철통보안

 시골마을 고샅길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이다. `다 나가고 아무도 없을’을 그 대문 앞 지나는 이에게 널리 고지하는 숟가락 표식. 이것은 잠근 것일까, 안 잠근 것일까.

 “그냥 닫아놓고만 나가문 유재 사람이 와서 한허고 지달릴 수도 있은께.”

 누군가의 헛수고를 덜어주려는 배려. 혹은 숟가락 빼고 헝겊끈 풀어 `이중철통보안’ 풀어봐야 별 것 없다는 충고.

 “들어서봐야 가지갈 것 암끗도 없는디 뭐덜라고!”

 그 한 말씀에 다름없는 `점잖은 방범’의 방식.

 

 그저 잠그는 시늉일 뿐

 “나는 혼차 살아. 영감은 작년에 보내뿔었어. 가세야 돼. 팔십팔이여. 딱 맞게 가셌어. 너모나 많이도 안살고 짝게도 안 살고 좋게 갔어. 오늘 아푸더니 낼 죽어뿔어. 팽생 내 속이라곤 안 쌕이고 살더니 고러고 좋게 갔어. 나도 그와 같게 가게만 해달라고 날마동 빌어.”

 `마음씨가 널룹고 존 그 냥반’을 작년에 보낸 뒤 홀로 사는 할매.

 “그래도 도시 아파트로 살러 안가고 늙도락 우리집서 산께 좋아. 자석들네 가문 우리집에 갈란다고 애를 쓰고 와불어. 얼매나 활발하고 좋제, 우리집이!”

 순천 황전면 산영리에 사는 그 할매네 대문 문고리에 매달린 잠금쇠는 머리에 노끈 친친 감은 대못 하나. 얼마나 긴 세월 흘렀을까. 노끈은 백발처럼 허옇게 풀어져 나부낀다.

 “내 손이 수백 수천 번 달았겄제. 우리 영감 손도 달았겄제.”

 대못 하나 문고리에 걸어두면 문단속 끝. 출타하는 할매를 대신해 대못 하나가 그 집을 지킨다.

 “만고에 훔쳐갈 것도 없어. 기양 시늉으로 걸어두는 것이제.”

 

 개똥풀 잎삭 넣은 뜻

 “문 볼라 봤으까. 시방 문 보른 사람 있으까.”

 `문 볼라 본’ 사람은 가을에서 겨울 가는 사이 희디 흰 창호문을 새로 바르고 그 문을 바라볼 적 그토록 환한 세상에 속마음이 벙글어져 본 사람이다.

 “거시기 저거이 개똥풀 잎싹이여. 문 보를 직에 풀잎삭 한나 똑 껑꺼서 여코 볼라. 모냥 있으라고.”

 기능보다 미감. 다 빚은 독 위에 손가락으로 꾸밈없이 욕심없이 지두문 그려 넣어 보는 도공의 그 마음이 이 소박한 집치레를 거르지 않은 할매의 그 마음일 터.

 그 옆으로는 쇠때도 비밀번호도 없는 야간방범시스템.

 “우리 집에 사립문 없슨께 숟구락 한나 꽂아노문 암만해도 든든허제. 이거이 전에 식구 묵든 순구락이여.”

 식구 훈짐 묻은 숟구락 하나 짱짱하게 할매를 지킨다.

 

 눈곱만한 창으로

 담양 창평면 외동리 할매네 `눈곱재기창’.

 표준어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누꿉’. 창문의 살 한 구획 사이에 따로 내어 공기를 통하게 하는 작은 창. 커다란 누꿉도 있고 눈곱만한 누꿉도 있다. 여닫는 누꿉도 있고 여닫지 못하는 누꿉도 있다.

 “방안에 들앙거서 문 안 열고 내다볼라고. 여름으로는 옷이 한껍딱인께. 시한으로는 이거 있기 땀새 어짜튼간에 문 한번이라도 덜 열어. 그전 시상은 웃목에 둔 자리끼가 아침이문 땡땡 얼어 있어. 땔감이 그러고 귀해. 저녁밥 험서 불 때고 정 추우문 군불 한번 더 때제만 그 훈짐으로 전디는 시상이여.”

 가로 세로 기껏 손가락 한 매듭 폭의 작은 창이 그토록 요긴하였다.

 

 댓돌 위 신발 한 켤레, 고적하여라

 댓돌 위에 퍼런 색 `쓰레빠’만 덩그러니 고적하니 놓여 있다.

 “여그 할무니가 구십 셋이여. 얼매 전에 요양원으로 가셌어.”

 이웃집 아짐이 전해주는 그 집 할매 근황이다. 살아생전 이 그리운 집마당 한번이라도 다시 밟을 수 있을지, 저 닫힌 방문 다시 열어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떠난 할매.

 날마다 그 댓돌 오르내렸을 게다. 여기 그 할매가 살았노라고, 밭으로 고샅으로 우물로 종종거리며 다녔노라고 증언하는 댓돌 위 신발 한 켤레.

 

 새는 식사중, 평화(平和)롭구나

 “나도 먹고 너도 먹고 우리 함께 살자”는 마음이 담긴 풍경.

 `고수레’ 음식을 새가 먹고 있는 중이다. 남원 실상사 보광전 뒤에 차려진 밥상 앞.

 옛사람들은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를 하지 않고 먹으면 체하거나 탈이 난다고 믿었다. 그 아름다운 믿음의 발원지는 `생명존중’과 `나눔’의 마음.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 저 조그만 상이 차려져 새를 불러왔다.

 날짐승, 길짐승, 들짐승, 산짐승, 개미 같은 곤충 모두를 한 식구로 여겨 공평하게 몫을 나누는 그 마음, 평화(平和)롭다.

 

 `동거의 미학’ 제비똥 받침대

 “제비가 해필싸 딱 방문 앞에만 집을 지서. 한사코 거그다만 지서. 새끼는 쌍쌍이 나. 두 마리 아니문 네 마리.”

 제비집을 거느린 처마. 반듯하게 자른 나무판자가 제비집 밑에 뽀짝 붙어 있다. 이름하야 `제비똥 받침대’. `동거의 미학’이 빛난다.

 “저거 없으문 여그가 제비똥으로 허애불어.”

 행여 새끼가 높은 둥지서 떨어져 다칠세라, 미리 안전을 도모하는 역할도 한다.

 “구찮해도 같이 살아야지.”

 남봉운(순천 황전면 황학리) 어르신의 공생 선언.

 내쫓으면? “죄받지!”

 

 이 넓은 우주에서

 국도변 오래된 이발관 앞에 매달린 녹슨 가위의 나사못. 이 넓은 우주에서 하필 그곳이 그의 쉼터였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숨을 죽이고 있는 청개구리.

 `인드라’라는 그물이 있다. 그 그물코를 잇는 이음새마다 구슬이 매달려 서로를 비춘다. 풀여치도 잠자리도 청개구리도 사람도 모두 한 가지로 그물코에 매달린 구슬이다. 서로를 비추고 엮는 한세상 인드라망. 주인인 양 행세하는 사람이어서 미안!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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