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한계 극명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퓨리’는 얄팍한 할리우드 영화이다. 전쟁영화를 표방한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남다르긴 하지만,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는 점에서 사유의 깊이가 얇다는 평을 받는다.
‘퓨리’의 전쟁에 대한 접근법은, 막대한 물량 공세를 퍼붓는 대신 전장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하여 이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에 공을 들인다. 뜯겨나간 얼굴, 탱크에 무참히 짓밟히는 시체, 불타죽는 군인 등 죽고 죽이는 끔찍한 전쟁을 날것으로 전시하고 있다.
영화의 골격은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독일군에 맞서 싸우는 미국 전차부대의 활약상이다. ‘퓨리’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탱크의 수장은 돈 콜리어(브래드 피트)다. 그는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물로 ‘워 대디(전쟁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인물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의 결말을 예측해볼 수 있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전쟁영웅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피투성이 어른으로 키우기
하지만 ‘퓨리’는 전쟁영웅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차라리 이 영화는 성장영화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전차부대에 신병이 한 명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노먼(로건 레먼)이다. 한눈에 보아도 앳된 얼굴과 심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가 전장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다. 영화는 때 묻지 않은 이 청년이 어떻게 피투성이 어른으로 변해가는가를 지켜본다. 물론 그를 성장시키는 역할은 브래드 피트의 몫이다. 그러니까 돈과 노먼은 유사 부자관계의 모습을 한 채, 훈육하고 그 가르침을 전수받는 식이다.
전장의 특성상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내가 죽게 될 게 자명하다. 이에 돈은 노먼에게 적을 사살하는 것부터 가르친다. 이때 노먼은 “차라리 나를 죽여요”라고 말하며 울먹이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돈은 노먼을 다그치며 전쟁기계의 길에 들어서도록 종용한다.
이 영화가 전쟁영화의 외피를 쓴 성장영화임을 명확히 하는 순간은, 돈 일행이 독일의 한 마을에 잠시 머무를 때다. 돈과 노먼은 피난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와 딸의 집에 잠입하게 된다. 전쟁영화치고는 한가롭기 그지없게 연출된 이 장면에서 노먼과 그 집 딸은 피아노를 치며 함께 노래 부르고, 급기야 두 사람은 돈의 독려하에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렇듯 이 영화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노먼을 성장시키려고 안달이다. 가관인 것은, 그 처녀가 곧바로 폭격을 맞아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노먼의 굳센 성장을 위한 장치치고는, 사랑과 이별을 싸구려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 역시 싸구려로 전락한다.
전쟁영화? 성장영화?
이렇게 햇병아리 청년의 성장드라마를 위해 매진한 덕분인지, 노먼은 전쟁초보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총질에 쾌감을 느끼는 ‘머신’이 된다.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살폈듯이, ‘퓨리’는 전쟁영화의 틀을 빌어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적응시키는 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강한 아버지의 지도아래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퓨리’인 것이다. 또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것은 현실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의 전쟁터는 사회라는 정글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연출 의도가 빤히 읽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여기에다 ‘퓨리’는 할리우드영화의 태생적인 한계를 노출한다.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 중 한 나라에 불과한 미국의 군인들이 나서서 독일군을 섬멸하는 것도 그렇고, 영화 말미에 탱크 퓨리와 한 덩어리가 되어 수많은 독일군에 홀로 맞서는 브래드 피트의 영웅주의를 강조하는 것도 그렇다.
이렇듯 ‘퓨리’는 기존의 전쟁영화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할리우드의 울타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영화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