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정삼례 아짐의 호박고지들깨탕과 해삼죽

장수 가는 길. 아침부터 하늘이 꾸무럭꾸무럭 찌푸리고 있다. 스산한 바람에 흩어지는 먹구름이 궁시렁궁시렁 대는 것도 같고. 동화댐 근처에서 희끗희끗 비치던 눈발이 지지계곡 따라 구불거리다 무릉고갯길을 발딱 넘어서자 사방에서 와락 달려든다.
무성하였을 잎사귀와 잔가지를 모조리 쳐낸 가로수들은 까맣게 골간만을 드러내고 우뚝한데, 양팔을 뻗으면 좌우로 손가락이 닿을 듯한 산기슭에는 아직 단풍이 한창이다. 가을이 못내 아쉬워 머뭇대는 배웅 길에서 성큼 들어서는 겨울을 마중하는 시절이다.
전주 친정과 김제 시댁의 손맛을 오롯이 대물림
장수군 장계면 명덕마을. 굽이굽이 산골짜기에 울도 담도 없는 작고 아담한 집이 정삼례(66) 아짐과 김광열(69) 아재의 보금자리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겪은 갖가지 사연들과 진솔한 속내를 그려내면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똥꽃》의 저자 전희식 선생의 이웃이다.
아짐은 자그마한 체구에 단아한 생활한복 차림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재료를 매만지는 자태가 곱고 차분하다. 부엌이 붙어있는 거실과 안방, 그리고 화장실과 작은 창고가 전부인 집은 세간도 단출하다. 번잡한 도시의 삶을 탈탈 털어내고 귀촌한 부부의 담박한 일상이 잡힌다.
“잘 하지도 못하는데 여기 먼 데까지 오셨네요. 그냥 옛날에 해먹던 음식인데….”
호박고지와 건삼을 물에 담가 불리는 중이다. 귀를 번뜩 틔게 하는 `옛날 음식’이란 호박고지와 건삼(말린 해삼)이 주재료인가 보다. 쌀과 표고버섯, 껍질 벗긴 감자, 우렁도 물그릇 안에서 몸을 눅이고 있다.
“그러니까 이름이… `호박고지들깨탕’하고 `해삼죽’이예요. 호박고지들깨탕은 시어머니께서 많이 만들어 주셨고, 해삼죽은 전주에서 친정어머니한테 배운 음식이예요. 친정어머니께서 음식을 참 잘하셨어요. 그때 아버지가 유림(儒林)에 계셨어요. 손님들 오시면 영양식 같은 걸 많이 하셨어요. 산자, 전골, 애저 그런 걸….”
내력 없는 음식이 어디 있으랴. 아짐을 따라 귀한 겨울의 맛 두 개가 전주에서 장수로 옮겨온 게다. 아재의 고향인 김제에서는 호박고지들깨탕에 우렁을 넣었다는데, 시어머니의 조리법을 아짐이 대물림한 셈이다. 김제평야의 너른 논바닥에 벼가 쑥쑥 자라날 때 고물고물 제 몸피를 불리던 우렁을 잡아다가 농가마다 아주 요긴한 식재료로 썼을 것이다.
“대보름 같은 명절 때 많이 먹었지요. 살얼음이 살짝 낀 차가운 호박고지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음식을 아내의 손맛으로 누리는 아재가 옛 추억을 더듬는데…, 나 역시 아주 오래전 들깨를 흠뻑 묻힌 호박고지를 나물이라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던 겨울날이 아슴푸레하다. 시루에 찐 찰밥이 땡땡 얼어붙어 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호박고지는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을 말린 거려니 했지만 의외로 껍질은 푸릇하고 속살은 희부옇다. 납작하게 썰어서 삐득삐득 말린 호박고지는 길쭉하기도 하고 동그랗기도 한것이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다.
“끝물 호박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서리 오기 직전에 풋호박을 따다가 말린 걸 세 시간 정도 물에 불려야 해요.”
아재와 아짐의 설명대로 넝쿨이 더 이상 뻗지 못하고 멈출 무렵에 맺히는 늦둥이 같은 호박으로 만든 고지다. 아짐이 적당히 눅어졌다 싶은 호박고지를 맑은 물로 씻는다. 빡빡 문질렀다 헹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손매가 무척재고 맵다. 깨끗하게 씻은 호박고지를 꺼내 뚝뚝 칼로 썰어 마치 좋게 입에 넣기 편한 크기로 만든다.
호박고지를 갈무리한 아짐은 불린 쌀 한 컵 정도와 표고버섯 우린 물에 들깨가루를 개어 넣고 믹서기를 돌린다. 말린 새우도 함께 갈아 영양을 보탠다.
“예전엔 절구에 찧고 멧돌로 갈았을 텐데 요즘은 이렇게 편리해졌어요.”
뭐든 잘게 갈아 입자가 부드러워지면서 입안의 감미로움은 얻었으되 씹는 맛이 덜해졌으니 부엌살림에 따라 음식의 풍미도 달라졌을 법하다.
짜시래기 호박들을 그러모아 만들어낸 감격스런 맛
이제 널찍하고 납닥한 솥에 호박고지와 우렁을 넣은 뒤 들기름을 붓고 볶는다. 밑간으로 간장과 소금을 슬쩍슬쩍 뿌리고 살살 저으면서 익힌다.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다.
“친정에선 칠남매 막내고요 스물셋에 시집왔어요. 남편이 스물여섯 살 때인데 육남매 장남이었고요.”
“오메! 그러면 시부모님 모시고 시동생들 거두면서 시집살이깨나 하셨네요.”
“아이고! 저희가 모신 것이 아니었어요. 그땐 `모신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암껏도 모르는 어린 우리들을 시부모님이 고맙게도 데리고 살아주신 겁니다.”
가신 분들에 대해 애틋한 그리움만 남은 아짐의 마음자리가 참 곱고도 따숩다.
호박고지와 우렁이 얼추 익었다 싶을 즈음에 들깻물을 끼얹듯 부은 뒤 바닥이 눅지 않도록 계속 젓는다. 센불로 볶고 중간불과 약불로 바꿔가면서 서서히 고루고루 익힌다.
손이 많이 가고 성가시고 까다로운 음식이다. 솥을 들어낼 때까지 잠시라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여기에 쪽파 대신 달래를 썰어 넣어요. 집 앞에서 달래하고 냉이를 캤지요. 봄에 난 것하고는 좀 다른 맛이 나요.”
봄나물로만 여겼던 냉이와 달래가 풋풋하고 싱그럽다. 집 주변 들판에서 캤다는 냉이는 데쳐서 나물을 무치고 달래는 길쭉하게 썰어 들깨탕에 올린다. 붉은 고추 몇 개까지 칼질해 얹으니 색색이 고명으로 안성맞춤이요 매움한 게 솥 안의 미미한 기름기까지 싹 잡아준다.
호박고지들깨탕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보니 고소한 들깨가 미음처럼 분말처럼 혀끝에 감겨오더니 호박고지가 잘근잘근 씹히며 개미지다. 우렁의 연한 살점이 들깨와 얽히고 달래랑 설키는 맛도 난생 처음이다.
그냥 버려도 하등 아까울 것 없을 성싶은 짜시래기 호박들을 그러모아 만들어낸 감격스런 음식이다. 미처 자라지 못한 `미생’의 호박을 이렇듯 어엿한 `완생’의 특식으로 즐겨온 농가의 오래된 지혜가 경이로울 뿐이다.
아짐이 손수 만든 도토리묵에 곁들일 달래장을 만들기 위해 간장을 뜨러 나선다. 출입문을 열자 청정한 바람이 `쏴’ 달려든다.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남쪽으로 멀리 장안산 자락이 물결치고 집 뒤엔 남덕유산의 능선들이 씩씩하게 휘달린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등성이로는 벌써 하얀 눈이 뒤덮여 장관이다.
“애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골집을 찾게 되었어요. 도시생활이라는 게 삭막해서 나중에 커서 추억할 것도 없잖아요.”
인자한 얼굴에 풍채 좋은 아재가 털어놓는 귀촌의 이유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사는 노후생활보다는 손주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전원을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겨울이면 눈에 묻혀 며칠씩 길이 막히기도 하고, 장수 읍내나 전주의 병원까지 나다니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의 내리사랑 그러하니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아들딸 앞세우고 고향길 재촉하는 자식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올망졸망 크고 작은 항아리가 자그마치 100여 개나 조르라니 줄을 맞추어 반질반질 빛을 낸다. 어느 집이든 장맛에서 음식 맛이 나오는 법이려니 애써 자랑의 말씀이 없어도 이 멋드러진 장독대에 담긴 자부심이 짐작된다.
어머니의 따순 손길이 등을 다독이는 듯한 영양식
“이 장맛 한번 보실래요? 시어머니께서 담그신 장이예요.”
진진한 검정색 간장을 손에 찍어 혀를 대곤 아주 오래 묵은 장맛을 느낀다. 완전한 숙성! 달고도 고소한 음미 끝에 짜다고는 할 수 없는 향긋한 간기가 있다. 한 세월이 담긴 장맛이다.
아짐은 물려받은 씨간장을 신주단지 모시듯 지키면서 그걸 밑천으로 장을 담가 보태며 맛을 잇고 있다. 몇 해 전엔 주변에서 등을 떼밀어 엉겁결에 완주에서 열린 음식경연에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단다. 첫 출전이었는데 단번에 최고상을 거머쥐면서 음식솜씨를 널리 알리게 된 것이다.
아짐이 묵장을 후딱 만들고 나서 해삼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기는 `호박고지들깨탕’과 매한가지다.
“건삼을 하루정도 물에 불렸다가 삶은 다음 맑은 물에 서너시간 또 불려요. 또 삶아서 맑은 물에 불리고 다시 삶아서 맑은 물로 헹구면 뭐랄까 말랑말랑해져요. 새우등처럼 굽어지고…. 그러면 이빨과 창자를 벗겨낸 다음에 쫑쫑 썰어서 참기름에 볶아요. 그 다음 쌀을 넣고 서너 배 정도 되게 물을 부은 뒤에 저으면서 끓이면서 죽을 만들면 돼요.”
돌멩이마냥 단단한 건삼을 세 번씩이나 삶고 불려서야 갯바위를 기던 오돌토돌한 해삼 꼴이 나왔다.
아짐이 고무공처럼 탱탱한 건삼의 배를 갈라 창자를 긁어내고 씻은 뒤 쫑쫑 썬다. 표고버섯과 감자도 자잘하게 칼질을 한다. 압력솥에 건삼, 표고버섯, 감자 조각들을 쓸어 넣고 참기름을 넉넉하게 따른 뒤 볶는다. 이번에도 소금으로 밑간을 맞춘다. 30분 남짓 물에 불린 쌀을 사람 숫자만큼 컵으로 헤아려 푼다. 이제 해삼죽에 들어갈 모든 재료가 솥에 모인 게다. 물을 조금 붓고 바닥에 눌러 붙지 않도록 솥 안을 저어가면서 끓인다. 재료들이 잘 섞이고 쌀이 절반쯤 익을 즈음 물을 호복하게 붓고 솥뚜껑을 닫는다.
“압력솥으로 죽을 쑤면 예전처럼 물을 많이 넣지 않아도 돼요. 금세 딸그락 소리가 나고 약간 뜸만 들이면 되고요. 팍 퍼지지도 않고 쌀 알맹이가 그대로 살아있어요.”
해삼이야 흔히 생물을 사다 우두둑우두둑 씹는 맛이려니 했는데, 내륙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식도락이었을 게다. 비록 건삼이나마 해산물의 풍미를 붙잡고 여기에 감자와 표고버섯을 더하여 바다와 뭍의 음식 궁합을 맞추었나 보다.
“뽕잎가루를 넣으면 전복죽처럼 색깔도 좋고 몸에도 좋은데, 깜빡 잊어버렸네요.”
해삼죽에서 뜨끈뜨끈 김이 오른다. 잘 익은 쌀은 알갱이 그대로 자르르 윤기가 흐르고 쫑쫑 썰어 넣은 표고버섯과 달래와 어울려 색감도 식감도 일품이다. 아짐의 해삼죽 한 그릇이면 한겨울 추위도 거뜬할 성싶다.
상차림이 화려하다. 해삼탕과 호박고지들깨탕에 연근조림, 물김치, 백김치, 도토리묵, 북어조림, 냉이나물, 배추김치, 고사리나물, 그리고 반주로 국화술까지 오른다. 손주들이 오면 만든다는 맵지 않는 떡볶이는 잘깃잘깃 달콤한 별미다. 고사리, 표고버섯, 달래, 냉이, 배추, 연근…. 부부가 작정하고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해삼과 북어를 빼면 거개가 마을 근처의 산골과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들이다.
달래장을 조금씩 끼얹어가면서 죽을 비벼먹고 매끄러운 호박고지를 꼭꼭 씹는데 저절로 차분해진다. 마치 어머니의 따순 손길이 등을 다독이는 것처럼 유순해진다. 입안에 고인 감미로운 개미가 몸에 원기를 북돋고 맘속 깊이 스며드는 다정한 영양식이다.
“식기 전에 가져다 드려야겠어요.”
아짐이 해삼죽과 들깨탕을 조심스레 그릇에 담아 안고 집을 나선다. 전희식 선생의 어머니에게 갈 참이다. 덕유산 자락에 청명한 바람이 일고 환한 햇빛 한 줄기 아짐의 등을 가만가만 밀어댄다.
글=황풍년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