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의 태양을 새해라는 이름으로 맞는다. 모두에게 객관적 시간이라는 것이 적용된다면 또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주관적 시간이 존재한다. 그 시간을 주관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경험을 능동적인 것으로서 해보는 것(trying)과 수동적인 것으로서 겪는 것(undergoing)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난 일 년 혹은 일생을 돌아볼 때 겪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잠시 존 듀이의 구분을 참조하여 내가 해본 것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운영하는 상담소도 지난 일년간 광주와 전남지역의 여러 학교들을 다니면서 많은 학생과 교사들을 만났다. 그 속에서 주고받았던 많은 교류들을 떠오려보며 그것들이 오롯이 나의 삶, 나의 피부, 나의 존재가 되었음을 느낀다. 오늘은 최근 학교에서 만났던 학생들과의 작지만 웃음을 주는 상담소 선생님들의 에피소드를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Episode 1-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전교생이 30명도 안 되는 아담한 전남의 모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하던 도중이었다.

 감정과 연관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 우연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각자 가족에 대해 물어보고 있던 도중, 평소에 침착하고 예의바르던 남학생 한 명이 나를 바라보더니 비밀이야기를 하듯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속삭이며) 선생님.” “왜? 겸손아(가명).” “내가 어떻게 태어난 줄 알아요? 난 알아요.(굉장히 진지하게 선생님을 바라보며)” “응? 궁금하다. 넌 어떻게 태어났는데?(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짐작하며 약간 당황하며)” “우리 엄마가 남자 2명에 여자 2명을 가지고 싶었대요, (잠시 쉬었다가) 그래서 학을 예쁘게 접으면 원하는 소원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해서 학을 천 마리나 접고 저희를 낳았대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생각하는 찰나, 옆자리의 아이가 말한다.

 “와 대박! 학 접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대박!”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의 탄생은 엄마의 정성스러운 학 접기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Episode 2-선생님 괜찮아요!

 

 전남의 조그마한 초등학교에서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실시하였다.

 내가 맡은 집단은 5학년 아이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었다.

 여자 아이 한 명에 남자 아이들만 5명이었지만, 집중하고 들어주는 태도가 남달라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프로그램에 대한 좋은 태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평소에 하던 대로 까불거나 비난하고 조롱하고, 자신이 무슨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갈등을 만들던 아이들이 점점 진지해지는 모습이 관찰되어서 기특했다.

 감정중심대화법을 빨리 알아차리고 머무르는 모습! 두려움보다는 자신과 상담자에 대한 믿음이 커서 빨리 바뀔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변화 중에서 가장 뚜렷한 변화모습이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상담선생님이 어른인지, 친구인지, 동네 아줌마인지 개념 없이 이야기하다가 어른과의 관계에서 이야기를 하는 방법과 즐거움을 깨닫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프로그램을 끝내는 날이었다.

 모델링을 잘 해주던 여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13살이 되었어요.(너무 안타깝다는 듯이)”

 순간 너무 우습고 어이가 없었다.

 “어이쿠! 이틀 만에 엄청 어른이 되었구나! 선생님은 마흔 셋이 되었다. 하하!” 라고 내가 말했다. 그 여학생이 수습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선생님 괜찮아요! 아직 선생님은 생일이 안 지났죠? 그럼 마흔 둘이에요. 슬퍼하지 마세요.(선생님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선생님에게 위로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상담자들은 많은 학생들을 만난다. 그들의 삶이 힘겹다는 것을 알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서로를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경험이라는 자신의 삶의 일부를 남기고 간다. 어떤 일부는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만, 어떤 일부는 삶의 중간마다 우리의 의식으로 올라와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색깔을 다르게 만들고 사라진다. 우리 상담자와 우리가 만난 학생들의 삶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 나아가서 수동적 경험에 대한 의미만을 발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능동적 경험을 창조하길 바란다. 이젠 조금씩 자신을 깰 때이다.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확장시켜볼 때이다.

정의석<미래학습상담센터 소장/인문지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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