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대한항공 회장으로서, 또한 조현아의 애비로서 국민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다시 한 번 바랍니다. 저를 나무라 주십시오.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사과문이다.

 

‘땅콩회항’ 조현아는 누가 만들었나?

  작년 말에 기내 서비스 문제로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 회항’ 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다. 사건 발생 후 조기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였다면 이렇게 일이 커지진 않았을지 모른다. 반성 없는 사과문에 국민은 분노했고 부랴부랴 당사자가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때는 늦었다. 아버지까지 나서서 사과하였지만 결국 조현아 부사장은 구속되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과가 참 당황스럽다. 마치 학교에서 사고 친 아이 때문에 사과하는 아버지 같다. 대기업 부사장을 맡고 있는 중년의 자기 딸을 초등학생 정도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카메라 플래시 앞에 서 있는 조현아가 대기업 부사장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철딱서니 없는 딸’로 보이는 건 왜일까.

 이것이 문제다. 조 회장이 아버지로서 잘못한 것은 아직도 40대 대기업 부사장을 초등학교 수준으로 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딸은 관리의 대상이었을 게다. 부모가 미리 미리 알아서 다 해주었을 거다. 외국 대학도 아버지가 다 알아서 보내주고 결혼도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신랑을 찾아줬을지 모른다. 당연히 부사장까지 올라온 것도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일 테고, 지위가 올라가서는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관리 해주었을 거다.

 관리를 잘 해주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헬리콥터 맘’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하늘을 맴돌 듯이 자식 주위를 맴돌면서 아이가 해야 될 일을 미리 알아서 다 해주는 부모들이다. 그 부모들에게 아이는 관리의 대상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좌절과 실패의 경험을 못한다는 것이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마음이 단단해지고 생각이 창의적이 되고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에 대한 공감도 할 수 있고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도 알게 된다. 그 경험이 없으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남탓하고 또 결국 부모가 나와서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헬리콥터 맘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부모의 도움이 없는 아이는 뒤떨어지게 돼있는 교육 제도다. 초등학교 숙제부터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때는 수행 평가 과제도 부모가 해줘야 한다. 더욱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을 가려면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관리 방식이 어른까지 이어진다. 대학생이 되어도 학점 관리·친구·애인 관리까지 해주고, 직장 들어가면 동료 상사 관리까지 해준다. 믿기 어렵겠지만 심지어 연봉 협상을 엄마가 와서 하기도 한다.

 

도와주지 않을 수 있는. 부모의 힘

 이렇게 미리 위험 요소를 제거해주고 불편을 처리해주고 정답의 길로 이끌고 가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계획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계획과 관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해프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식을 완벽하게 관리해줄 수 없다. 회장 딸이라고 어려서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관리를 받아온 사람도 결국 ‘땅콩’하나로 무너지는 게 세상 이치다.

 부모는 삶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 질지 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삶의 정답으로 아이 인생의 로드맵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건 아이의 인생이 아니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서 무난하게 사회적 안정을 얻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좌절과 실패의 경험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절절한 삶이 진짜 행복이다.

 부모에게 꼭 필요한 힘이 있다. 그건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 때 도와주지 않을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녀가 겪어야 할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나도 모르게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건 아이의 인생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사이코 드라마 수련감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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