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게 두른 목걸이마냥 처마 밑에 겹겹이 곶감줄을 매단 집.
마산떡(81·화순 동면 무포리) 할매는 잘 익은 홍시감을 내미는 손짓으로 말보다 먼저 첫인사를 건넨다.
“요런 꼴짝에서 이러코 짜잔헌 디서 이러코 사요.”
대문은 있는데 한쪽 담은 아예 없다.
“담 없은께 속이 다 뵈이요. 들와봤자 헛품이여.”
`개조심’이라는 삼엄한 경계의 말보다 `들와봤자 헛품’이라고 가만가만 다독이는 담없는 집.
“잡사. 달아. 아, 잡사랑께. 내집에 왔은께 뭐이든지 묵고 가문 좋제.”
할매는 시방 쉬는 시간.
“아적내 짐장배추 캐갖고 와서 씻겄어. 한바탕 하고 잠꽌 앙거봤네.”
아침에 수고한 자국 씻고 할매 따라 섬돌에 잠꽌 쉬어보는 신발 대신 할매는 또 다른 일신을 꿰어 신는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길 수 있어”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분주하고 떠들썩하다. 화순 동면 마산리.
도로가에 군데군데 흩어져 나는 철쭉꽃을 한 군데로 보기 좋게 옮겨 심는 울력을 하느라 동네 청년들, 아니 머리 희끗한 70∼80줄의 어르신들이 삽 하나씩 들고 모태들었다.
“울력에 안 나가문 맘에 가책이 되죠. 놈들은 다 나가서 고생헌디 같은 마을에 삼서 안 나가문 맘이 편할 것이요. 몸이 암만 편해도 맘이 안 편하문 편한 것이 아니제.”
병원에 갔다 오자마자 부리나케 삽을 챙겨들고 나선 김형균(76) 할아버지.
“저번에 경운기에서 떨어져서 갈비뼈가 두 개나 뿌러져 불었어. 높은 디서 궁글어불었어. 깔크막 고약한 디 내려가다가 잠깐 잘못에 비락(벼락)같이 내려가불었제.”
그 몸이니 좀 쉬어도 되련만, 기어이 울력에 나섰다.
임형규(82), 임석철(78), 윤종환(73), 조병길(74), 임석인(77), 조수현(67), 유재수(76), 문삼환(77) 어르신이 오늘의 울력 동지들.
생색이 크게 나는 일도, 돈이 되고 밥이 되는 일도 아니지만 “우리 동네 일인께” 흔연히 힘을 보탠다.
“옛날에는 동네 울력 참으로 많이 했제. 고샅 청소도 하고 담도 쌓고 부락에 방천나문 방천 하고 나무도 심고. 인자 울력이 없는 편이여. 옛날에는 모다 힘 많이 쓰고 살았제.”
동네 울력도 많았고, 그래서 힘 쓸 일도 많았던 그 시절엔 모두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사철가’ 한 대목처럼 세월 속절없이 가버려 `오늘 백발’이지만, `어제 청춘’을 기억해주는 이들과 더불어 다시 청춘인 양 한껏 힘써보는 겨울 한낮.
“혼차 못헐 일도 여럿이 하문 해낼 수 있응께 좋제.”
김형균(76) 할아버지가 `인중승천(人衆勝天)’이란 한자성어를 일러준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여. 그만큼 사람 여럿이 힘을 모태문 그 힘이 크다는 말이제.”
“흙 안 묻히고 어치고 곡식을 내겄소”
“우리는 흙 파묵는 사람들이여. 흙같이 깨끗한 것이 없제. 사람이 흙에서 나서 흙에서 나온 것 묵고살고 흙으로 도로 돌아간디.”
고창 무장면 신촌리 사는 김진석(75) 어르신. 오늘은 공음면 용수리 논에 건너와 짚단을 묶는 중이다.
“묶어서 밭에다 깔제. 거름 되라고. 인자 또 논 갈아야제. 일이 멈추들 안해. 일은 끝없이 닥쳐. 시방부터 봄 농사 준비여. 봄 오문 봄일이 지달리제.”
시방 신은 밭장화도 호사라 여긴다.
“67년도에 제대허고는 못자리를 허러 들어갔는디 그때 어치게 발이 시럽든지 나갔다 들어갔다 및 번을 발을 45여야 들어갔어. 그때는 음력 4월인디 봄 추위가 겁나게 씨었어.”
무논에서 알곡 키워내며 시린 세월을 건너 온 아버지의 생애는 흙신을 다시 흙신으로 바꿔 신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인자 이 신을 누가 신을 것인가 생각허제. 아부지들은 다 자기 아들한테 이런 신 안 신길라고 도시로 내보낸 것인게.”
`농자천하지대본’은 전설같은 말일 뿐이고, 지금세상은 흙에 사는 이들을 대접하는 세상이 아니다. 하루 종일 구두밑창을 흙바닥에 대보지 않고 사는 이들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촌에 산께 일생 손해요. 시방은 더군다나 촌사람은 푸대접 무대접이여. 그란디 흙 안 묻히고 어치고 곡식을 내겄소.”
할배는 장차 이 나라의 밥상이 걱정인데, 나랏일 하는 중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그런 걱정일랑 안중에도 없는 세상 아닌가.
“시집올 때는 꽃신, 그날 뒤로는 쭈욱 흙신 팔자여”
“시금추도 갓도 금이 안 나오요. 행팬 없소.”
최영조(75·무안 일로읍 죽산리) 할아버지는 “어찌꺼시오”라는 말 끝에 허허로운 웃음을 매단다.
지금 저 밭에 일렁거리는 초록은 희망이 되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내뿜는 담배연기는 한숨처럼 퍼져 나간다. 담배를 쥔 손은 골골이 주름 깊다.
“박스값 주제 운임 주제 상차비 주제, 그러고 나문 시금추 한 짝에 천원 남소. 천원은 현금으로 쥔디 내 품삯은 한나도 없제, 욀로 손해제.”
갓밭에 내내 엎드려 있던 박홍례(78) 할매는 “온 아직에는 밭에 안 나오고자픕디다”라고 입을 뗀다.
“일을 해도 아무 보람이 없어. 어지께 죽도록 하래 일해 갖고 시금추를 열야답짝 보냈어. 근디 한짝에 포도시 천원썩 남으문 인건비도 안 나온 폭이제. 일하느라 들인 벵원비 생각하문 암것도 아니여.”
그래도 부부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어찌꺼시오, 일은 죽을 때까지 해야지라.”
이유는 많고 많다.
“놀문 부끄란 일이여. 노는 사람이 없어, 시골에는. 아파서 아조 드러누운 사람말고는.”
“아그들은 인자 그만 일하라고 성환디 안 할 수가 없어. 카마니 앙겄으문 뭣헐 것이요. 죽는 날까지는 서서로(천천히) 지슴서 살아야제.”
그리하야 흙밭에 엎드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용맹정진, 오늘도 그치지 않는다.
“촌부자는 일부자여”라고 단언하는 할매.
“시집올 때는 꽃신 신고 왔제. 근디 그날 뒤로는 쭈욱 흙신 팔자여.”
“임금님 안 부러운 밭방석에 옛날께다 대문 호강이여”
“시방 내 동갑짜리도, 내 욱으로도, 내 밑으로도….”
열거한 끝에 내놓는 말씀.
“많이 가 불었어라. 그란디 나는 살아서 오늘 같은 날 마늘도 심고 좋소.”
마을 앞 남새밭에 오그려 앉아 마늘모종 심는 현경떡 최씨 할매(82·무안 일로읍 주룡마을)
“이것이 겨울내 있고 봄에까장 있어. 겨울풀이여. 겨울을 사는 잎사구여. 요것은 다마네기. 요것도 겨울잎사구여.”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마을모종 묻는 할매. 지나온 세상은 겨울이었고 시방 세상은 봄이라 하신다.
“시방은 옷도 좋고 신도 좋고 임금님 안 부러운 밭방석에 옛날께다 대문 호강이여.”
일과 동거해 온 평생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할매는 시방 `일방석 호강’중.
`밥’과 `노동’ 사이, 그 지척의 거리
잠시 벗었다. 신발을 벗으며 일의 무게도 일의 고단함도 잠시 내려놓았다.
붉은 황톳빛 길게 뻗은 고창 들녘, 아짐 셋이 밭 가상에 자리 펴놓고 들밥을 먹고 있다. 밥그릇과 멀지 않은 자리에 벗어놓은 흙 묻은 장화가 `밥’과 `노동’ 사이, 그 지척의 거리를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몸땡이가 우리 밑천이여. 하루라도 일 안하문 묵고 살 수가 없어.”
반찬이라곤 급히 챙겨싸온 김치와 깍두기 뿐.
“그래도 일하다 묵으문 맛나제. 반찬 없어도 맛나. 혼차가 아니라 같이 묵은께 맛나. 같이 묵어야 밥 묵다 웃을 일도 있제.”
새벽 캄캄한 시각부터 시작된 일이다.
“여가 인삼밭이여. 인삼 심을 밭에다가 말뚝 박는 자리 표시하는 일을 하고 있어. 뼁끼로 구먹 자리에다가 표시를 하는 거여.”
아침내 전진한 거리 만큼 흙먼지가 신발에 내려쌓였다.
이 나라 봄을 키우는 흙신
“내가 조깨 아퍼서 밭단속을 못했어.”
낯선 이가 밭을 들여다보자 밭이 짜잔하다고 부끄러워 하는 김금례(72?무안 일로읍 무령동) 할매.
“마늘도 늦게 심고 시금치도 늦게 심었어. 인자 막 돋아나요. 지그도 늦다고 빨리 클라고 애를 쓰요 안. 놈들은 겁나게 커불었는디 어짜끄나고 마늘도 막 나오고 시금추도 막 나오요. 물 묵고 보지란히들 나오요 안.”
밭에 마늘에다 밭에 시금치에다 대고 할매가 부르는 응원가에 덩달아 심이 뽀깡 난다.
할매가 오늘 심는 것은 보리.
“이 보리가 인자 추우를 버터. 눈속에 씩씩하게 커.”
추위를 버티기로는 할매의 생애도 보리와 한가지였다.
“나 시 살 묵고 엄마가 돌아가셔불어. 이붓어매가 들왔는디 얼매나 악물이여. 막 물어뜯고 찝어뜯고 그런 사람을 어매라 부름서 살아나왔어.”
눈 벌어지면 일자리에서 일자리로 발자국 옮겨온 삶. 밭에 놓아도 들에 놓아도 일로는 선수인 할매. 썩썩 땅을 긁어 보리 알을 떨구자마자 보물을 감추듯 재빨리 묻는 호맹이질은 달인의 그것이다.
“지금 숭그문 봄에 뽑아. 인자 푸릇푸릇 돋아나문 우리 해묵고 한번썩 뽑아갖고 가서 폴기도 허고. 홍애창시 여서 보리국 낄여 묵으문 맛나.”
보리 종자 반 되 흙에 묻으며 보리잎싹 넣은 홍애애국 차려내는 봄날의 밥상을 말하는 어매에게 겨울 들판은 `아무것도 없는 빈들’이 아닌 것이다.
“나코(나중에) 봄날 또 와. 나코 와서 맘대로 뜯어다 묵어.”
그리 선선하시니 `나코 봄날’ 이 보리밭에 올 기약이 생겼다.
“흙내가 좋아라. 흙이 좋아. 흙이 모든 것을 다 키와. 흙 없이 사람이 묵가니. 요 거시랑이(지렁이) 잔 봐. 땅이 이라고 모든 것을 다 키와.”
거시랑이도 화들짝 반기는 할매. 꽃버선 뀌어 신었을망정 일신은 금세 흙투성이다.
“금방 사 신어도 도로 금방 흙신 되야불어.”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더버기를 털어내고 이겨내고 살아온 그 신이 이 나라 봄을 당기고 있다. 그 흙신이 시방 이 나라 봄을 키우고 있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