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잘못 꿴 영화

한국 영화는 ‘쉬리’(1998) 이전과 ‘쉬리’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파이를 키워내며 한국영화의 산업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강제규는, 이어서 내놓은 ‘태극기 휘날리며’(2003)로 ‘천만영화’ 감독에 등극하며 명실공이 한국영화산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마이웨이’(2011)는 구태의연한 연출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이후 절치부심했던 강제규는, 자신의 연출목록에서는 다소 의외다 싶은 ‘장수상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어느 변두리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가 재개발이 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동네 주민의 한 명인 김성칠(박근형)이 이를 반대하며 갈등이 빚어진다. 이에 주민들은 김성칠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금님(윤여정)과의 연애를 추진하며 이를 돌파하려 한다. 이런 이유로 ‘장수상회’는, 노년인 두 사람의 서툴지만 애틋한 연애가 펼쳐지고, 조력자들이 거드는 모양새를 띠며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과 웃음이 묻어나게 된다.
여기서 당황스러운 것은, 이 영화가 흥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끌어다 쓰고 있는 ‘재개발’에 대한 사유의 얄팍함이다. 용산참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것이 재개발사업인데도, 어찌 되었는지 영화 속의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동네가 헐리고 고층아파트가 세워지기를 그토록 열망하는지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장수상회’의 모순되는 점은,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정겨운 묘사와 마을 주민들의 재개발에 대한 욕망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서도 발생한다.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관객들은, 주민들이 이웃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마을 대항 축구경기에서 다른 동네의 팀을 이기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장면이나, 중국집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화기애애한 모습, 그리고 불량소녀들에게 둘러싸인 아영(문가영)을 박양(황우슬혜)이 도와주는 장면들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이 동네는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살만한 곳임을 감독은 강조하고 있다. 한데도 감독은,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이 김성칠의 인감도장을 받아내어 재개발을 추진하고자 하는 모습을 고집하는 것이다.
고층아파트를 세우는 순간 공동체는 와해될 것이고, 동네의 주민들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을 터인데도, 이 영화는 재개발 이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장수상회’는 애초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영화다. 노년의 로맨스를 만들어내고 영화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재개발이라는 소재를 끌어다 쓴 것이 무리수라는 말이다.
‘장수상회’는 어르신들의 연애담으로 시작했다가 극의 후반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로 급선회한다. 이 반전이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전반부에 설치된 복선들이 치밀했는가를 따졌을 때, 그렇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니까 ‘장수상회’는 이야기전개에 있어서 강력한 무기로서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데, 이를 치밀하게 엮어냈는지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감독은, 시나리오의 기막힌 반전에 매료되어 연출에 임했을지 모르지만, 그 반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서의 섬세한 완성도는 담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장수상회’는 분명 온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개발에 대한 희박한 인식과 그 만듦새에 있어서 부자연스러움을 노출하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