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옥상달빛사진관’의 제이와 소녀

문을 연다. `미세요’ 혹은 `당기세요’, 수많은 문들을 열 때마다 그런 이분법적인 명령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곳의 문은 `밀든지 땡기든지 문 여는 사람 자유’이다.
`니 맘대로 하세요’라는 가벼운 선동. 허를 찔리는 유쾌함이 있다. 사소한 자유 앞에서 `사소하지 않은 자유’까지도 잠시 돌아보게 된다.
`허니버터칩’이 문에 장식처럼 매달려 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귀하신 몸으로 등극한 과자다.
“우왕 허니버터칩이당! 이거 먹으면 안돼요?
우르르 들어온 한떼의 여학생들이 합창하듯 외친다.
“안돼에∼” 느릿하니 거만한 대답이 이어진다.
“팔면 안돼요?”란 물음에도 답은 같다. “안돼에∼”
“그럼 왜 여기 달아놨어요?”
“자랑할려고!”
우하하하!! 웃음이 퍼진다. 안 먹어도 그만인 유쾌함이다.
먹으면 그저 과자일 것을, 거기 괴이쩍게 매달아두니, 이 역시 즐거운 소통의 장치가 된다. 훌쩍 무장해제되고 친밀해지는 실마리가 된다.
사진 한 장 찍자고 발품 파는 수고로움 마다않는
밤이면 달 뜬 듯, 외벽 간판에 걸린 노오란 조각달이 환하게 빛난다.
정읍시 상동의 주택가 한 모퉁이에 자리한 `옥상달빛사진관’. 문 연 지 반 년, 벌써 이름났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아니라 `페북으로 보았소’ 하며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부러 찾아온다. 셀카도 넘쳐나고 디카도 흔전만전한 이 시대에 사진 한 장 찍자고 발품 파는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기꺼이 찾아드는 사진관이라니!
“정말 감성돋는 사진관 하나 발견했습니다. 것두 정읍에 있다네요 ㅋㅋ” “사진마다 긍정의 에너지가 팍팍!!” “사진마다 코멘트를 달아주시는데 컨셉도 코멘트도 너무 재밌고 감동이다.” 홍보 담당은 이미 사진을 찍고 간 이들이다.
대체 무슨 마력이 있길래?
자신들을 찍은 사진부터 보자. 사진관을 개업하며 찍은 사진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개업’의 의미를 충실히(?) 살려 `개를 업고’ 찍었다. 황당무계하고도 유쾌발랄한 시도들을 놀이하듯 아무렇지 않게 가비얍게 해버리는 게 이들의 사는 법. 진부하거나 권위적인 사진은 결코 찍지 않으리란 확신이 든다. 여름에 찍은 사진 한장을 볼짝시면 `치마패션’이 압권이다.
“여름이라 한번 입어봤더니, 시원하더라구요. 그래서 자주 애용했죠.”
`소녀’의 답변엔 그런 게 대수냐 하는, 심상함이 서려 있다.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그저 `나답게’ 살아갈 뿐이라는 듯. `소녀’ `제이’ `삼춘’, 세 친구가 의기투합한 결과물인 `옥상달빛사진관’.
처음엔 주변에서 말렸다고 한다. 동업은 헤어지는 지름길이라고, 돈도 잃고 우정도 잃는다고. 걱정어린 조언들이 흘러넘쳤다. 그런 말들이 그저 닳은 편견일 수도 있음을 세 친구는 증명했다. 개업 7개월째, 우정은 건재하다. 비법은?
“가령 십만 원 벌었다 하면 저희는 애써 3등분하지 않아요. 3만원, 3만원, 옛다 4만원 이런 식이죠. 누군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더 챙겨가면 더 기쁘고요. 이상하게 저희 셋 다 그런 부분에서 별로 신경을 안써요. 아직 총각이라 그럴까요.”
`n분의 1’이란 계산방법이 셋의 관계 속에선 꼭 공평한 분배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10만원을 명확히 3등분하는 끝없는 산술이 아니라, 두루뭉술 주먹구구식의 헐렁한 틈새야 말로 우정과 신뢰가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던 것.
집안사정으로 마흔 살 `삼춘’은 잠깐 쉬고 있는 상태. 서른 다섯 동갑내기 `제이(나종언)’와 `소녀(전철홍)’는 우정의 역사가 자못 길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
“신기하게도 한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순전히 `제이’라는 친구의 배려심 때문이죠.”
그리 말하는 `소녀’의 성별은 남자다.
“제가 눈물도 많고 감성이 좀 풍부한 편이에요. 작품 보고 사람들이 `절대 너의 작품이 아니다, 분명 어느 소녀가 만들었을 거야’라고들 해서 아예 닉네임을 `소녀’로 지었어요, 하하. 제가 머리도 길고 소녀 이미지와 좀 맞지 않나요?”
머리를 길러서 묶고 아무나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크고 굵은 검정테 안경을 걸친 그는 그러나 외양으론 `소녀’보단 `형아’ 자체다. 아이들에게 `인생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야’라고 곁길로 인도할 것 같은 조금 삐딱한 형아.
`제이’는 “노래 `J에게’ 첫소절처럼 스치는 바람에도 감성 돋아서”, `삼춘’은 “삼춘같은 친근한 존재가 되고파서” 지은 이름.
“사진은 취미활동으로 오래 했어요. 서울에 올라가서 방송국 일도 하고 공모전도 참여하고 그러다가 그 다음엔 그냥 한량이었어요, 먹고노는. 그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어느 날 사진관을 시작하게 됐죠.”
이들의 고향은 정읍. 굳이 서울의 삶에 연연하지 않는다.
“여기가 밥이라면 서울은 짜장면이랄까. 매일 밥 먹다가 한 번씩 생각날 때 가서 먹으면 되는 거죠.”
“저희가 또 모두 효자예요. 자칭 효자라 좀 그렇지만. 늙어가는 부모님 곁에서 함께 살며 지켜보는 그 의미가 작은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희가 멀리 못가요.”
“웃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소품”
`고향의 삶’을 의지적으로 선택하며 시작한 옥상달빛사진관. 이름은 왜 `옥상달빛’일까.
“그냥 떠올랐는데, 옥상에서 달 본다 생각하니까 너무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더라고요.”
`달빛’을 누리는 기쁨을 아는 `낭만청년’들의 사진관. 책상 뒤편에 걸린 세 개의 시계엔 각각 `인도’ `두브로브니크’ `안나푸르나’가 써져 있다. 언젠가 꼭 여행하고 싶은 곳의 시간에 맞춘 시계를 각자의 자리 뒤편에 걸어둔 것. 그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세 개의 꿈이다.
그 외엔 특별한 세트장도 화려한 조명도 그럴듯한 소품도 없다.
“사진관을 하면서 새삼 느낀 건데 웃으면 다 예쁘더라고요. 사람 얼굴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웃을 때 안 이쁜 사람이 없어요.”
웃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소품이라는 주장이다.
“슬쩍 짓는 미소보다 이왕이면 환하게 웃는 게 더 이쁘고. 박장대소라면 더 좋고.”
“처음엔 특별한 포즈도 고민하고 궁리했어요. 근데 그저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만 하고 있어도 좋더라고요. 안아주고, 뽀뽀하면 더 좋고요.”
가족들이 사진 찍으러 오면 `엄마아빠 뽀뽀시키기’는 이들의 특기. `엄마아빠가 뽀뽀하면 가족은 자동으로 행복해집니다’라는, 근거없는 듯 근거있는 설을 전파한다.
찍다보니 자신들만의 레시피가 생기더란다.
“우리들의 사진 레시피는 사람들과 먼저 대화를 나누는 거요.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웃고울고. 사진은 그 다음이죠.”
중요한 사진재료 중엔 음악도 있다. 표정 속에 사진 속에 그 순간의 음악이 스며든다.
“가족사진 찍을 때면 인순이의 `아버지’를 들려주기도 하고, 학생들한테는 신나는 음악 틀어주고. 연인들한텐 이별노래를 틀어주면 막 웃어요. 반전의 재미랄까. 지금 이 순간 이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연인들이니깐. 결국 뭐 이별하지 말고 잘 사랑하라는 뜻이죠.”
예쁘게 보정하는 게 경쟁력이 된 추세와 달리 사진보정도 최소한에 그친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이건 갠소(개인소장)다, 아무도 못 보여주겠다’고 하기도 해요. 보정 안해주니까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 와중에’ 우리 사진관 컨셉 알고 그게 좋다고 오는 애들도 또 있어요.”
쉬운 흥행의 법칙을 따르기보단, 어떻든 `자연스럽게’ `생긴대로’ `자기답게’라는 노선인 것이다.
사진관을 찾는 관계들이란 친구, 가족, 연인들.
“이미지 사진이라 하잖아요. 예전 스티커사진의 변형이랄까. 우정사진, 가족사진 찍으러 많이들 오세요. 아무래도 스튜디오 촬영이나 고가장비의 장점이 있으니깐.”
`옥상달빛사진관’은 `추억전문점’이란다.
“우리는 사진 찍는다고 안하고 추억 찍는다고 그래요.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죠.”
남학생 열네 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고등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 친구들과 찍는 사진.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그 리듬에 몸을 싣는다.
카메라 앞에서 몇 초간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려 웃어보는 게 아니라, 진짜로 웃고 놀아보는 시간. 흥건한 몰입이다. 사진을 찍던 `소녀’도 그 대열에 잠시 끼여들어 함께 즐긴다. 좀 놀아봤을 것 같은 형의 영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촬영을 마친 아이들의 얼굴은 한바탕 축제를 치른 뒷끝처럼 발갛게 상기돼 있다.
“꼭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한테 잠시나마 놀아볼 시간을 주고 싶더라고요.”
사진으로 이 순간이, 이 관계가, 남을 것이다. 이 순간 각자의 마음 속에 일었던 파동까지도 사진은 언제고 재생시켜줄 것이다.
사진 속에 넣어둔 기발하고도 유쾌한 문구
옥상달빛사진관의 유리문에도, 페이스북(www.facebook.com/oksangdal)에도 추억들이 벌써 많이 쌓였다. 여느 사진관처럼, 견본 사진들을 액자에 걸어 모시는 방식이 아니다. 유리문을 전시장 삼아 사진들을 다닥다닥 붙여두었다. 언제든 이무롭게 들춰보고 꺼내볼 수 있는 추억처럼.
사진 속에 넣어둔 한두 줄 문구들이 기발하고도 유쾌하다.
심중의 무언가를 툭 건드린다. 길 가던 사람들의 발길, 그 집 앞에 멈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굽이굽이 한세월 함께 건너온 중년부부의 얼굴 위에 쓰인 문구는 `소년과 소녀였을 것이다’.
가족들 한데 모여 찍은 사진엔 `온가족이 모여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될까요’ 혹은 `세상에 봄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건 가족이다’.
조르라니 웃통 벗고 선 남자친구들에게 주는 말은 거두절미 `색깔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지만 우리는 친구다’.
졸업을 앞둔 고3 남학생들의 우정을 응원하는 문구는 `친구는 학벌도 실력도 명예도 집도 차도 돈도 따지지 않는 법’.
청춘들에게 주는 말들이 많다. `잘 못 놀아도 친구만 있으면 되는 나이, 뭘 먹어도 맛있고 뭘 해도 재밌는 나이’ `친군데 뭐 이유가 있냐 그냥 친구지’ `청년아 네 꿈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마라’….
골목길에 한껏 폼잡고 선 여학생들 사진엔 이 말이 정답, `꽃보다 아름다운 시절’. 반면 남자친구들끼리 둥글게 누워 얼굴 모태고 찍은 사진엔 `꼬추꽃 폈다, 아이고 의미없다’.
여학생들 단체사진엔 `다 이쁨’, 남학생들 단체사진엔 `다 못생김’. 남학생들은 `다 못생김’이라 써놔도 좋아하며 낄낄 웃는다. `다 이쁨’이란 의미로 접수한다.
옥상달빛 형아들의 애정표현을 안다. 군대 가기 전 세 친구가 찍은 사진 속 각각의 인물에 꼬리표처럼 써진 말은 `언제 갈지 모르는 새끼, 가는 새끼, 가는 새끼’.
남녀 친구들 한데 섞여 찍은 사진에 던진 말은 `예수님은 믿어도 교회오빠 성당오빠는 믿지 마라’.
다 자란 손녀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싼 할매의 사진엔 `참 보드랍다 거칠면서 보드라운 건 세상에 하나뿐이다 우리 할머니 손이 그렇다’.
두 손 맞잡고 찍은 자매의 사진엔 `자매야 저 손 절대 놓지 마라 살다보면 더 꽉 잡아야 할 날들이 많다’.
옥상달빛사진관만의 기지와 감성과 개성이 두드러지는 문구들이다. 그러고보면 사진뿐만 아니라 음악, 카피,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감각과 소양이 필요한 작업.
“저희니까 할 수 있는 일이죠, 하하. 저흰 가진 게 없어요. 빽도 없고 인맥도 없고. 그래서 자신감만이라도 가지고 살려고요. 남들이 잘 한다 그러면 빼지 않고 `진짜 잘하죠잉’이라고 저희 스스로 추임새를 넣어요. 아직 겸손할 만큼 잘나지 못해서, 하하.”
페이스북에 축적해가는 사진들 속에는 거개 문구가 들어가지만 고객들에게 건네는 사진엔 대개 넣지 않는다.
“하지만 문구를 넣어주길 원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들을 즐겨보는 팬들이 꽤 있다. “어떤 분은 쪽지를 보냈더라고요. 사진과 사진 속 문구들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고, 책 한권을 읽은 것 같았다고.”
쌓여가는 것은 추억, 삶의 이야기들
`힘들 때 이 사진 꺼내봐라, 좀 나아질 거다.’
언젠가 그런 문구를 사진 위에 얹은 적이 있다. `소녀’와 `제이’가 찍는 사진엔 그런 따뜻한 온기, 삶에 보내는 응원이 깃들어 있다.
“언젠가 여기서 사진 찍었던 여학생이 그런 메시지를 보내 왔어요. 졸업하고 취업해서 일하고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우리 사진관에서 찍었던 사진을 문득 보니 눈물이 난다고.”
옥상달빛사진관에 쌓여가는 것은 추억이고, 삶의 이야기들이다.
“수능 끝나고 학생들 스물여덟 명이 사진을 찍으러 온 적이 있어요. 급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친구랑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사진 찍고 싶다고 그 친구의 영정사진을 들고서. 그 친구의 여친도 함께 와서 사진을 찍었지요. 촬영하면서 울었어요. 그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또 지금 내 곁의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사진 속 아이들은 눈물 대신 웃고 있다.
“그 친구와의 시간들, 좋은 추억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웃으며 그 친구를 기억하려고요”, 그 마음으로.
가족사진 속에 개도 어엿한 일원으로 서 있는 사진이 있다.
“오랫동안 기른 개였대요.” 그래서 정말로 식구였던 개.
“그 사진을 찍었던 손님이 나중에 전해 주시더라고요. 얼마 전 그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이제는 세상에 없는 개가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 사진 속에 새져겨 있다.
“우리보다 젊은 사람한테서 `아버지’를 보았어요”라고 말하는 사진은 젊은 아빠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
“저 아버지가 사진 찍다 울었어요. 상선을 타는 분이라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함께 하지 못했대요. 나중에야 한국에 들어와서 생후 50일 된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었지요. 그때 아버지의 얼굴을 봤어요, 저 분은 그 순간 정말 얼굴에 정확히 드러났어요, 아버지의 마음이.”
모든 사진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거느리고 있다.
“이벤트로 `이달의 사진’ 뽑는 거 해볼까도 했는데, 감히 고를 수 없더라고요. 다 소중하고 각자에게 베스트인 사진인데 싶어서 그런 건 안하기로.”
`추억전문점’답게 사진관에 있는 개 이름도 `추억이’다. 문에 `개조심’이라고 정성들여 써붙인 종이 덕분에 `추억이’는 진짜 개 같은 숨결을 얻는다.
“버려져 있더라고요, 주워왔어요.”
유기견이다.
버려진 것들을 주워서 살리고 재활용하길 즐기는 `살림’의 고수인 이들. 낱개의 과일을 싸는 포장재도 버리지 않는다.
“붙여두면 꽃처럼 보이겠더라고요.”
그렇듯 사소한 것들도 버리지 못하고 쓸모를 찾아줄 궁리를 하니, 추억은 얼마나 살뜰히 건사하랴. 그 집 유리문에 시든 장미 한 송이 매달려 있다. `꽃이 시들었다고 너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게으른 방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을, 그 문구 곁들여지니 시든 장미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시간이 쌓인 장미, 이 또한 추억의 또다른 형태.
어떤 손님이 슬쩍 들이밀어놓고 간 편지도 문에 붙여 두었다.
“새해 복 양껏 받읍시다”라고 양띠해답게 `양껏’의 `양’자에 양을 그려넣은 애교가 돋보이는 연하장이다. 상행위나 거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놓여지고, 이어진다.
연예인들만 싸인 남기란 법 있더냐, 하듯 손님들의 싸인도 벽에 몇 장 붙어 있다. `옥상달빛 형들 최고? - 축구선수 안성진’도 그 중 하나. 학생손님이 써놓고 갔다. 느낌표가 아니라 물음표인 `최고’에 웃음이 난다.
“소중하게 간직하려고요. 먼 훗날와서 봐도 `우와 내가 썼던 거네’ 찾아보는 재미 있으라고.”
사진 찍으러 왔던 학생들을 동네 가게에서 만나면 반가와서 치킨도 사주고 피자도 쏘고 그런다.
“야 이게 재미지, 우리가 돈 벌어서 뭐하냐 함서, 흐흐. 저희가 차곡차곡 쟁이고 쌓고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학생들을 보는 마음이 애틋하다.
“저때를 저희도 보냈는데 힘들기도 했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는거, 그것이 아쉬워서.”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소중했구나>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란 노랫말처럼 언젠가 알게 되는 것들, 시간만이 알려주는 것들이 있다. 지금 찍은 사진들이 시간흘러 언젠가 건네는 이야기들은 더 깊어져 있으리라.
“그 시간 그 감정이 훅 안겨드는 그런 사진 있잖아요. 나중에 봤을 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죠.”
“사진 속에 안 보일 뿐이지, 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같이 찍힌 거라고.”
사진을 찍는 일이란 그렇게 누군가의 인생의 한 순간에 초대받는 일이기도 하고, 그 희로애락에 잠시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추억도 쌓이지 않을까요. `개처럼 살아라’는 말 있잖아요. `개는 밥 먹을 때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잘 때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는.”
그렇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이 찍는 현재, `추억’으로 쌓여가고 있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