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419, 516, 518, 416하면 떠오르는 것은? 알다시피 이 숫자들은 아픔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1225, 48은 어떤가.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다. 319, 1028, 811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숫자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의미 있는 숫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일과 기념일, 그리고 또?

 4월은 세월호 추모의 달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국민들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입힌 사건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났지만, 별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아 유가족은 지난 1년 동안 거리에서 지내고 있고, 이런 저런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제 ‘세월호는 지겹다’는 말을 한단다. 좋은 일도 한 두 번이지, 나쁜 일, 해결도 안 될 일은 더 듣고 싶지 않단다.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서.

 

 모든 인지적 활동의 기본적 근거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이렇듯 아픈 것들을 기억하려 할까. 기억하려는 자발적 노력에도 잘 기억되지 않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죽어라 외워 시험을 보고 나면, 가물가물하고 금세 흐릿해진. 그런데 어떤 것들은 기억하려하지 않았음에도 4월이 되면, 5월이 되면, 찬바람이 불면, 어떤 것이 이유가 되어 떠오르기도 한다. 왜 어떤 것은 쉽게, 또 어떤 것은 죽어라 해도 기억되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호랑이 소리인지 고양이 소리인지 한참 생각했다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안전 불감증의 결과가 대형 참사이고 어이없는 죽음이라면, 우리는 기억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행운이 늘 나와 함께 하지는 않으니까.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기억이란,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약속과 같은 것을 필요할 때까지 머리 속에 담아두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기억은 모든 인지적 활동의 기본적 근거이다. 어제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었는가부터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거나 목표를 수립하는 등의 어려운 과제에 이르기까지 기억이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기억능력이 없거나 이 능력에 장애가 있다면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치매가 그 사례이다. 치매가 한참 진행 중인 엄마를 만날 때 마다, 나는 곧 엄마의 기억에 없는 사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좋아도, 아파도 삶의 기록

 

 그런데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 걸까. 자주 쓰고, 유용한 것은 남는다. 그리고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어렸을 적 함께 자란 형제지간에 당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기억하는 것들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가 큰 언니를 예뻐해서 매번 새 옷을 사주고, 자신에게는 헌 옷만 줬다고 믿고, 그런 큰 언니는 어머니가 동생만 예뻐했다는 식의 기억 말이다. 기억을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 축적된 전형적인 도식(schema)를 가지고 있고, 그 도식으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기존 정보에 비춰 정보를 저장해서, 정보가 원래의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변형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기억은 세상을 보는 잣대이기도 하다. 또 하나 기억은 개인의 역사이다. 좋은 것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삶의 기록이다. 점점 나를 잊어가는 엄마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슬픈 건, 아마도 그녀의 기억 속에 내가 사라져 가고 나는 ‘그녀의 딸’이 아니라, 더는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녀라는 ‘관계’가 점점 사라져 간다.

 416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다음세대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피하고 지운다면 이런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의: 062-653-3634

조현미 <행복심리명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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