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캐릭터를 선물하다

먼저 한 장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뜨겁게 끌어안고 있다. 한데 다가가 보니 남자의 복부에 여자의 칼이 심어져 있다’. 이렇듯 오승욱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영화를 시작하면서 사랑과 상처가 한데 어우러진 이미지를 상상했다.
영화가 시작하면 형사인 정재곤(김남길)이 살인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살인자인 박준길(박성웅)은 애인인 김혜경(전도연)을 찾아가 자신이 황충남을 죽였다고 고백한다. 이내 박준길은 도주하고 정재곤은 이영준으로 이름을 바꿔서 김혜경에게 접근한다.
이렇게 살인범을 잡기 위해 살인자의 애인에게 위장 접근한다는 이야기는 익숙한 설정일 수 있다. 하지만 ‘무뢰한’은 살인범을 잡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인물들을 차갑게 응시하며 고독한 인간을 다루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이를 위해 감독은 ‘하드보일드’라는 형식을 차용한다. 그러니까 오승욱 감독은 일체의 감정과 도덕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지켜보는 것이다.
‘무뢰한’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찍이 헤밍웨이가 자신의 소설에서 구사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은, 불필요한 수식을 배제하는 건조한 문장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빙산을 볼 때 수면 위에 떠있는 8분의 1만 볼 수 있듯이, 헤밍웨이는 빙산의 8분의 1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겼던 것이다.
오승욱 감독 역시 헤밍웨이의 문체를 자신의 영화 속에 수용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고, 드러내지 않은 부분을 관객들이 상상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여 이 영화의 건조한 거리두기는 일관되게 유지된다. 감독이 이 형식을 고집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형사인 정재곤의 속마음을 관객들에게 쉽게 들키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뢰한’의 주안점은, 정재곤의 불가해한 마음에 궁금증을 갖도록 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재곤이 김혜경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분명하다 싶은데, 그의 진심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관객들은 분열하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재곤은 형사로서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현실원칙과 여인에게 마음이 끌리는 본능적 욕구 사이에서 정신의 부조화를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내면이 갈등하는 와중에 생활인으로서 현실원칙을 따르지만, 이미 자신의 마음을 훔쳐간 여자의 주변을 배회해야하는 사랑의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먹잇감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야수이기도 하지만, 가슴 한쪽에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재곤의 육체에 새겨진 칼자국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될 것도 같다. 그는 그동안 김혜경들을 만나며 몸에 난 흉터와 마음의 상처를 동시에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혜경이 정재곤의 몸에 난 상처들을 보며 말했던, “상처 위에 상처, 더러운 기억 위에 더러운 기억을 얹고서 사는 거지”라는 대사는 정재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정재곤이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총체적인 손상을 입고 자기분열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인물임이 확인되었다. 이쯤 되면 한국영화가 ‘정재곤’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2000)이후 15년 동안 칼을 갈았고, 관객들에게 ‘어디에도 없는’ 캐릭터를 선물한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