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두려워 함구하는, 정부를 불신

통치와 입법으로 검증받기 전에 한 인간의 성격과 심성과 판단력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누군가 도시 전체를 통치하면서 도시를 위해 최선의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두려워하여 함구한다면, 그런 자를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나쁜 자로 여기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중)
한 달 전 예약해두었던 강좌가 10여일 전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그 강좌에 참석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언론은 사망자 소식을 계속해서 알리고 있었고, 전염도 통제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부는 그다지 메르스에 대해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어떤 정보를 더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언론에 부화뇌동 하는 것이 좀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난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탑승해보니 평소와는 달리 손님이 눈에 띄게 적었다.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무언가 위험한 곳에 위험을 예측하지 못하고 가는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서울터미널에 도착하자 티브이에서 본 것처럼 사람들이 상당수 마스크를 하고 다녔다. 나는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의 불길한 느낌이 강화되며, 괜히 왔나 후회하기 시작했다.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당일 오후 바로 광주로 내려왔다. 나는 내려오는 버스에서부터 이미 심리적 공포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주변에서 기침을 하거나, 가래를 뱉는 사람들만 보아도 의심이 되고, 고개를 돌리며, 멀리 피하려고 하였다. 또한 내가 이미 걸린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의 체온을 면밀히 모니터링 하기까지 했다. 언론에서 메르스는 병원감염이며 비말(침)에 의해서 감염된다는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이미 잊혀져버렸다.
2003년 사스때와 다른 정치, 정부
진짜 공포는 광주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평소와 비슷한 피곤함이 느껴져도 왠지 메르스 때문이 아닐까 염려하고, 미열이 조금 느껴져도 메르스 때문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메르스 증상을 찾아보고, 서울에 다녀온 후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뉴스 저 뉴스 등 여러 뉴스를 비교해보며 새로운 정보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월드 워 Z’에서 사람들이 느꼈을 좀비에 대한 공포를 체험하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메르스가 좀비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좀비는 단지 외형적으로 무섭게 보이지만 어떻게 감염되는지 알 수 있는, 피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 대상인 반면에 메르스는 감염된 자가 누구인지, 그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나를 감염시킬지 모르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감염자일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가“ 갑자기 다가와 흔적 없이 병을 앓게 하는! 질병의 감염원인과 경로를 몰랐던 중세시대 흑사병 상황과 아주 다르지도 않은가 말이다.
이런 걱정은 점점 더 강화되어 혹시 내가 소중한 내 가족까지 감염시키는 것은 아닐까“ 내가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 나와 친교를 맺는 사람들에게마저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그날의 내 행동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심한 자책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고민을 가족에게 말하자 딸이 “아빠는 지식을 하나 얻으려다 목숨을 잃을 뻔 한거야!”라고 훈계를 했다. 딸의 훈계에 감명을 받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더욱 자책했다. 그리고 정부가 하는 말을 평소에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앞으로 더더욱 믿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십여 년 전(2003년) 사스가 발병했을 때를 회상해보았다. 그때도 사람들의 공포는 적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기관마다 세정제며, 소독시설이 설치가 되어있어서 방역이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큰 감염 없이 지나간 것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이번 메르스 사태는 국가의 문제로 일반화시킬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정치를 하는 사람들, 정부의 문제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 중독증’에 기인한 실상 왜곡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국민 안전처’를 만들어 이러한 재해나 사고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다지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고로 인한 국민의 불신이 큰 상황이기에 무언가 실효적인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일 년이 조금 지난 지금 ‘혹시나’하는 기대는 ‘역시나’하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잘하겠습니다, 바꿨습니다”라고 말만 떠든 것이다. 그 사이 말만하고 행동한 것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혼나기 싫어서 계속해서 거짓말을 만들어가는 ‘거짓말 중독증’에 가깝다. 거짓말 중독증의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진실이었고, 거짓이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짓말이 밝혀져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선의로 그랬다고 강변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안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매우 해맑은 모습으로 쇼핑몰과 헌혈의 집에 등장하였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의 미소가 거짓말 증독증에 걸린 아이의 미소와 너무나 똑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안티고네에 나온 말처럼 최소한 함구하지 않고 솔직하며, 최선의 정책은 아니지만 차선의 정책이라도 실천하는 정부가 오기까지 나는 아무래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을 실천해야 할 듯하다. 물론 그러한 처절한 노력조차 사회시스템이 무너지는 순간 허망하게 무너질 것을 알지만 말이다.
정의석<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