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미웠다, 좋았다, 악썼다, 후회했다…

얼마 전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갔다. 네 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질문을 했다. 아이한테 화를 못 참는다는 것이다. 화내지 말아야지 해도 갑자기 화가 나면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자기 어렸을 때 엄마가 화를 많이 내고 심하게 때렸다면서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남아서 그런 것 같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법륜 스님은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렵지만 방법이 있긴 있다”고 하면서 “전파상에 가서 전기 충격기를 하나 사서 화내려고 할 때 그걸로 지지라”고 했다. 반복하다 보면 그 충격이 무서워 화가 나는 순간 몸이 움츠러들면서 감정을 자제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부작용’으로 실신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농담을 하면서 그만큼 대를 이어 내려온 화를 조절하는 게 어렵다고 설명하셨다.
엄마 마음 속 ‘상처받은 내면아이’
엄마로부터 받은 성격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으면 스님이 그런 무지막지한 방법을 제시하였을까?
비슷한 내용으로 상담하러 온 젊은 엄마가 생각났다. 그 엄마도 아이에게 화를 자주 낸다면서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걱정된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 엄마가 소리 치고 구박했다면서 자기 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내면 아이’라는 단어를 듣고 속으로 조금 놀랐다. 보통 전문 상담사들이 쓰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대중화되면서 일반인들도 이런 단어에 친숙해진 것 같다.
많은 육아 책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엄마의 마음속에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있는데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엄마의 안 좋은 성격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는 것도 병이라고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멀쩡한 ‘보통 엄마’들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갖고 있는 ‘문제 엄마’ 또는 ‘병적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소리 치고 화내고 애 좀 미워하면 ‘문제 엄마’가 되고 ‘치유 받아야 할 엄마’가 된다.
사실 그건 아니다. 보통 엄마들은 아이랑 미웠다 좋았다 악썼다 후회했다 하면서 살아간다. 진짜 병든 엄마는 겉으로 보기에도 불안하고 우울하고 판단력 떨어져 육아를 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마들이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을 상처받은 엄마, 문제 엄마, 병든 엄마로 만들면 안 된다.
‘나는 괜찮은 엄마…꼬라지대로 키워라’
자기 자신을 문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 성장에 더 안 좋다. 스스로 치유 받아야 할 문제 엄마로 생각한다면 그 엄마 품에 있는 자녀가 어찌 괜찮은 아이로 자랄까. 상처 없는 사람 없다. 어린 시절 상처가 있더라도 그 삶을 견디고 극복하고 나름 잘 살아왔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나는 괜찮은 엄마다’ 이렇게 당당하게 생각하자. 화 좀 내고 미워하고 때로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다 그렇게 키운다. 심리학책 한두 권 읽고 괜히 고상한 척, 우아한 척 하다보면 그게 가식이 되어 아이 정서에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차라리 내 꼬라지대로 키우는 게 낫다. 화내고 짜증내고 소리치고 다시 후회하고 이뻐하고 기뻐하는 거…그게 아이와 진짜 감정을 주고받으며 잘 키우는 거다.
내 성격을 아이 육아와 연결시키지 말자. 그런다고 성격 변하는 것도 아니고 괜히 자책과 불안만 남는다. 상처가 있더라도, 성격이 조금 문제가 있더라도 움츠러들지 말자. 스스로를 ‘문제 엄마’로 만들어 고민하기보다 ‘좋은 엄마’라 믿고 편안하게 사는 게 훨씬 낫다.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사이코 드라마 수련감독 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