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을 헤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리는 쌍용차 해고자와 용산의 세입자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무소불위의 국가폭력이 자본과 국익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밀양의 주민들 역시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잡아먹힌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밀양, 가난하지만 정겨운 이웃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알고 보니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원자력 발전소(신고리3,4호)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함이다.
이에 밀양의 주민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의 땅에 송전탑을 세워 전기를 많이 쓰는 지역으로 보내는 것도 그렇고, 마을 뒷산과 논밭으로 흐르는 765KV(킬로볼트)의 초고압 전류가 건강을 위협하는 것도 불안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국가는, 다수의 이익을 앞세워 힘없는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망가뜨리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의 막무가내 식 행정을 가만히 두고 볼 국민은 어디에도 없다.
이때부터 송전탑이 세워지는 밀양의 주민들은 삶의 근거지가 찢기고 일상이 파괴되는 것을 겪으며, 10년 넘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바로 국가라는 괴물과 치른 전쟁이다. 이 전쟁을 2012년 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3년여 간을 기록한 이는 박배일 감독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산 중턱의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 새벽 산을 오르는 두 할매와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전의를 불태우는 결기보다는 사태에 직면하여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가 묻어난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김영자와 박은숙의 일상과 인터뷰를 보여주는데, 이내 이들이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농부들임이 확인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논밭을 일구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밀양아리랑’은 여성들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이는 생활 근거지를 짓밟으려는 거대한 폭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당찬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국가는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평생을 함께 했던 이웃들을 갈라놓기도 한다. 이 영화 역시 그 대목을 놓치지 않는다. 보상금 수령과 관련해 서로 입장이 갈리면서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원수가 되는 것을 목도하기 때문이다.
또한 ‘밀양아리랑’은, 언론이 국가 폭력의 공범임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 속의 언론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뉴스를 내보내고, 밀양사태의 근본 원인보다 물리적 충돌만을 중계하듯 보도했음을 고발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때도 확인된 바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로 국내의 언론은 공중파나 보수언론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이 영화 역시 주목하는 것이다.
‘밀양아리랑’의 카메라가, 대상에 접근함에 있어서 윤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자 했던 것도 주목을 요한다. 예컨대 2014년 6월 행정대집행의 날에 벌어진 대규모의 경찰과 주민들이 강하게 충돌하는 상황을 담아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때의 연출은 폭력의 아수라장에서 파생된 악다구니의 사운드를, 할매들이 밥을 먹는 장면위에 덧입히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완성된 영화를 보게 될 주민들에게 그때의 아픈 기억을 안겨주지 않으려는 고민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감독은, 폭력의 사운드와 식사 이미지를 중첩시키는 연출을 통해 국가라는 괴물이 공동체를 파괴시켰음을 명확히 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밀양아리랑’은 주류언론이 외면했던 밀양의 진실을 차분한 어조로 또박또박 알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