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안 회산방죽이 이 계절 연꽃들 만발이다. 회산지 전경(맨위)아래 가시연꽃, 어리연, 빅토리아연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련의 향연이 맨 아래 사진이다.
-이 계절, 무안 백련지는 연꽃의 향연

영산강의 주변은 강물의 범람으로 진한 뻘밭이 형성되었다. 들고나는 속성이이 물길이지만 어느 것은 그저 고립되어 습지를 형성해야 하는 물길이기도 했다. 그 물속에는 다양한 식생들이 생존을 갈구해야 했다. 가물치, 장어, 붕어, 송사리 같은 어류도 있었지만, 습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어리연, 가시연, 연꽃, 순채, 왜개연, 마름, 물달개비, 수련 같은 종류도 있었다.

그들은 자연의 숙명안에서 어렵고도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물이 마르면 꽃을 먼저 터트려 씨앗을 뻘속 깊이 보관하고, 여건이 좋으면 느리게 한껏 자태를 뽐내며 그렇게 영산강의 아침과 밤을 지켜왔다.

그러다 민물과 썰물이 오가는 영산강에 하구언이 생기면서 이렇듯 자연형으로 생겨난 저습지는 오간데 없게 되었다. 특정량의 물이 조정되어 흐르는 강, 바닷물이 밀어 올렸던 뭍 생명들도 하구언의 쇠문에 부딛혀 강물과 만날 생각을 접어야 했다. 강물은 야위어 갔다. 장어는 더 오르지 못했고, 홍어의 뱃길도 끊겼다. 흑산도 사람의 꿈이 영산포에 집을 사는 것이었던 시대는 종료되었다.

과연 그것이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사리 답하지 못할 시대로 우리는 흘러왔다.

가로막힌 물길 사이로 이제는 수로와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 농부가 심은 백련 12송이의 기적

무안 일로의 회산 백련지는 그런 영산강의 최 정점에 해당되는 지역에 위치한다.

윗 머리에는 꿈여울 몽탄이 있다. 왕건이 견훤의 추적에 쫓겨 강물에 막혀 퇴로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을 꿈속에서 한 선인이 나타나 일러주었다는 썰물의 길, 이 퇴로가 왕건이 다시 힘을 다지게 된 커다란 동기였다고 전해온다. 곧추 내려오던 강물이 길게 몸집을 늘어 뜨리면서 태극의 문양으로 돌아가는 말미에 모래도 쌓이면서 그 물에 강물이 스스로의 몸을 세척했다고 하는 땅이 그곳이다.

느러지 전망대가 있고, 표해록을 썼던 금남공 최부의 묘소가 있는 땅이 바로 늘어지(느러지)라고 하는 지역이다. 그 역사적인 땅 아랫녁에 회산지는 자리한다.

저수지의 축조는 일제 강점기라고 전해진다. 그곳에 1955년 정수동이라는 어르신이 백련 12개를 심으면서 연꽃방죽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분 또한 선몽을 했다고 한다. 연을 심던 날 꿈에 학이 나는 꿈을 꾸었다고 하니, 지금 회산방죽을 나는 백로와 왜가리는 아마 그분의 꿈속에 현몽했던 후손쯤 될 것으로 보인다.

애지중지 가꿔준 연은 1981년 영산강 하구언이 완공되며, 저수지에서 가져가던 물길을 수로가 대신하게 되자 토층과 부엽물이 쌓이면서 연못으로 변해가고, 그다지 깊지 않고 도톰한 뻘층을 타고 10만 평에 달하는 연못을 점령했다.

널따란 연잎과 두터운 꽃대로 하늘을 향해 쏘아올린 진흙의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풍경은 그렇게 한 농부의 손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 백련지의 연꽃축제

1997년 무안군은 이곳의 장관을 지역의 향토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안연꽃축제를 구상하고 실천했다. 알음 알음으로 겨우 몇 명이 알던 곳이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관심 지역이 된 것이 그때 부터였다.

그 축제 또한 몇 번의 부침을 겪었다. 연꽃이 불가의 상징이라는 것으로 인해 타 종교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 축제를 엉거주춤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살펴보면 화순의 운주사에서 이뤄지는 축제도 이런 시각으로 군을 대표하는 축제에서 면민들의 축제로 위치지워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연꽃축제는 지속되어 이번에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회산지 일원에서 펼쳐진다.

장윤정이니, 진성이니, 조항조니 하는 트롯 가수들이 초대되기도 하고, 은혼식을 올리기도 하면서 무병장수와 해로를 축원하는 마당이 중심을 이루고, 수변공간 답게 한편에서는 물놀이 중심의 놀이터가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 백련지의 백미는 무엇보다 바로 연꽃이다.

푸른 창공을 가로지를 하얀 연꽃이 10만 평의 공간에서 한꺼번에 터뜨린다고 생각만 해도 벅차 오른다. 백련지의 축제는 그런 마당이다. 자연스러움에 최소한의 인공을 가해 이 연꽃의 반응을 불러오는 것이다.
축제의 장을 찾는 이들은 그냥 즐기고 오는 것이 능사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주체는 피가 마른다.

8월 11일에 쏟아진 장대비가 남도의 기온을 급격스럽게 하강 시켰다. 땡볕에 타올랐던 모든 사물들이 춤을 출 때 정작 백련지를 관리하는 주체들은 D-1일을 두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할 수 밖에 없었다.

수생식물의 가장 큰 특징은 물속의 환경에 민감하다. 양분이야 축적된 미네랄을 담은 뻘흙이고, 연의 뿌리가 매듭을 치는 지점이 물속으로 1M 정도 지점이니 그리 영향을 받을 바는 아니다. 한데, 물속 땅으로부터 물의 표면까지 줄기의 거리는 수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거리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2곒 정도까지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 더더욱 예민한 부분, 바로 수면으로부터 나와서 또 1m 정도를 솟아올라 꽃을 피우는 지점이다. 물의 온도야 수량을 통해 일정부분 조정할 수 있지만, 물밖의 온도는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꽃피울 절정을 기디리던 연들이 어리둥절할 날씨가 현장을 가던 D-1일 오전내내 지속되니 나그네 또한 안타까웠다. 하지만 점심 무렵부터 강한 햇볕이 연못을 관통했다.

비로소 백련지 관리를 담당하는 황이대 계장의 얼굴에도 주름이 펴진 것을 보았다. 이것 저것 빈틈없이 준비하는 그들의 힘으로 축제는 화사하고 안전하게 열리는 것이라 믿음을 주며 다시 백련지를 살핀다.

▣ 백련지의 수생식물
밤에 잠을 자는 1004그루의 수련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공간이 있었다. 그 옆에는 밤에 꽃피우는 수련 빅토리아 연이 20여주가 있었고, 귀하디 귀한 멸종위기식물인 가시연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백련의 향연에서 시작하여 이곳은 점진적으로 수생식물의 전시장으로 변모중이었다. 한데, 우리 토종의 어리연이나 노란 어리연 등은 그곳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한참 꽃대를 올릴 왜개연, 물달개비, 자라풀 같은 종류도 이곳에서 보기 어려웠다.

데크로 설치된 길을 따라가야 나타날 것 같아 3Km 에 달하는 방죽의 가장자리를 살피고 다녔다. 바람의 방향으로 따라오는 연꽃의 향기는 그야말로 몽환 그 자체였다. 순결과 청순함을 상징하는 연꽃의 꽃말이 그저 인사치레로 보여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지치면 꽃대를 올리고 있는 연꽃을 조심스럽게 코 끝으로 당겨 그 향에 몸을 충전하고 걷고 찾아보고 걷다가 도달한 곳에는 세계 각국의 연꽃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 대표되는 연꽃을 보며 비록 설명문을 붙어있지 않지만 상상을 해 본다. 그 민족의 특성이나 지정학적 위치 등을 가늠하며 왜 그 나라 연꽃이 저리 예쁘게 존재한지를 가늠해 보는 것도 재미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곳에는 수생식물생태관이 있었다. 각국의 다양한 수련을 만나는 곳으로 사진을 찍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의 공간이었고, 생태에 관심있는 이들은 깊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을 나서면 옆으로는 연꽃문양의 건물에 전시관과 휴게시설, 연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이 있다.

잠시 그곳에서 더위를 식히고 야외로 나와 나머지 산책로를 걷는다. 물놀이 시설, 왕실의 궁원을 본뜬 정원, 회랑으로 구성된 전시장 등에서 수련들이 지천으로 피어났다. 축제를 맞이하여 준비한 물꽃들의 잔치는 그야말로 풍성해 보였다.

▣ 백련지 돌아보기

이런 겉모습만으로 여정을 마감짓기에는 아쉬움이 커 보트장으로 찾아갔다. 4인승의 노젓는 배는 10,000원이었다. 혼자 배를 몰며 연꽃의 지면을 더듬어 보았다. 물의 파장이 번져가는 곳에 눈을 멈추면 거기 식물들이 있었다.

다채롭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식물들과 주고받는 눈길, 물 아래로 내려오는 연꽃의 향기, 소금쟁이들의 종종거림, 물닭의 육추장면 등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래도 이곳에서 배를 타는 이가 오직 나그네 혼자라서 이런 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 눈을 끄고 있자니 이문재 시인의 “물의 결가부좌”라는 시가 읊조려지면서, 오만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물이 뽀그르르 거품 올리는 소리, 연꽃이 꽃받침을 버리는 소리, 커다란 연잎에 고인 물을 비우는 소리, 가물치가 작은 붕어를 쫓는 소리, 이쪽에서 저쪽 잎으로 자리를 옮기는 청개구리의 폴짝거리는 소리, 거미그물에 걸린 잠자리의 혼신을 다하는 날개짓까지, 정말 눈과 귀와 코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백련지와의 만남은 즐겁게 저물어가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한번 저 습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라가야 땅인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발견한 700년된 연씨를 발아하여 명명한 “아라홍련”이나, 2000년이나 된 일본의 지하유적에서 발견한 연꽃 씨앗이 발아한 “오오가 연꽃”을 보다라도 이제 습지는 단순한 늪지가 아니라 생태계의 보물창고이며, 씨앗창고이고, 종 다양성의 마지막 보루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길이었다.

인고의 세월을 어머니처럼 품어주는 습지, 그 세월을 고스란히 이겨내며 생명의 싹을 틔어 올릴 수 있는 연꽃의 위대함에 눈과 귀를 열어보는 여행은 어떨까. 굳이 축제의 현장이 아니더라도.
글 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