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개학이 눈앞이다. 매번 개학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다. “선생님 133일 남았어요, 다음 방학까지요!” 개학 후 바뀐 생활리듬에 시들시들하던 녀석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반면 개학 날 아이를 등교시키고 만세를 불렀다는 어머님들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세끼 밥 챙겨주는 것은 물론 간식까지 챙겨주어야 하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집안은 쉬 더러워지고 엄마들로서는 방학이 힘든 기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건 평소엔 잘 인지하지 못했던 아이의 빈둥거림을 보는 일일 것이다. 물론 부모가 다 일을 하거나 하면 덜하겠지만 그래도 왠지 학원 안가고 남는 시간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방학, 내 주변을 리셋할 수 있는 시간
사실 학기 중에는 아이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단 아이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가 밤에는 학원에 가니 서로 대면하는 시간도 짧고, 그 잠깐 만나는 시간에는 표면적인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사정은 더하다. 야간자율학습에 방학 중에도 1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학교에 나가다 보니 부모와 대면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그런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아이들도 그런 것 같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한다. 아이들도 학원에 다녀오거나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오면 왠지 부모에게 떳떳(?)해진다고 한다. 많은 학부모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으니까’이다. 그런데 과연 아이들은 야간자율 학습 때 공부를 하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하는 아이들은 하고 안하는 아이들은 안하는 것 같다.
방학을 맞아 고등학교에 진학한 제자들을 만났다. 말썽 피우던 아이, 따돌림 당하던 아이, 공부 잘하던 아이 등등.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보다 세세한 이야기가 많으나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해 한정적인 내용만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던 아이는 1학기 내내 방황을 했다고 했다. 그래도 1등급을 했다고 ㅠㅠ. 그런데 그 아이가 놀란 것은 그렇게 공부를 안 해도 그 성적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간자율 학습 때 아이들이 정말 공부를 안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정말 열심히 수학 공부를 했는데 모의고사 수학 성적이 형편없게 나왔다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오죽하면 수학선생님이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 아이에게 “하지만 넌 결국 성공할거야”라고 얘기해 주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특성화 고등학교를 선택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신경 쓰지 않는 일반교과를 꿋꿋이 혼자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저녁 도서관에 가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학교 부적응이 심했던 아이들은 대부분 학력이 좋지 않은 학교에 진학학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서 선생님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 후 학교에 대한 만족도와 학업에 대한 의지가 높아진 경우가 많다. 용의 꼬리가 될 것인가? 뱀의 머리가 될 것인가?
학교가 학생들께 주는 기회 세 번
중학교 때 사회기술 부족으로 따돌림을 당하던 한 아이의 소식은 놀라웠다. 고등학교에 가서 너무 활발하게 지낸다는 소식이었다. 새로운 친구, 새로운 환경이 아이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이다.
학교 적응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전학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전학가면 뭐가 좋으냐고 물으면 대게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요, 나에 과거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방학이라는 기간은 기존의 인간관계, 기존의 나의 이미지와의 단절 기간이다. 쉽게 말해 나와 내 주변을 어느 정도 리셋 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새 학기는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인생에는 기회가 3번 있다.’ 뭐 그런 말들이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진학하는 시기, 학년을 올라가는 시기,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는 시기가 매번 기회인 것이다.
학생들이여! 기쁘게 개학을 맞이하시길! 지금 새로운 기회가 시작되고 있다.
김우영 <나주중학교 Wee클래스 상담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