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독재정권 회귀한듯 집단적 광기에 국민은 혼란

TV에서 자주 시청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드라마·먹방·뉴스이다. 뉴스를 안 보는 이유는 이렇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치적인 면은 대한뉴스와 차이가 없고, 문화적인 면은 그 옛날 ‘선데이 서울’과 같은 주간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타 예능프로그램은 사람들의 기억에 잊혀진 퇴물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람들을 연금술마냥 자극적인 소재로 부활시키고 있다. 그 비싼 전파자원을 이렇게 무용한 곳에 써도 되는가 하는 한탄스러움마저 든다.
최근 드라마에 대한 인기는 아침드라마, 역사드라마, 주말드라마 중심에서 종편과 케이블 채널이 주로 만드는 ‘미생’, ‘송곳’ 그리고 ‘응답하라 1988’ 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중파의 획일성에 종편의 무차별적 생존력이 파고든 결과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중 최근 ‘응답하라 1988’이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는 현재 청소년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20·30년 전의 사회적 경험을 다루고 있지만 청소년들에게까지 인기가 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청소년들은 그때의 문화경험이 부재하기에 향수가 아닌 자기 또래의 청소년들의 우정과 사랑이라는 스토리에 더 끌리는 듯하다. 40·50대의 성인들은 힘든 현실에서 잊어버렸던 ‘Gold star’, ‘번개탄과 연탄’, ‘이선희와 별밤’ 등등 과거의 사소한 기억들이 우리의 삶을 채워왔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면서, 자신의 삶이 불안과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과 희망 등이 잔존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정치적 이념 다른 세력에 적대감 노골화
‘응답하라 1988’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드라마가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과거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 사라진 듯 묘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즉 시간적 착오감-지금이 몇 년이지?-이 발생함을 느끼게 된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다수의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군사력에 의존한 정부였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합법적인 공권력의 한계를 벗어나곤 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15년간의 민주화가 진전된 이후 현재 다시 국민들에게 과거 독재시절이 재현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자주 언급한 주장을 국민들이 빌려서 말하자면 민주화에 대한 ‘잃어버린 15년’ 아니 ‘잃어버린 25년’이라 할 수 있겠다.
국민들은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비정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정치인,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까, 합리성을 무시하고 ‘TK’라는 지역적 정체성에 의존하거나, 국가라는 이름을 앞세우며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세력에게마저 맹종하는 사람들, 좌파나 빨갱이가 현재에도 ‘IS’와 동일한 테러조직인 마냥 국가적 위해세력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 정치적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형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을 갖추고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무관심을 어떻게 관심과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과거 수많은 국내외 독재정권에서 이루어졌던 집단적 광기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등등. 우리는 현 시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찾아야 할 책임이 주어진 듯하다.
심리학도로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바라보면 ‘광기’ 혹은 ‘정신병’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정신병’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개인적 차원의 정신병은 그 고통과 피해가 자신과 그 주변의 일부 사람들에게 제한되며, 치료적 개입도 상대적으로 그 효과를 발휘하기에 용이하다. 그런데 집단적 차원의 정신병은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 상호지지와 연합에 의해서 강화되고, 외집단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갖는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적대감’이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권시절 자주 언급한 ‘잃어버린 10년’은 자신들이 누려야할 권력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강하게 담겨있는 표현이다. 그들은 피해망상을 지닌 환자가 주변 사람을 가상의 적으로 여기듯, 진보적 정권을 지지했던 국민을 적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상대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밟아야 할 ‘적’ 정도로 여긴다. 그러한 적대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려 하는데, 이때 논리와 언어가 파괴되고, 혼돈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경계를 파괴하며, 자신들의 비정상성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노동악법처럼 여러 가지 악법을 만들어내면서 국민과 노동자를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협하면서 국회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압박한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기억을 복원해야
현 정부와 여당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권력을 영속화하기 위해 행정·입법·사법부를 통제하고, 언론과 교육 등 국민들의 정신을 통제하려는 매트릭스가 되려고 하는 일인데, 이는 자기의 능력에 대한 과대망상이 만들어낸 현상이며, 이러한 정신병은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무가치한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규정할 때 들었던 첫번째가 지나치게 우월함을 추구하려다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타인을 지배하거나, 착취하는 등 무가치한 일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 8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켜야겠다.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민주주의’가 되어야겠다.
정의석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