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울진을 향해 떠나다<1>

불현 듯 멀리 떠나고 싶었다.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을 때 그럴 때 방법은 지도를 들척이는 것이거나 시집을 뒤적거리는 것이다. 먼저 붙잡은 시집에 이병률의 ‘스미다’라는 시가 스친다. <새벽이 되어 지도를 들추다가/울진이라는 지명에 울컥하여 차를 몬다/울진에 도착하니 밥 냄새와 나란히 해가 뜨고/나무가 울창하여 울진이 됐다는 어부의 말에/참 이름도 잘 지었구나 싶어 또 울컥/해변 식당에서 아침밥을 시켜 먹으며/찌개냄비에서 생선뼈를 건져내다 또다시/왈칵 눈물이 치솟는 것은 무슨 설움 때문일까- 중략> 그래 울진이다. 한데 지도를 꺼내보면서 붙잡는 것들이 많다. 오로지 울진만 다녀오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울진은 여러 번의 방문 경험이 있는데, 바로 지척의 봉화군은 딱 한번 눈 내릴 때 다녀온 것 말고는 없다. 울진 단독, 울진과 봉화 그 사이를 망설이다가 울진에서도 못 가본 곳을 떠올리니 금강송 소나무 숲이 보인다. 소광리 소나무숲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맞아 거기를 클라이막스로 정하자 그리 마음을 굳히니 마음속의 봉화가 사라진다. 명징하게 죽변항에서 1박하고 다음날 아침 소나무 숲에 들어가고 오후에 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그런데 소광리 소나무 숲을 검색해 보니 숲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4개 코스 당 80명 이상은 출입을 금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너무나 소중한 숲이기에 출입제한을 통해 보존활동을 펼치는 것이자 한편으로 숲의 가치를 더욱 고양시키며 희소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읽혀졌다.
지금 전국의 숲이 재선충과 싸우고 있는 현상을 보면 금방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빠졌다. 12월부터 1일부터 4월30일까지는 산불 방지 및 산양의 활동 증진을 위해 입산이 금지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생명의 숲 활동을 전개하셨던 지인에게 전화를 여쭈었다. 취재와 더불어 그 숲의 생태관광 현황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을 드리니 울진의 활동가 한 분을 소개시켜 주신다. 전화를 드리니 본인이 책임지고 함께 동행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특권이 아니라 저 훌륭한 숲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열망은 당일로 그곳이 고향인 군대 후배에게 전화를 걸게 만들었다. 후배에게 죽변항에 바다에 기둥을 담그고 있는 숙소를 예약해 달라 부탁과 대게가 철이라고 하니 좋은 식당도 예약을 부탁했다.
설레임 속에 떠난 울진 길
지난 토요일 광주는 오후부터 며칠간 눈이 내린다고 하는데 4명의 일행은 새로 확장된 달빛고속도로(정부는 광대고속도로라고 칭함)에 있었다. 빨라진 대구까지의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이면 당도할 정도로 당겨져 있었고, 고지대에 매달린 도로만 결빙이 되었을 뿐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반면에 이 빨라진 도로는 주변에 눈길을 주거나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여행길이라면 때론 주변경관에 빠져 해찰도 하고 그래야하는 법인데, 우리들의 행로는 오로지 바다를 향해 달렸다. 포항을 거쳐 강구에 이르러 쉼을 갖고 국도 7호선의 동해안을 만끽하며 올랐다. 영덕에서 축산항에 이르자 불현 듯 그리로 새고 싶은 생각이 인다. 두해 전 겨울 그곳의 한 대게를 잡는 선주집에서 온 배가 가득하도록 게를 먹었던 기억이 선연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기도 하고 날은 금세 어두워질 것이라서 모른 체하고 맥주거품처럼 부셔지는 파도만 바라보았다. 여행사 시절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후포도 월송정도 모두 지나치고 드디어 죽변항에 도착했다. 오후 6시, 광주에서 떠난 시간이 오후 1시 30분이었으니 4시간 30분 만에 목표지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해는 이미 뉘엿거리고 합류한 후배와 대게집으로 갔다. 큰 대게는 마리당 3만 원이고 작은 것은 2만 원인데 작은 것이 비교적 살이 들었고 큰 것은 이제 속살을 찌우는 중이어서 설 무렵에 가장 포동하다고 주방에서 일러준다. 대게의 옆에 있는 홍게는 지금이 가장 실한 철인데 마리당 3만 원을 부른다. 주변의 얼굴을 보니 대게를 먹으러 왔지 홍게는 아니다라는 표정 역력하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모두들 가위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말씨는 서울쪽에 해당되었다. 울진의 경제를 대게가 책임지는 것 같았다. 4년 만에 만난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농대를 나와 서울의 유수한 기업에 있다 떼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온 그에게 울진의 살림살이를 들어 보았다.
농사에 천착하지 않는 삶
울진사람들은 농사에는 별로 천착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암온천, 왕피천, 불영계곡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지질이 준 관광산업의 특수도 있고, 무엇보다 지금 먹고 있는 대게가 울진 경제를 튼실하게 만들며 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험하다고 한다. 바로 아래쪽 영덕과 대게를 놓고 겨루기에서 지명도 면에서 한수 패한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강구항을 중심으로 서울쪽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울진 스타일의 횟집 가지고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하여튼 그럼에도 울진에서는 대게의 풍어가 가져오는 수입은 매우 지대하다는 점이었고, 또 하나의 로또와 같은 존재는 울진의 울울한 송림이 키운 송이버섯이었다. 작년의 경우는 너무 가물어서 습한 기온을 좋아하는 송이가 거의 나지 않았지만 내내 가을이면 송이 풍년이었다고 한다. 산을 가진 이에게는 이 보다 더 큰 금맥이 어디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송이와 대게는 울진 사람에게는 자연이 준 값진 선물이었다. 거기에 울진은 원자력 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마치 영광과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영광원자력 발전소는 영광의 흥농에 있다. 한데 영광원자력발전소라고 명명되는 순간 영광 전체가 원자력 발전소인 뉘앙스를 풍긴다. 울진도 마찬가지다. 삼척과 지척에 있는 울진원자력발전소가 울진 전체의 이미지를 압도하게 되는 경우와 같다. 그곳 원자력발전소의 이런 저런 일을 통해 지역민들이 한시적인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이의 수입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결국 이런 저런 수익의 구조가 지역민들이 농업에 대한 애정을 거두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다소 아쉬움이 일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듯싶어졌다. 무언가 잃은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듯이 말이다. 대게에 덤으로 따라온 홍게까지 맛있게 먹고 파도소리가 방안까지 스미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금강송을 만나다
아침 기온이 급강하했다. 영하 13도 정도다. 해변에서 일출을 보아야 하는데 방안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다. 7시25분 동해의 장엄한 일출을 너무나 도도하게 방안에서 맞이했다. 심히 아름다웠으나 지난밤의 과음이 속을 불우하게 했다. 후배가 권장한대로 물곰탕을 먹었다. 그리고 약속한 10시 울진의 엑스포 공원에서 금강송 소나무 숲길을 찾아갔다. 한 시간에 걸쳐 불영계곡을 따라 가다 접어든 소나무 숲은 인기척 하나 없었다. 아래쪽은 검은 색에 거북이 등가죽을 하고 위쪽은 쭉쭉 뻗은 가운데 붉은 색을 지닌 소나무는 그야말로 훤칠했다. 4개의 탐방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500살 먹은 소나무와 미인송을 만나고 돌아오기로 했다. 행여 운이 좋아 산양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망원렌즈까지 챙겨들고 숲에 들었다. 역시 생태관광의 시범지역답게 행위의 제한과 그 지역민의 집에서 민박하고 지역민이 만들어준 음식을 통해 관광의 효과가 지역사회에 스미게 하는 책임여행의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다. 소나무의 숲은 아름다웠다. 봉산정책이라고 해서 조선시대 궁궐에서 활용할 목재를 지키고 가꾸기 위한 무단 벌채의 금지와 출입금지가 천만평의 숲에 5000만 그루의 소나무 군락이 아름답게 자라도록 하였던 시초였다. 이 근동의 소나무를 다 베어 나르며 그것을 춘양목이라고 했던 일제강점기도 지리적으로 너무나 깊숙한 산골짜기인 이곳까지는 범접하지 못했고, 그 창궐하던 솔잎혹파리나 재선충과 다행스럽게 여기에 들어서지 않았다.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이곳을 이 나라에서 가장 소중하게 지켜야할 숲으로 확정하고 보존과 생태적 활용을 위해 최선을 경주하고 있었다. 탐방로를 개설하고 근동의 주민과 협의를 거치는 데는 근 6년여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설계하는데 3년 그리고 주민에게 행위제한이나 경작의 불편함을 주는 대신에 생태관광을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드는 데 협의 지점을 찾아나기기 위한 분투는 이 지역의 환경활동가들의 몫이고 주민의 이해였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 말씀과 말씀 사이에 스치는 금강송의 이야기는 다음호에도 이어가도록 하겠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