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라는 껍데기

아빠와 딸의 가슴 아픈 이야기로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7번방의 선물’이다. 바보 아빠와 귀여운 딸의 ‘감옥상봉기’는 웃기다가 울리는 전략으로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7번방의 선물’은 가족드라마가 크게 흥행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로봇, 소리’ 역시 아빠와 딸의 슬픈 사연을 영화의 중심에 놓으며 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했다. 영화의 도입부부터 이는 분명하다. 해관(이성민)이 길거리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딸을 찾고 있다. 딸이 실종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조바심이 날 무렵 어린 딸이 아빠의 눈에 띈다. 그리고 영화는 몽타주 시퀀스를 활용하여 아빠가 직장인으로 늙어가고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와 딸의 19년을 효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10년 후의 아빠는, 실종된 딸을 찾아 10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수소문했음을 알려준다. 딸을 찾아 10년을 떠돌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봇, 소리’는 해관에게 인공위성 로봇인 ‘S19호’를 선물한다. 흥미롭게도 ‘S19호’는 세상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해관은 ‘소리’라고 이름붙인 이 로봇의 도움을 받아 딸의 행적을 추적하게 된다.
그러니까 ‘로봇, 소리’는 가족드라마와 SF의 결합을 시도하며 나름 참신한 기획의 영화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엄밀하게 말하면 SF영화의 껍데기만 가지고 왔을 뿐 SF영화라고 하기에는 멋쩍다. 위성로봇인 소리는 해관을 돕는 기능에 머무르며, 미래 비전에 대한 인간의 관념과 인류의 불확실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형상화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SF영화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전개되는 이야기 역시 정통 SF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S19호’는 온갖 소리정보를 저장하고 있기에 미국 일당들에게 쫓기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이 영화는 왁자지껄의 추적소동극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쫓기는 와중에 해관과 소리는 10년 전에 실종된 유주(채수빈)의 행적을 더듬어간다. 이로 인해 해관은 딸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 둘 알게 된다. 딸이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완고한 자신의 태도가 딸에게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부모 자식 간의 소통에 대해서 한번 쯤 생각해 볼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막바지에 무리수를 두며 자멸한다. 그것은 생각 없이 역사를 호출한 것에서 기인한다. 10년 전 해관과 유주는 격하게 언쟁한 후에 헤어지게 되는데, 이때 이후 유주와 연락이 두절된 것은,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 유주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었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은, 2003년 2월18일. 대구 중앙로 역에서 50대 남자의 방화로 192명이 죽고, 148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사망자 중 6명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참사다. 감독은 바로 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명 중 한 명을 해관의 딸로 설정하며 이야기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뭇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과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을 접목하며 슬픔의 크기를 확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이러한 선택은 깊은 고민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참사의 실상을 편의상 빌려 왔다는 혐의를 준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유주의 죽음이 굳이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어야 할 어떤 이유도 영화가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를 입증한다.
결국 ‘로봇, 소리’는, ‘S19호’를 SF영화의 철학과는 무관하게 편리한 용도로 쓰고 있듯이, 아물지 않은 역사 역시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목적으로 활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대영 <영화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