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 터무니를 찾아서]신화 찾아 가는 가야산

▲ 만물상의 바위군.

 기나긴 휴일이 시작되었지만 일의 수순이 보이지 않는다. 새롭게 펼친 일들의 사이에서 가장 힘겨운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다. 신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인간을 통해 해법을 찾으려고 이리 복잡다단한 삶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싶다. 지끈한 머리를 감싸고 설 명절을 보낸다. 긴 명절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정겨운 가족과의 만남의 뒤안에 남은 이틀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 슬며시 산행을 생각한다. 그런데 산 이야기를 내내 연재하는 것에 식상하다는 독자의견을 받았으니 멈칫해진다. 하지만 달리 대안이 없다. 변산의 바람꽃을 보러가서 변산 이야기를 하자니 벌써 두 번이나 그곳 이야기를 했던 터이고, 최근에 폭설까지 내려 바람꽃이 피었다는 보장이 서지 않으니 그래 새로 뚫린 광대고속도로를 타자라는 생각이 인다. 며칠 전 선배로부터 가야산에 한번 가볼까 라는 제안도 있었다. 사실, 지리상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은데 우리 정서상의 경상도와의 거리는 너무 멀리 와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멀지 않은 곳에 가봐야 할 곳 투성이다. 우선 남원의 광한루 말고도 운봉지역의 장승도 있고, 수분령과 논개의 사당이 있는 장수도 있고, 게서 좀 들어가면 적상산사고가 있는 무주도 있으며, 다시 함양 산청의 누정과 상림도 있고, 거창에 들어서면 수승대가 있다. 합천은 해인사와 영암사지 쌍사자석등도 있다. 고령은 대가야의 유적이 즐비한데다 암각화까지 있으니 어디 한군데도 허투루 지날 수 없는 곳이 확장된 고속도로의 축선상에 위치한 것이다. 하지만 한목에 다 보기는 어려운 법, 20여 년 전 처음 들었던 이름, 정견모주라는 여신을 찾아보자. 선배들의 등산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신화를 담고 있는 산

 우리들의 신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기실 우리의 단군신화는 이미 창조한 세계, 즉, 천지창조가 완성된 곳에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이 결합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이나 일본은 그들 종족 스스로 하늘과 땅을 열고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는데 반해 우리는 끼여 사는 족속이라고 우리 역사를 폄훼하는 장치로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엄연히 천지창조의 신화가 있다. 제주의 천지왕본풀이라는 무가에 전승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이 부분을 축소하거나 지워왔던 것이다. 천지간이라는 분계도 없는 곳에서 틈새를 만들고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물을 흐르게 하고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갖는 스케일은 절로 열린 세상에 세입해 사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생각조차 못했던 것 아닌가.

 하여튼 그런 이야기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면 다시 하기로 하고, 우리들의 모태인 여신들을 찾아보자. 여신하면 제일 먼저 접했던 이가 노고단의 노고할미였다. 노고할미는 한편으로 마고할미를 연상한다. 동일한 계열이었던 터이다. 지리산 상봉인 천왕봉에 이 노모할미를 모신 사당이 있다.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한 왜적의 잔당들이 그 할미의 상을 칼로 크게 훼손했고, 다시 일제 강점기에 분리해 버렸다. 이를 천왕사에 모셨는데 이교도들이 또 분리해서 이것을 찾아 지금은 아예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봉합되어 있는 상황이다.

 신라는 오악에 대한 사상을 가졌다. 신라의 오악은 토함산 석탈해를 산신으로 모신 토함산, 서악은 계룡산으로 백제세력을, 남은 가야산으로 가야세력을, 북은 태백산으로 고구려 세력을, 중악은 압독국이 있던 팔공산 지역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이후 신라의 세력이 확장되며 지리산이 남악이 되었던 것이다. 그중 가야산과 지리산의 산신이 여신이다. 여신은 일종의 대지모신으로 가이아와 같은 존재다. 마고할미·천왕·성모·성모천왕·마야고 등으로 불렸던 지리산의 여신은 그 키가 36척으로 10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이로 봤을 때 그녀는 제주의 설문대할망이나 변산의 개양할미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설문대할망이 500명의 자식을 가지고 있고, 노고할미도 100명의 딸 혹은 8명의 딸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개양할미도 8명의 딸을 팔도에 보내 세상일을 관장하게 했다고 한다. 지리산의 백무동계곡에 백 명의 무당이 나가서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노고할미의 100명의 딸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 여성 신들이 세상을 관장하다가 어느 날 가뭇없이 존재감을 잃어갔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의 원시종교사회에서 유교나 불교, 도교와 같은 종교사회로 접어들며 그 위상이 한없이 추락해 버린 것이다.

 

 가야산에서 만난 정견모주

 명절의 휴일임에도 도로는 한산했다. 과거처럼 한 줄로 나래비를 선다거나 가다가 좌회전 혹은 유턴을 하는 그런 시답지 않은 고속도로는 아니었다. 20킬로를 가면 휴게소가 척척 나타나고 시속 100km가 보장되는 길이었다. 해인사 나들목을 나와 16킬로 정도를 들어가니 입장료를 받는다. 일인당 4000원의 법보사찰 해인사 관람료를 내고 주차장에 차를 대니 절까지는 900미터의 오르막길을 걸어가야 한다. 법보사찰에 그 유명한 승가대학까지 가지고 있으니 의례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백운계곡으로 간다. 등산장비와 카메라를 본 기사 아저씨가 어느 길로 오르느냐고 묻는다. 계곡 길로 간다고 하니 심심하고 경관을 볼 수 없으니 만물상 코스로 가라고 권한다.

 산행에 필요한 김밥을 겨우 구하고 기사아저씨의 권유대로 만물상을 향해 오른다. 언덕을 오르니 그때부터 주능선이 보인다. 그야말로 오만가지의 경관이 바위에 뚝뚝 묻어난다. 월출산의 암석미는 거대함으로 압도하는 아름다움이라면 가야산 만물상은 조밀 조밀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월출산에서 보지 못한 너덜겅이 있는 이유도 미뤄 알게 된다. 오랜 풍화와 침식으로 가야산은 노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 바위 암반 사이에 소나무들과 참나무와 철쭉류의 나무들이 공생한다. 아니 지금은 공생이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나무는 바위의 틈을 더 벌리고 마침내 벼랑으로 밀어낼 것으로 보인다. 경사도가 가파른 길이지만 바위와 나무 사이의 공존 아닌 공존이 보여주는 관목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다. 그러다가 문득 두 가지의 다른 특징을 발견한다. 소나무로 알았는데 쭉쭉 뻗은 나무는 잣나무였다. 거북등도 아니고 위쪽으로 가면서 갑옷을 벗어낸 것도 아닌 나무가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도 직경으로 뻗어 올린 모양은 절로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이제 소나무와 잣나무의 경계 사이에서 두 나무 모두가 존경스럽게 된다. 렌즈를 담은 가방이 바위틈에서 거치적거리는 것이 익숙해지기까지 두 시간 이상이 걸렸다. 암장과 암벽 사이에 철제계단과 다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산정에 닿을 무렵 나신이 된 나무들을 만나고 주의 표지판에 낙뢰 다발지역이라는 섬뜩한 문구를 보면서 이해된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산신이 사는 신성의 영역이지 그런 것이다.

 

 모든 만물이 상아덤을 우러르고

 드디어 정견모주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상아덤에 닿았다. 상아는 달에 사는 미인을 칭하는 이름이고 덤은 바위를 칭한다. 정견모주가 하늘신인 이비가지와 이곳에서 인연을 맺고 감응하여 아버지를 닮아 해와 같이 둥글고 붉은 뇌일주일과 어머니를 닮아 달과 같이 갸름하고 흰 뇌질청예를 낳았다는 곳이다. 훗날 주일은 대가야의 첫 왕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 청예는 금관가야의 첫 왕인 수로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태동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만물이 이 바위를 우러르는 듯 보인다. 괜한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옛 사람들의 산악관이나 산신 신앙의 체계는 저런 바위의 골계미를 하나하나의 생명체로 두고 이런 뭍생명이 오직 하나를 우러르는 체계로 신비성과 초자연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마치 지리산의 성모 노고할미가 천신인 반야가 반야봉에서 수행하다 합일하여 아이를 낳은 것처럼, 운주사 근동의 모든 바위가 천불천탑이 되려고 모두 머리를 운주사로 향한 것처럼 말이다.

 하늘이 아버지이고, 땅이 어머니인 신화를 통해 환웅과 웅녀, 해모수와 유화의 이야기도 생각해 본다. 건국 신화의 뿌리에 이런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이야기를 통해 자기 조국을 자기 정부를 합리화 하며 가야의 마지막을 지켜왔던 대가야가 바로 천신과 지모신의 결합을 통해 최초로 세운 국가였다는 것을 주창하며 말이다. 조심스레 하산하는 길, 나는 우리 신화를 얼마나 깊게 간직하고 있나 되돌아보았다. 하니 해인산의 팔만대장경를 뵙는 것은 다음으로 미룰 수 있었다.

전고필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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